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 컵라면을 먹습니다. 물을 부어둔 3분을 못 기다립니다. 원래 꼬들한 면발을 좋아하기도 하고, 원체 성질이 급합니다. 가끔 면을 씹어먹는 저를 보며, 옆에 있는 사람은 깜짝 놀랍니다. "지금 너 면 씹어먹고 있는 거 맞지?" "씹는 것도 먹을만해요."
이게 말인지, 막걸리인지.
무엇이든지 명확한 것을 좋아하고, 빠른 결론을 좋아합니다. 빠른 결론이 있어야, 내가 나아갈 방향이 명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도 사실 그러합니다. 아니다 싶은 사람과는 관계 단절이 쉽습니다. 이러면 내가 너무 갑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손절당한 적도 굉장히 많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결이 다른 사람은 얼마든지 만나니까요. 어쨌든 속도가 빠른 관계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몸이 아프니까, 사람들을 만날 때 나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성가시고 때로는 힘듭니다.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가 그리 많지도, 찬란하지도 않으니까 차라리 그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관계란 어디서든 불쑥불쑥 나타납니다.
주엽역에 살던 K 언니가 그러했고, 이제는 흐릿한 그런 관계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나는 어느 정도 선까지는 노력해봅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인연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주엽역에 살던 K 언니에게도 늘 먼저 안부를 묻고 다가가려 했었지만, 글쎄요. 우리는 굉장히 빨리 시큰둥해졌고, 이런저런 공통점들에도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이 다르다,는 말로 대신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K 언니는 나를 장미 화단 한가운데 박아 넣은 예쁜 사진을 남겨두고 사라졌습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될 때마다, 다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말아야지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나를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번호를 단 하나도 남겨두지 않았거든요. 모두 시간 낭비이고 감정 낭비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수많은 K 언니들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습니다. 나에게는 꼭 K일 필요가 없고, K에게도 꼭 나일 필요는 없습니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K에게 나는 상추값이 엄청 올랐을 때 먹는 깻잎 정도의 대체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은 신중하고, 편안하고, 무엇보다도 나와 같은 결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같이 근무했던 오랜 동료가 있었습니다. 담백한 사람. 나는 질척거리는 사람이라서 그와 나는 다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서로 퇴사를 하고도, 이상하게 그와는 연락이 이어졌습니다. 연락이 닿고, 서로의 안부를 물을 때마다 담백한 사람 치고는 지나치게 나를 반가워했고 그랬던 우리는 몇 년 전 여름 처음으로 개인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직장에서의 대화가 전부였던 우리가, 처음으로 친구의 길로 들어선 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이야기의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를 안 지 몇 년 만에야 알았습니다. '이 사람, 나와 같은 과다!'
그렇게 우리는 가끔 만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서울 밖으로의 일탈도 계획하며 웃곤 했습니다. 어떤 날에는 함께 만나 꽃시장에 구경을 가기도 했습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늘 나의 장점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와 만나면 나는 수다쟁이가 되고, 그는 내 이야기에 늘 많이 웃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이야기에 열심히 귀 기울입니다. 그의 담백하고 단단한 삶의 자세를 보며, 늘 배우고 싶은 점이 많은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그와 나는 한 살 차이인데, 절대로 나에게 말을 편하게 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친구인데, 서로 편하게 대하면 안 되냐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직장에 메인 몸이고, 직장생활에서의 인간관계가 생활을 지배하다 보니 신입에게도 경어를 쓰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어 한 살 많은 나에게도 지금과 같은 말투가 편하다고 하기에 담백하게 생각했습니다. 그가 이것이 편하다면야. 서로 경어를 쓰는 친구사이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사실 제 주위에 경어를 쓰는 친구 관계는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새로운 친구 관계가 참으로 신선했습니다.
그런 그가 서울을 떠났습니다.
회사가 잠실에서 충청도로 이전하면서, 그도 회사 근처로 생활 터전을 옮겼습니다. 이제 서울에서 만날 귀한 친구가 한 사람 줄어들었습니다. 마지막 약속은 내가 깼습니다. 우리는 그가 이주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왕십리 대학가에서 만나 고기를 먹기로 했었습니다. 물론 코로나가 또 이토록 기승을 부리기 전입니다. 그와 약속한 날, 나는 온몸이 아파서 마음까지 아팠습니다. 그래도 맨 얼굴을 마스크로 잘 가리고 그를 만나러 왕십리로 가려했습니다. 그는 그 날 나에게 주기 위해 프리지어 구근을 가지고 출근했었거든요. 어쩌면 이렇게 편안하게 서울에서 만날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인 것 같아, 젖 먹던 힘까지 내려했지만 그는 나의 카톡에서 기운 없음을 느꼈습니다. "정연님, 쉬셔요. 왕십리까지 거리도 멀잖아요."
그리고 오늘, 그가 나를 위해 가지고 나왔다가 퇴근길에 황망히 되가지고 들어간 프리지어 구근이 택배로 왔습니다. 그리고 튤립 구근도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카드에는 구근들을 심는 방법을 간략히 설명해두었습니다. 물론 안부와 응원의 메시지도 빠지지 않았죠.
이 마늘 같이 생긴 놈들을 심어야겠습니다, 조만간.
친구의 마음을 받으며, 나는 누군가에게 진심을 주고 있는가 생각해봅니다. 그냥 몇 마디 말로 떼우려 한 것은 아닌지. 상대의 마음을 오해한 것은 아닌지.
더 이상 내 인생에 K들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한 통씩 넣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오후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모든 일에 빠른 결론을 내려하지 않을텝니다. 차분히 프리지어와 튤립 구근을 심으려합니다. 관심을 기울이며 꽃을 심고 겨우내 함께 견디면, 봄이면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겠지요. 당신과 나의 마음처럼. 차가운 바람에 지지말고, 우리 봄을 기다려요. 다시, 새로이 피어날 봄을.
부직포 봉투에는 프리지어 구근이 들었고, 커다란 마늘 같은 것이 튤립 구근.
튤립은 껍질을 벗겨서 심는 것이라고 카드에 쓰여있길래, 혼자 무심히 한 톨의 껍질을 벗겨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