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이 익숙해져 버렸다
하지만 다시 괜찮다고 말하기로 했다, 나와 그대에게.
늘 너무 괜찮은 척해 왔다.
아프면, 아니 아프다고 말하면 지금 손에 쥔 모든 행복들이 마른 꽃잎처럼 바스러질까 봐. 나는 아주 오랫동안 괜찮다고 말했다.
처음 아프고 나서는, 세상은 아픈 내게 익숙하지 않으므로 세상을 배려하려 했다.
아픈데도 씩씩한 모습은 주변의 사람들을 안심시켰고, 아프다는 사실만으로도 전복되어 버린 수많은 관계들이 늘 나를 두렵게 했다. 그들에게는 내 존재가, 내가 아프다는 사실이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니까. 또 누군가를 그런 식으로 잃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주변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그다음에는 괜찮다는 말을 하는 것 외에는 버틸 방도가 없어서 나는 괜찮다,라고 최면을 걸었다.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이 병 앞에 나는 너무 젊었다. 그리고, 심정적으로 나는 병 앞에 길을 잃은 어린아이였다. 언제부턴가 스스로가 너무 안쓰러웠다. 스스로가 불쌍해서 눈가가 짓무르도록 밤새 우는 일이 잦았다. 지금의 못생김은 그날들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동정하는 것은 끔찍했다. 그러나 그 끔찍한 일은 멈춰지지 않았다.
그래서 타인에게는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동정받는 것이 싫었다. 그래, 나는 나에게 불쌍한 것으로도 분에 넘치게 불행했다.
누구도 나를 동정하지 못하도록, 아프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이미 너무 아픈 내가 또 아프다고 말하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아픈 것 외에는 남지 않아, 한없이 무력해지는 것 같았다. 끝이 있는 병이었다면, 나는 마음껏 어리광을 부리고 아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픈 시간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평범한 행복도 특별한 일들도 내게선 우주만큼 멀었다.
세상 모두는 행복할 자격이 있지만, 나는, 오로지 나 하나만은 그럴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 아프기 때문에. 아프기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했다. 모두가 다 가진 평범한 건강을, 건강한 콩팥을 나만이 가지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늘 나의 행복을 거세시켰다.
소중한 사람이 말했다. '올해의 너는 지난해보다 몸이 안 좋아진 것 같아.' 아파도, 나는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가족들은 아픈 나를 눈 앞에 마주한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때로 그들에게는 어리광도 부린다. 그러나 소중한 사람에게도 나는 유독 아프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아프기 때문에 나는 또 누군가를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하니까.
그런데 자꾸만 자꾸만 내 목소리만 듣고도, 아프다는 걸 그가 눈치챈다. 항복해버렸다. 응, 아파요.
오늘은 투석치료가 끝나기 한 시간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버티고 버텼다. 정말 괜찮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다는 말로 스스로를 조금 토닥이고 나니 봄바람을 느끼며 걸을 만큼 회복이 되었다.
올봄은 특히나 몸이 좋지 않다. 때로 전철과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마저 힘들었다. 그러나 오늘은 서울까지 책을 찾으러 가야 한다. 반드시 괜찮아야만 하는 길.
나는 전철을 기다리며 박카스를 한 병 마신다. 두 눈을 부릅뜬다.
브런치 알람이 울린다. 좋아하는 작가님이 글을 발행하셨다. 그분의 아픈 이야기를 접한다. 읽는 내가 속상해졌다. 그 글을 읽고, 나에게도 그분께도 괜찮다는 말을 문득 하고 싶어 졌다. 나는 나에게 말하듯 그분께 마음을 남겼다.
괜찮다는 말이 너무도 익숙해졌다. 괜찮은 척하고, 괜찮다고 말하는 내가 싫었다. 많은 순간 나는 괜찮지 않았으므로.
하지만 다시 한번 괜찮다, 는 말로 나를 격려하려 한다. 그리고 그대를 격려하려 한다. 우리는 괜찮아질 것이므로.
말은 씨가 된다.
괜찮다는 말을 심은 우리는, 정말로 '괜찮아 나무'를 무럭무럭 키워서 괜찮아질 것이다. 진실로 믿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