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인생의 경험도 미천한 내가 열다섯 소녀시절부터, 소설가가 되겠노라 꿈을 꿨다.
수없이 습작을 하였으나, 그 습작의 길이란 너무도 짧고 짧아서 좌절하고 또 좌절했다.
나는 절대로 긴 글은 쓰지 못할 것이라고 수없이 생각했다.
학창 시절에는 그래도 늘 백일장 산문부 장원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스스로 글을 잘 쓴다는 건방진 생각에 빠졌다. 시에서 주최하는 대회에도 나갔는데, 이게... 그분이 오시지 않아서 그저 그런 상을 받고 돌아왔다. 그럼에도 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날의 컨디션 문제라고 생각했다.
나는 글을 계획적으로 쓰지 않고 느낌으로 쓴다. 그래서 큰 대회에 나가면 망한다. 그런 곳에서는 느낌으로만 쓰면 정말 망한다.
무슨 계시를 받듯이, 그분이 오시지 않으면 내 글은 그저 그렇다. 사실 계시를 받아도 그저 그렇다. (제기랄!!! )
나는 늘 그분에게 기대어서 글을 써왔고, 브런치에서도 그런 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그분이 오시지 않을 때는 아주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하고, 그분이 오시면 또 미친 사람처럼 발행 버튼을 누르기도 하는데 물론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어쨌든 살아온 모든 날의 글들이 여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너는 소설 못 씁니다. 이런 토막글 모아서 짜깁기해도 소설 한 권은 커녕 단편 하나 나오기가 힘들어요, 고객님.
그래도 나이라도 어릴 때는, 언젠가는 인생 경험이 쌓이면 나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20대 중반이 되어 말기신부전이라는 이벤트를 맞이하면서, 소설에 담아야 하는 보편적인 정서를 나는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웠다. 나는 이제 소설가가 될 수 없다, 평범함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소설은 읽는 것에서 만족하자.
내가 쓰는 글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나는 아픈 일에 대해서만 쓰고 있었다. 나는 쓰는 일은 폐업해야 한다, 고 생각했다. 어차피 짧은 글 밖에 쓰지 못한다. 이건 모두가 쓸모없는 짓이다.
브런치에 내 공간을 얻었다. 그동안 묵혀두었던 얘기들을 써 내려갔다. 글은 생각 이상으로 길어졌다.
가끔 다시 읽는 내 글은 가끔 짜증이 날 만큼 길기도 했다. 절대 쓸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아프다는 것은 보편적인 감성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소수이지만 아픈 얘기에 귀 기울여주시는 소중한 독자님들도 만났다.
학창 시절 내내, 산문부 장원에 이름을 올리고도 내가 동경했던 대상은 운문부 장원에 이름을 올리는 시를 무척이나 잘 쓰던 친구들이었다. 나는 때려죽여도 시는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시를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 친구들은 시작 동아리에 소속된, 전문 노래꾼이었다. 빨랫줄에 널린 빨래로도 신박한 시어들을 조합해 한 편의 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여고생들이었다.
나의 온 시간 내내 드러내놓고 시를 써 본 일이 없다. 그런데 좋아하는 작가님이, "정연 작가님은 시를 쓰면 참 잘 쓸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시기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냥 무턱대고 썼다. 그러다 보니, 얼추 모양이 시가 되었다. 자꾸 좋아하는 작가님의 응원이 떠올라, 시를 쓰다가 매거진까지 만들었다.
그래. 알 수 없다.
여전히 나는 소설은 쓰지 못하지만, 이제 제법 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달리 방법을 찾아낸 것은 아니고 그냥 쓰는 막시이지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어쩌면 소설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절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일들을... 자연스럽게 하나둘씩 해나갈 수 있기를.
새로운 하루의 시작에 바라본다. 당신도, 나도, 새로운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 분명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