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을 때, 외려 사람은 차분해진다.

by 이정연



평소 같으면, 나가서 버스를 기다릴 시간에서야 일어났다.

월요일 아침에는 6층 창문 아래에 자리 잡은 산딸기나무를 사진에 담아야지, 생각했던 것은 아마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긍정적인 나.


세상에 씹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한 것이 없다는 듯이, 늦잠에서 깨어난 나는 식탁에 앉아 동생의 아침으로 구워지는 반찬을 무표정하게 씹고 또 씹는다. 시원한 물을 한 잔 들이켠다. 생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람처럼 멍하니 욕실로 가서 이를 닦고 또 닦는다.

내 방 베란다로 나가서 옷장에서 무심히 바지와 카디건을 꺼내온다. 침대 아래 서랍에서 흰 티를 하나 꺼내어 먼저 입는다. 내게 일어난 일이 무엇이든, 상처 받았다고 모두에게 시위하듯 보여주고 싶다. 그것이 죄 없는 가족들이든, 그 존재조차도 모호한 절대자이든. 힘을 잃은 빨랫감처럼 드러누워 일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나는 내 상처를 그들 모두에게 꺼내어 보여주고 싶다. 그러나 몸은 구차하게 끊임없이 행동한다. 나는 병원에 갈 것이다. 그리고 오늘 같은 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시위는, 주치의 꼴을 보기 싫으니 회진을 안 보겠다고 말하는 것뿐이다.


엘리베이터에 탔다. 무심코 본 거울 속에는 영화 써니에나 나올 법한 옛날 여고생 머리를 한, 못생긴 내가 있다. 눈을 살살 피한다. 그저, 오늘만큼은 나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


택시를 탄다. 아마 역 앞에 도착하면 떡볶이 한 접시에 튀김 두어 개를 얹은 정도의 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이렇게 애를 쓰고 병원에 가도 근 한 시간이 걸린단 말이지? 난 뭘 해도 재수가 없다.


10분 후에 출발하는 서울행 급행열차를 타야 하는데 택시는 신호마다 정지한다. 라디오에서는 알지 못하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 생경한 멜로디에 울컥했다. 오른쪽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아침 공기를 곁눈질한다. 눈물이 한가득 차 올랐지만, 흘리지 않았다.

나 자신의 몸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이렇게 쪼그라들다가 아주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지고 싶다, 고 생각했다.


출발하기 딱 1분 전, 열차 좌석에 앉았다. 급행다운 열차는 아주 빠르게,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주지 않는다. 언제나 내리는 신도시의 역에서 내린다. 오늘도 신도시의 주민들은 '내리는 승객들 이후에 질서 있게 탑승'하라는 기본 상식도 무시한다. 그들은 늘 나보다 먼저 타려고 한다. 그래서 대체로 많은 아침 나는 그들이 부딪쳐오는 순간 몸을 구기며 내린다. 그리고 속으로 '상식도 없는 x 같은 새끼들'이라고 욕을 한다. 오늘도 그들과 충돌하지 않기 위해 한껏 몸을 웅크렸다. 본능이란 무섭다. 그러나 평소에 하는 욕을 오늘은 하지 않았다. 그만큼 기운이 없다.


역사를 빠져나가는데, 바닥에 새로 만들어졌음직한 장떡 반죽이 있다. 제기랄. 고개를 쳐들고 시선을 위로 향하게 한다. 나날이 집값이 뛴다는 신도시 주민들이 오늘 날을 잡았나 보다. 그래도 욕할 기운은 없다. 난 점이 되어 사라지고 싶은 우주의 먼지니까.

그래. 주치의의 얼굴만 안 보아도 참 좋겠다. 그녀가 회진 도는 동안 그녀의 목소리까지 안 듣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푹 자야지. 깊이깊이 잠들어버려야지. 아프다는 건 이렇게 치사하다. 꼴 보기 싫은 인간이,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도,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도 주치의라는 이유로 나를 상처 입히게 둬야 한다는 것.


눈을 뜨고부터 내내 두통은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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