이극단의 운수 좋은 날

by 이정연




한 8년 전쯤, 자살기도를 했다.

그 방법 외에는 없었다.

이십 대에 병을 받아들이는 일은 일 년이 지나도 힘이 들었고, 헤쳐나가기엔 주변이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다가 다시 삶 쪽으로 발을 디뎠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정말 죽음의 문턱에 갔을 때, 나는 두려웠다.

꼭 이 너머에 인생의 희망과 가능성이 있는데 내가 발로 차 버린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악착같이 살기로 했다.


악착같이 버티며 또 2년 여가 흘렀다. 마음은 많이 단단해졌고, 나는 대체로 즐거웠다. 그러나 나의 즐거움은 언제나 무너지기 위한 것. 깜빡했다. 투석으로 인해 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팔을 뒤로 뻗으니 등 허리께에 작은 혹이 만져졌다. 온몸과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록 젊음을 즐기며 살아가진 못하지만, 겉보기에는 그럭저럭 상큼한 표피를 혹이 뚫고 나와 헤치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의 얄팍하고도 불완전한 젊음이 강탈당한 느낌.


역시 내가 즐겁게 사니까, 희망을 가지니까 이렇게 무너져 내리는구나. 그때 알았다. 나는 즐거우면 안 된다는 것을. 나는 극단적이 되었다. 죽어야겠다. 죽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혼자 주저앉아서 울던 병원 앞 그 벤치의 공기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죽는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이미 약을 털어 넣는 자살기도는 해 봤다. 뒷 맛이 좋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방법은 몰랐고, 겁이 났다.

그냥 아무 생각하지 않고 살기로 했다. 나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일에는 늘 극단적으로 끔찍한 절망만이 있었으므로 외면해야만 했다.


실컷 울고 나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시 걸었다. 어느 순간 등 허리께의 혹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조금씩 어딘가 문제가 생기고 고장이 나도 나는 무너지지 않게 되었다.


하늘을 보고, 꽃과 나무를 보고, 바람을 느끼고.

그냥 그냥 말없이 걸었다. 갑자기 이십 대는 나에게서 저 멀리 달아났다. 가만히 걷다 보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거라는 기대는 처참히 깨졌다.

정말로 이식 수술이라는 구원을 통해 완전히 건강을 되찾거나, 아니면 삼십 대를 맞이하지 못하고 죽을 줄 알았다. 사실 삼십 대가 되지 못하고 죽으리라고 생각했다. 그게 내 인생에는 타당한 결론이었다.

그러나 나는 자꾸만 건강해 보였고, 자꾸 죽음에서 멀어졌다.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들을 더 알아나갔다.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피곤했지만 공부와 일을 시작했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삶이 되었다. 스스로 조절이 가능하니, 내 계산 안에서는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었다. 그런 시간을 사람들과 나눌 수도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무기력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때는 브런치를 만났다.


겨울을 지나고부터 컨디션이 이상하게 나빠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혈액검사 결과에도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애를 써도 결과는 나아질 줄을 몰랐다. 이미 여기저기, 고장 나서는 안 되는 곳들이 고장 나 있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마음도 주눅 들었다.


지난여름, 기쁨과 행복이 문을 두드렸다. 나는 그들을 내 삶에 들여놓고야 말았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는데, 투병생활이 지나치게 길어짐과 동시에, 가진 행복들이 늘어남과 동시에 모든 내일이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나의 내일에 그들은 모두 도망가고 없으리라는 생각에까지 이르자 나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공허하게 뜬 눈을 감았다.

오늘의 기온은 29도였다.





주치의는 말본새가 글러 먹은 사람이다. 9년의 세월 동안 혈액검사 결과에 이상이 없도록 나 스스로 철저히 관리하던 때에는, 환하게 웃으며 칭찬을 했다.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환자라 좋았으리라.

근래 들어 주치의가 처방한 약이 내게 맞지 않아 몇 번 휘청거리고 산소마스크까지 끼는 사태가 발생하자, 내가 특이체질이어서 그렇다고 안면 몰수하고 내 탓을 한다.


관리를 잘하고 있음에도 나의 혈액검사 결과에 이상이 생기자, 원인을 찾아보겠다고 하더니 오늘에 와서는 투병생활이 길어져 더는 전과 같은 몸 관리가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결국 방법이 없다는 소리였다. 갑자기 품이 들지 않던 일에 품을 들여야 하니 그녀는 짜증스러울 것이고, 늘 내 탓을 한다. 우리 사이는 우주만큼 멀어졌다. 나는 어쩌면 그녀의 그런 무책임한 말들에 질려 무너졌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 언젠가 혼자 펑펑 울다 살겠다고 마음먹었던 그 벤치에서처럼, 새롭게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극단성은 모두, 삶에 배반당한 스물다섯의 그날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생은 삶과 죽음, 어디로 이어져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