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입원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기차에서 내 브런치 프로필을 들여다본다. 나의 소개는 언제쯤 바뀔까. 아직은, 이라는 말에 내포되어 있던 것은 내가 가진 미지의 가능성이었다. 나는 아, 직, 은, 이라고 나의 소개를 꾹꾹 눌러쓰면서 언젠가는, 이라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빛날 나의 청춘을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너무 늙었다.
내가 안고 있는 숫자가 무겁디 무겁다, 말하였더니 그가 웃었다. 그리고 아직이라는 말로 나를 토닥였다. 그 기억의 조각이 떠오르자, 나의 브런치 소개가 눈에 들어왔다.
생일이 늦다. 한 해의 끝자락에 붙어있다. 그래서 만 나이로는 지금의 나이에서 두 살을 낮출 수 있다. 굉장히 비겁해 보이지만, 나는 global standard라는 말로 포장하기로 하고 지금의 나이에서 두 살을 뺐다. 고무적인 뺄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가능성이 반짝, 하고 빛났다.
열차 승무원이 나에게 다가왔다. 할인받은 관련 신분증을 보겠다고 하기에 잽싸게 가방에서 꺼내면서, 그가 수긍할 수 없는 나의 멀쩡해 보임에 대해 변명하듯 "투석을 받고 있어서요."라고 재빨리 덧붙인다. 그는 확인하고 가볍게 목례를 한 뒤 사라졌다.
이런 확인 절차를 거치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하지만 주눅 들거나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확인당했던 때의 나는, 지금과 달리 더 많이 기운이 없었고 아파 보였다. 그리고 내가 아프기 때문에 기차 삯을 할인받는 일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기운차고, 아파서 할인받는 일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아파서 겪은 일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내가 가볍게 누려도 되는 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습게도, 코레일도 정부도 나의 병에 눈곱만큼의 책임도 없지만 당사자인 나 또한 내 병에 책임이 없으니까 불분명한 책임소재를 찾을 필요 없이 그저 이 병에도 누릴만한 이점이 몇 가지쯤은 있다고 웃어버리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