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삼은 망고를 좋아해.
자존감 낮은 해삼의 징징거림
본명의 발음이 망고와 비슷해서 별명이 망고인 오빠가 있다.
우리는 오빠가 갓 제대를 했던 때에 만났다. 그때 나는 인생에서 가장 어둑했고, 또 혼자였던 시기였다. 그래, 스무 살. 모두가 찬란히 빛나는 그 나이에 나는 늘 혼자만의 시간에 갇혀 살았다. 평범할 수 없었던 인생, 나의 숙명이었다.
그런 시절 늘 나와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
단 한 살 차이인데, 꼭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만난 선배처럼 깍듯하게 대하게 되었던 것이 참 신기했다. 그러면서도 언니처럼 편안했다. 그래서인지 망고 오빠는 여자 사람 친구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정연이라는 이름의 뒷 자만 따서 나를 '연이'라고 참 다정하게 부르곤 했다. 물론 남녀 사이가 절대 아니었으므로 그 다정함에는 늘 담백함이 담뿍 배어있었다. 오빠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생각했다. 오빠는 컴퓨터의 체계를 인체에 비유해가며 알려주었고, 덕분에 나는 혼자 컴퓨터를 뜯을 수 있는 여자아이가 되었다. 모쏠인 내게 좋은 남자를 판별하는 법 같은 것도 알려주었다. 그 팁은 지금도 가슴속에 짧은 문장으로 남겨두었다. (혹, 그 팁을 알고 싶은 분은 따로 연락 주세요. 크흐흐.) 물론 그 팁을 써먹어 보지도 못하고 모쏠인 채로 서른을 훅 넘겨버렸었지만!
애쓰지 않아도 우리의 시간은 쌓여갔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마다 우리는 늘 함께하는 친구였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지금은 육아 대디가 되어 자주 연락하지 못하지만, 나의 어둑한 소녀시절을 환하게 밝혀주었던 좋은 친구이자 인생의 선배로 늘 그렇게 내 안에 남아있다. 그리고 언제 연락해도 반가운 그런 사람이다.
그런 망고 오빠가 내 브런치와 연결되어 있는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더니, 이내 내 브런치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내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다 보면, 어쩌면 인스타그램 정도는 뜰 수도 있다. 그러나 브런치를 애써 설치해서 구독해준 그 마음이 참으로 고마웠다.
알람을 확인하고 그 망고가 우리 망고 형님이 맞으시냐고 연락을 드렸더니 대번 후훗, 하는 그 특유의 말투가 되돌아왔다. 그리고 역시나 나 때문에 브런치를 설치했다고, 글을 쓰며 살고 있어서 안심이라 하셨다.
그 이후 도통 늘지 않던 구독자가, 늘었다.
사실 나를 위해서 쓰기 시작한 글이다. 그리고 내 인생은 철저히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으니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면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내게 주어진 평범한 것들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라고 위안을 얻기를 바랐다. 그리고 9년을 아파온 사람 치고는 씩씩한 나를 보며 용기를 얻기를 바랐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구독자 수에도 나름의 욕심이 생겼다.
조금 늘어나기 시작하니, 조금만 더... 그래서 십 단위 숫자가 바뀌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고. 구독자 수가 세 자리가 되니, 또 그 숫자 안에서의 욕심이 늘어갔다. 결국 나를 위해 쓰는 글도, 순수한 글도 아니게 된 느낌에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병을 팔아서 글을 쓰는 것에도 한계가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내불 남로형 인간이니까, 늘 나에게만 가혹하다. 내 병을 가지고 글을 쓰는 일이 지겨워졌다. 병을 버무려 쓰는 글이라서 재미가 없는 것이 아닌지 고민했다. 그렇다고 평범한 글을 쓸 수도 없다. 나는 평범하지 않으니 평범한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아주 오랫동안 늘지 않던 구독자가 망고 오빠 이후 늘어나고 보니, 징징거리더라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러나 글을 쓰다가 서랍에 넣고, 또 다른 글을 쓰다가 서랍에 넣기를 반복했다.
함께 글쓰기 모임을 하는 친구 S가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본인 사업을 해서 눈코 뜰 새 없는 H 언니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우리 귀요미, 라는 다정한 호칭이 마음속에 따뜻하게 울려 퍼졌다. 바쁘게 살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얼굴이라는 말에, 바닥난 마음에서 울음이 올라왔다.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힘들고 지칠 때, 문득 선물 같은 일을 하는 사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모두 타인이다. 해삼처럼 혼자 살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한 때 꿈은 해삼이었다. 다른 존재가 필요치 않고, 조금 다쳐도 금방 회복이 되는 해삼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사실 또 해삼처럼은 살아가지 못한다.
L 부장님이 슬근히 다가와서, 손에 견과류 한 봉지를 쥐어주신다. "나이 들수록, 견과류를 많이 먹어야 해요."
오늘 해삼은 아무도 볼 수 없는 구석에 가서 눈물을 잔뜩 흘리고, 잔뜩 사람들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