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쓰는 시에 대해서
고백하겠습니다. 사실 사랑에 관한 시를 썼었습니다. 그런데 사랑에 관한 시를 썼다는 것이 부끄러워, 사랑에 대해 쓰지 않은 척했습니다. 그 척, 때문에 제 시는 갈 곳도 잃고 의미도 잃어버렸더랬습니다.
사실 사탕 극혐이 아니라 사랑 극혐이었습니다. 사랑은 너무 달콤하지만, 그 달콤함이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 아예 사탕 포장을 안 벗기듯이 사랑도 않고 싶다는 회의감이 담긴 시였습니다. 화분은 실제 화분이 아니라 제 자신을 의미하는 거였습니다. 저는 그늘에 방치되어 있었던 화분이었던 적이 있었고, 지금은 햇살과 물을 듬뿍 받는 화분입니다. 그럼에도 이 화분은 늘 목이 타고 잎이 바짝 마릅니다. 그래서 태생적 우울을 가진 저 같은 종자는 사랑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그 시를 썼습니다.
지금, 제가 좋아하는 김동률의 이별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떠나보낸 사랑에 대해 후회하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나도 그녀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랑이 무너질 것이 늘 두려워 그 마음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떠나간 지금에서야, 표현하지 못한 사랑을 후회하며 여전히 그녀와의 기억에 살고 있음을 고백하는 노래입니다. 이 이별 노래를 들으며 저는 되려 사랑을 결심합니다. 저 노래 속의 남자는 자꾸 스스로를 어리석다고 표현합니다. 저는 저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저 노래를 Replay 합니다.
저는 사랑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진심도 믿지 않았습니다.
세상에는 모두 각자의 운명의 상대가 있으며, 사랑을 비롯해 이 세상 모든 일에는 진심이 통한다고 믿으며 살아온 순수한 영혼이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최고의 가치는 늘 진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모든 사람에게 진심을 다했고, 제가 하는 모든 일에 진심을 다했습니다. 진심에 배반을 당해도, 그래도 진심은 통한다고 믿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인생에게 배반을 당하고 난 후 사랑도, 진심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내 발목에는 ESRD라는 족쇄가 채워졌으니 나는 가라앉아버리면 된다, 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을 일부러 떠나보내기도 했고, 가끔 나의 불행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떠나기도 했습니다.
새롭게 사람들을 만나도, 저는 아픈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솔직하고 싶지 않았고, 아프다는 약점을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진심으로 엮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곁에 나에게 진심인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들은 끝끝내 나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에 매몰되지 않고, 그 너머에 있는 진짜 나를 들여다봐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약점을 알고 있음에도, 나를 알아봐 준 사람을 만났습니다.
곁에 꽤 오랜 시간을 있었던 사람들은 늘 나에게 말했습니다. 선을 긋는 사람, 거리를 두는 사람. 그런데 글이라는 것이 이상합니다. 글을 쓰면서, 이 곳에서 한 번도 선을 그어본 적도, 거리를 둬 본 적도 없습니다. 심지어 아픈 걸 팔아서 글을 썼습니다. 먼저 아프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 내가, 병이라는 간판을 내걸었습니다.
늘 누구에게든 마음을 덜 주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그와 나의 종말이 왔을 때, 나는 조금이라도 덜 상처 받고 싶었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덜 받아서, 그가 나를 떠났을 때 내가 조금도 아쉽지 않도록. 나는 나 하나로 온전하도록.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고, 기대지 않는 것이 나의 버릇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미쳐버린 것이 분명합니다. 이별 노래를 들으며, 열심히 사랑하겠다고 나는 다짐합니다. 아마 내 병 때문에 죽을 일을 없을 겁니다. 희귀병이지만, 나는 너무도 건강하니까. 하지만 당장이라도 사고가 나서 죽을지도 모르는 게 인생입니다. 늘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 머뭇거리면서 산다면, 생의 마지막 순간 얼마나 후회할까 싶어서 그냥 온 마음을 다해 살기로 했습니다.
평범하지 않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결코 나는 평범해질 일이 없겠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다 내어놓고 그렇게 살아보려 합니다.
앞으로는 낭만적인 시인으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