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되는 일.

by 이정연


이식을 해야 합니다. 이 병은 어찌 보면 참 나쁜 병입니다. 저 겉보기에는 너무 멀쩡하거든요. 심지어 저를 9년째 만나고 있는 담당 교수님조차도, 지난 외래 때 감탄을 하셨더랬습니다. "야, 얘 좀 봐. 누가 얘를 투석하는 애로 보겠니?" 그 말을 자랑스럽게 했을 때, 그는 화를 냈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냐고, 화를 냈습니다. 나는 이토록 멀쩡해 보이고, 괜찮다. 다만 사랑하는 남자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는 화를 냈습니다. 아직도 그 마음을,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아파 보이지 않는 것은, 자랑하면 안 되는 일인 걸까요. 내가 아프다는 사실이, 그를 그토록 아프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발병하자마자, 서른 가지에 가까운 온갖 검사를 받았습니다. 이식 수술을 위한 검사였습니다. 스물다섯 살. 또다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기회는 빨리 올 것 같았습니다. 길거리에 쓰레기 한 번 버리지 않고, 정말 바르게 살아온 나에게 이런 불행이 길게 이어진다는 건 너무 불공평하기 때문에 무조건 믿었습니다.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날 리가 없다, 는 것이 스물다섯부터 서른 언저리까지의 강렬한 믿음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식 수술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으면, 적합한 뇌사자가 나타날 때마다 대학병원 이식센터에서 저에게 연락을 합니다.

4~5년 전쯤, 이식센터에서 '그' 전화가 왔었습니다. 나를 와르르 무너뜨린 한 통의 전화가.

"정연님, 지금 캐리어에 짐 챙겨놓고 대기하셔요. 이번 뇌사자 분하고 정연님 하고 유전자 6개 중에 5개가 일치해요. 혈액 교차반응 검사하니까 두 혈액이 아주 잘 섞였어요. 이번에는 이식 확실히 받으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저희가 저녁쯤에 전화드리면 바로 병원으로 오셔서 입원하셔야 하니까 짐 다 챙겨두고 기다리세요!"


북받쳐 오른 나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살 수 있다!! 하늘이 나를 버릴 리가 없다!!" 우습게도 아프면서 20대를 다 보내 놓고도, 나는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았다고 멍청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황색 캐리어를 펼쳐놓고, 속옷 같은 걸 비닐백에 넣어서 차곡차곡 짐가방을 채웠습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손이 멈칫멈칫하곤 했습니다. 너무 긴장이 됐는데, 엉엉 울었더니 조금 지쳤습니다. 아주 조금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여덟 시, 공이 이이 오팔, 로 이어지는 이식센터의 번호가 핸드폰 액정에 떴습니다.


"정연님, 아쉽게도 짐을 푸셔야겠어요. 정연님 하고 똑같이 최종 후보에 오른 분이, 정연님보다 1년 정도 대기기간이 더 길어서 이번에는 그분한테 순서가 돌아가게 되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그 전에도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었습니다. 투석을 시작함과 동시에 이식 대기자 명단에 올랐는데, 그때가 아마 투석 시작하고 3년쯤 되었을 때였을 거예요. 그래도 그때는 '내 대기기간이 짧으니까.'하고 웃으면서 다음을 생각할 여유가 있었는데, 5년이나 기다렸는데도 누군가에게 밀려야 한다면 이 인생은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울컥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아주 크게 아주 오랫동안 울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식센터에 전화를 했습니다.

"이제 제가 다시 연락드리기 전까지는, 저한테 이식 전화하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내 마음으로는 잠정적으로 이식을 포기하고 또 4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건강했던 나의 과거를 아는 사람보다, 아픈 이후에 만난 사람이 주변에 더 많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은 있지만, 누군가를 사랑해 본 일은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어, 좋은 친구들을 너무 많이 만나게 되어 이제 누구 못지않게 건강해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식 준비를 시작하려 했습니다. 마침 주변에 도와주는 분들도 생겼고, 20년 지기 친구가 9년째 자신의 신장을 주고 싶다고 하기에 처음으로 그 신장을 받겠다고도 말했습니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빨리, 건강해지고 싶었습니다.


사실 아프다는 사실은, 나의 가치를 절대 훼손할 수 없지만. 미안해요. 그 말은 그냥 강한 척하는 말에 불과합니다. 아프면 많은 걸 포기해야 해요. 평범한 모든 것들을 지난 9년 간 포기해왔어요.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걸 해서, 누군가가 내게 도움을 주겠다고 하면 거절하지 않고 나는 이 악물고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했어요. 신장을 주겠다는 친구는, 얼른 조직 적합성 검사든 뭐든 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식센터 간호사인 친구에게 타인 생체 이식에 대해 물었다가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친구가 나에게 신장을 기증하는 일의 순수성을 직접 입증해야 하고, 친구의 배우자나 부모님이 동의하셔야 한답니다. 친구는 미혼이니까 부모님이 동의하셔야 하는데, 멀쩡한 자식이 친구에게 신장 한쪽을 떼 준다고 하면 동의하실 부모님이 세상 어디에 계실까요. 우리는 같은 여중, 여고 출신이라 졸업증명서며 뭐며 서류를 준비하면 되리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힘들다고 하네요. 간호사인 친구가 말하기를... 그 큰 대학병원에 근무하는데, 타인 생체이식 사례는 지금껏 단 한 건도 없었다고 하네요. 그 말에는, 포기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겠죠. 그래서 친구가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겠죠.



아픈 것 말고, 그냥 나. 그냥 나를 봐주는 친구들은 많이 있습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한 친구는, 바쁜 회사 근무 중에 가끔 병원은 잘 다녀왔느냐고 물어주곤 해요. 그 다정한 말이 가끔 햇살처럼 환하게 빛나곤 합니다. 하지만 그 다정한 말 외에 우리의 대화에 내가 아픈 일은 끼어들지 않습니다. 고맙게도 나라는 사람의 재능과 마음을 봐주니까요. 하지만 아픈 일은 내 인생의 걸림돌이기도 합니다. 아프기 때문에 생산적인 일을 할 시간이 확실히 남보다 짧고, 어딘가 마음껏 여행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내가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어도, 아프기 때문에 누군가는 나를 포기하기도 했고 나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내게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무슨 일이든 잘 풀리지 않으면, 내가 아픈 탓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힘을 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그러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좀 못 생겨지더라도, 울어버릴 겁니다. 그리고 내일 누군가가 묻겠죠. "정연이 너 얼굴이 왜 그래?"

그럼 난 기꺼이 거짓말을 할 겁니다. "슬픈 영화를 봐서 그래요."

주인공이 이정연인, 슬픈 영화요. 오늘은 그냥 울 거예요. 어쩔 수 없어요. 내가 나로 사는 일, 내가 되는 일이 너무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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