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내게 주어진 역할이 너무 많았다. 동생과 네 살 터울인 탓에 동생을 대신해서 야단맞는 일이 잦았고, 심약한 엄마를 둔 탓에 언제나 내가 다른 어른들과 대신 투쟁해야 했다. 가장 가깝게는 아빠와 투쟁했고, 친척 어른들이나 심지어는 할머니를 대상으로도 투쟁을 했다. 물론 그 투쟁들과 달리 밖에서는 전혀 투쟁적이지 않은 아이였지만.
20대도 녹록지 않았다. 사회로 나와서, 이리저리 부딪히다 보니, 사실은 엄마보다 더 심약한 본래의 성격이 튀어올랐다. 늘 모두에게 좋은 사람 이어야 했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둘러싼 모든 타인들의 눈치를 봤다.
버스에서 누군가 양산으로 나를 때렸다. 그냥 기분 나빠하면 되는데, 나는 그런 일들에서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이러한 일로 마음이 상하니까,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일을 하지 말아야지. 그러다가 결국에 하루의 목표가 우습게 정해졌다. '나로 인해 마음 상하는 사람이 없는 하루를 만들자.'
나는 아마 알게 모르게 상처를 많이 받았을 테고,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착한 것이 너무 편했다. 그러나 착하게 살아도 세상에 나를 밉게 보는 사람들은 있었다. 그래도 나는 화를 내면 안 됐다.
내가 하면 불륜이고, 남이 하면 로맨스다. 내로남불이라는 우스개가 반대로 적용되어 있는 인간이 바로 나였다.
옆에서 나를 가까이 보던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자신에게만 엄격한 거냐고 안타깝게 말을 했다. 그런 말을 듣고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되지만, 난 안돼. 난 그래선 안돼.'
그런 식으로 살다 보니 원인 불명으로 병에 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병의 원인은 스트레스였다. 그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실수도, 내가 하면 대역죄가 되는 그런 마법이 일어났다. 나는 아주 어렸던 나이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역죄인으로 살았다.
1992년의 여름, 여섯 살짜리 이종 사촌 여동생이 홱 하고 토라져서수박을 먹지 않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멀리 대구에서 강원도까지 다니러 온 손주인 나를 살뜰히 챙기는 외할머니가 속상하실까 봐 일곱 살인 내가 사촌 여동생을 따라 나갔다. 나 때문도 아닌데, 나 때문에 마음이 상한 듯이 생각하며 그 아이를 달래고 또 달래고 심지어 웃겨주기까지 했다. 그제야 푸훕하고 웃음을 터트리더니, 내 손을 잡고 못 이기는 척 다시 집안으로 들어와 외할머니가 숭덩숭덩 썰어놓은 수박을 먹는 여섯 살짜리 동생을 나는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지금에 와서는 그 아이를 미워한다. 못돼 쳐 먹은 계집애라고 가끔씩 욕을 한다. 지금은 만나지 않는 사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남에게 못되게 굴면 마음이 불편하다. 누군가 나를 미워하는 일도 싫다. 그래서 그냥 세상이 원하는 대로 웃으며 살았다. 그러나 착하면 사람을 우습게 보는 세상이 됐다. 어쩌면 전에도 세상은 착한 사람을 우습게 보았는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요즘따라 부쩍 어렵다. 사람과 사람뿐 아니라 모든 것이 어렵다. 그러니 글을 쓸 여유도 없다. 글을 쓰며 버텨왔던 모든 날들이 무색하게, 그렇게 나는 펜을 놓았다. 그래서 그저 어렵다고, 힘들다고 혼자 이야기하는 쪽을 택했다. 멍하니 힘들다고 되뇌는 것보다는 차라리 글을 쓰며 말로라도 하는 편이 훨씬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