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불행을 바라본 일이 없다. 절대 착해서가 아니다. 내가 삶에게 철저히 배반당해 보고 나서, 나는 굳이 남의 불행을 바라지 않게 되었다.
아빠의 사업이 망했던 이유. 아빠의 돈을 상상할 수도 없는 단위로 떼먹은 사람들이 여럿이어서. 그러나 그들도 의도한 바는 아니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여파로 아빠도 남에게 크든 작든 피해를 주었으니까. 인생은 의도되지 않은 일들의 연속 작용이니까.
아빠가 잘못한 일로 나머지 가족들이 곤란을 겪은 수많은 나날들을 지나고 나서, 결국 내가 병을 얻게 되었을 때 나는 나의 병이 사실 아빠의 잘못에 따른 대가를 치르는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했다.
병의 고통이 거듭될수록 우리 집을 쫄딱 망하게 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망했을 때 기꺼이 우리를 외면하고 버린 사람들을 생각했다. 아프기 전의 내가 얼마나 그들을 미워했었는지, 탓했었는지를 생각했다. 죽음의 문턱에 가 보고 나니, 매일이 죽을 것 같은 고통의 연속이고 보니 우리가 잃은 돈보다도 사람을 미워하는 내가 더 무서워졌다. 이미 병든 몸에,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증오하며 더욱더 병을 더하고 싶지 않아 졌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충주에 사는 한 아저씨가 억 단위가 넘는 물건 대금을 떼먹었다. 아빠는 곤란해졌다. 법적 절차를 밟았다. 법원을 통해 서류를 보냈음에도 그는 연락 한 통이 없었고, 등기부 등본을 떼 보니 이미 재산은 모두 다른 사람의 명의가 되어 있었다. 아빠는 분노했다. 마지막까지 신사적으로 행동했다. 멱살 한 번 잡은 적이 없었다.
일을 팽개칠 수 없어서, 법무사를 찾아가고 법원에 뛰어다니는 모든 일을 엄마에게 맡겼다. 자꾸만 밀리는 대금 결제에 대해 걱정하는 엄마의 말에 대해서도 큰소리쳤다. "그 사람은 나를 속일 사람이 아니다! 지도 어려워서 그렇지 거래처에서 받으면 우리 돈부터 해결해 줄 거다!"
그는 도망갔다. 분노한 아빠는 엄마와 충주로 갔다. 그 아저씨네 집을 찾아갔다. 문을 두드렸다. 허름한 집에서 초등학생 아이가 문을 빼꼼 열고 나왔다. 부모님은 어디 계시냐고 물으니 모르겠다고만 하는 아이의 뒤로 꼬질꼬질한 동생 둘이 보였다. 아빠는 차마 더는 묻지 못하고 그 집을 나왔다. 그리고 근처 슈퍼에서 쌀 한 포대와 라면 한 박스를 사서 문 안으로 들여주었다. 나는 엄마에게서 그 얘기를 전해 듣고 코웃음을 쳤다. 가족에게는 인색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프고 나서, 그 일화가 떠올랐다. 그 아버지가 무슨 일을 했던지간에 아이들에게는 분명 죄가 없다. 그런데도 나는 쌀과 라면이 들어오는 걸 뻔히 보고 있었을 그 집 아이들을 미워했었다. 내 병이 아빠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되려 그 아이들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부디 그 아이들은 그때 우리 아빠가 쌀과 라면을 사서 들려주었듯이, 많은 어른들에게 적절한 호의를 받으며 그렇게 자랐기를 바랐다. 나처럼이 아니라, 어디선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바랐다. 누군가 이렇게 나의 행복을 빌어주기를 바라는 그런 이기적인 마음을 담아서.
요즘 부쩍 불행과 행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타인의 행복에 대해 관대하지 않다는 생각, 타인의 불행에서 위안을 얻는다는 생각.
그러다 떠오른 한 사람. 소녀시절의 친구 H.
H는 나를 참 많이 아껴주고 인정해주었던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내 번호를 물어보면, 세상에서 비껴 나 있는 나에게 해가 될까 싶어 일 년이 넘도록 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강직함을 가졌던 그런 친구였다. 수더분해 보이지만, 본인의 할 일은 확실히 해내는 그런 H는 나의 불행에 대해 늘 안타까워했다. 꿈이 좌절되어 세상으로부터 숨어있었던 이십 대 초반까지의 몇 년간 나에게 손편지를 써주고 살뜰히 마음 써주던 사람이었다. 그런 H가 어느 날 통화하는 중에 말했다. "정연아,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힘들 때 사람들은 얼마든지 위로해주는 척할 수 있더라. 그런데 내가 진짜 잘 되고 행복할 때, 표정이 일그러지는 걸 봤다. 나한테 진심이 없으면, 절대로 내 행복에 진심으로 기뻐해주지 못한다. 나는 네가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 네가 행복해지면 나도 정말 행복하고 기쁠 거 같다. 그렇게 만들어 줘."
불행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살던 내가, 행복한 기색을 보일 때 일그러지는 얼굴들을 보았다.
아프지만 견딜만하다고 웃으며 말했을 때 나를 보던 이모의 불편한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너는 왜 아직도 불행하지 않냐고, 꼭 그렇게 묻는 듯했다. 그 이유가 아빠와 금전적 문제가 있었기 때문임을 뒤늦게 알았다. 희귀병에 걸려서도 주눅 들지 않고 생글생글 웃는 것이 꼴 보기 싫었다고 한 말이 내 귀에까지 들렸다. 나에게 이모는 당신 하나가 아니고, 그중에 말을 전하기 좋아하는 이모도 하나쯤 있으니까 듣지 말라고 한 말은 아니리라고 생각한다.
한 때 나를 너무 예뻐하던 어른이 나의 씩씩함을 못마땅해한 것이 그때는 충격이었다. 때로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이 불행에 무릎 꿇고 허우적 대는 것을 보면서 우월감이나 위안을 얻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의 불행도 행복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나는 전화번호도 바꾸고 그들 앞에서 사라졌다.
나의 행복을 끊임없이 빌어주던 누군가에게 배반당하고서야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라는 말은 누구든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당신이 나의 불행을 빌어도, 나는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차라리 너무 행복해서 나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리기를 바란다. 우리 각자의 삶은 너무도 치열하고, 누군가의 행복을 빌어줄 수는 있지만 감히 남의 불행을 바라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나는 알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행복해졌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주었지만. 나의 불행이 깊어지니 그 행복을 바라보는 일이 힘들었던 날이 내게도 있었다. 그의 행복함에 비해 나의 불행이 너무 깊어서, 나는 나락으로 떨어질 만큼 초라해졌다. 그래서 그 행복 앞에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그 행복을 보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어쩌면 당신도 그 시절의 나처럼 단지 옹졸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미워하지 않고, 비워내기로 한다.
바람이 차가워서 창문을 꼭꼭 닫게 되는 오늘, 스스로를 돌이켜본다. 나는 진정으로 타인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는 사람인지, 타인의 행복 앞에 진심으로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인지.
누군가의 행복을 빌 때에는, 진심을 꼭꼭 눌러 담아야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