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시작되고 정말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특히나 우리 병원은 기저질환을 가진 사람들 천지라서, 코로나 초기부터 일반 외래를 몇 주 간 닫았을 정도.
사실 까놓고 말해서 병원도 수익 사업이다. 그런데 과감히 외래를 닫았을 때 나는 아주 조금 우리 원장님에게 감동했더랬다. 장사를 포기할 사람인 줄은 처음 알았다. 8년이란 세월은 한 의사를 거룩한 시선으로만 볼 수 없게 만들기에 충분한 사건들이 일어나고도 남을 시간이다.
별 일 없이 5월 말이다. 물론 코로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지만, 병원은 무사히 그리고 또 평화롭게 오늘까지 왔다.
그렇게 코로나를 지나오면서, 면역력을 높인다는 핑계로 마음껏 먹었다. 사실 달리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어서 그전부터 좀 잘 먹어오긴 했지만,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정말 *건체중을 훅훅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마지노선이 있었는데 이번 주부터는 그것마저 무너졌다.
*건체중이라는 건 투석치료의 기준이 되는 체중이다. 내가 하는 건 병원을 다니며 비교적 편하게 하는 혈액투석인데, 건체중(Dry weight)을 잡아놓고 늘 그 수치까지 수분을 제거해준다.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니 인공적으로 혈액을 빼내서 기계에 넣어 수분과 노폐물을 걸러내고 다시 깨끗한 혈액을 몸속에 넣어주는 과정을 거친다.
(건체중을 제대로 못 맞추면, 몸도 붓고 혈압도 조절되지 않고 여러모로 좋지 않다.)
투석 간 수분은 5% 정도 전후로 늘어나는 것이 최적이다.
예를 들어 체중이 60킬로그램이라면 3킬로 전후.
사실 백과사전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저걸 제대로 지키려면 정말 소식해야 한다. 거의 먹는 즐거움 없이 살아가면 정말 최적의 컨디션으로 투석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 대신 메마른 인간으로 살아가야겠지?
투석 간이라는 건 대체로 평일은 이틀, 주말은 삼일이니까 끼니로 치자면 여섯 끼니에서 아홉 끼니 정도. 그동안에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이 몸에 차곡차곡 쌓인다.
백과사전적인 환자로 살아왔었다. 대단한 인간관계도 없었고, 그래서 약속이라고 해봤자 분기별로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생활. 정말 일 년에 서너 번의 약속만 있었던 5년이었다. 입맛도 그다지 없었고, 그냥 연명하는 식으로 살아왔었다. 그때는 잘 먹지 않아서 오히려 당시의 수 선생님이 제발 너는 삼겹살이라도 좀 구워 먹고 오라고 할 정도. 그렇게 살다 보니 나는 물 한 모금 마시면서도 그게 몇 그램인지 자동 계산이 될 정도의 인간 계량기가 되었었다.
1년 전부터 그 계량기가 고장 났다. 계량은 되지만, 내가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먹으면 얼마나 수분이 차는지 알면서도 달리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어서 먹고 또 먹었다. 코로나가 되면서는 매우 마음을 놓고, 그렇게 확찐자가 되었다. 내가 아픈 사람이라 나는 남의 병으로 하는 농담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번은 어쩔 수 없이... 이 농담에 나를 맡긴다.
무려 3킬로그램의 체중을 몇 번에 걸쳐 올려 버렸다. 마지노선을 뚫고 나는 새로운 건체중에 도달했다. 과연 본래대로 돌아가는 데 얼마나 걸릴까. 아니, 돌아갈 수나 있을까? 사실 이런 체중은 아프고 나서 처음이다. 건강한 시절 언젠가의 체중이다.(맙소사.ㅋㅋㅋ)
2년 전, 투석생활 중 최저 체중이 되었다. 살을 뺀 비결은 하나. 첫사랑. 나는 참 특별하다 못해 특이한 인간이라 남들보다 매우 무척 늦게 첫사랑을 했다. 그때는 마음이 먹는다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앞섰다. 누군가의 예쁘다는 말 한마디에 온 생애가 흔들려버린 나는,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그렇게 살았다. 그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그래서 내가 그의 손을 잡기로 결심한 그때부터는 먹지 않아도 배부른 날들이 계속되었다.
아프니까 평범해질 수 없다, 는 문장에 갇혀 있던 나의 세계를 처음으로 부순 사람. 그 사람에게 흔들린 그 순간. 갑자기 혈압이 확 올랐다. 약을 먹어도 적절하게 조절이 되지 않는 혈압. 그게 살이 빠졌다는 신호였었다. 500그램 건체중을 내리고, 그 며칠 후 원장님은 한 번에 1.6킬로그램의 체중을 또 내리라고 지시하셨었다.
첫사랑은 너무 행복했고, 동시에 또 매우 불행했다. 그 첫사랑이 끝나니 나는 갈 곳을 잃었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또 쌓여서 먹었다. 먹고 또 먹다 보니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였다. 핑계가 생겼다.
살이 찐 나를 보면 엄마는 행복해한다. 말랐다고 난리 치던 친구들도, 코로나로 만나지 못했지만 살쪘다는 얘기만 듣고 본인의 일처럼 기뻐하고 있다.(대체 어느 지점이 기쁜건지... 우리들의 우정은 흔들리고 있다!)
여전히 나는 잘 먹고 있다. 지난 저녁에는 매운 떡볶이를 잔뜩 먹었다.
투석 간 수분 증가가 1.xx킬로그램으로 매우 모범적인 환자였던 내가 요즘은 늘 3.xx의 수분을 제거하고 있다. 처음에는 너무 놀랐던 선생님들이 이제 더는 저 엄청난 숫자에 놀라지 않는다. 다만 오늘도 몸에 무리가 갈 것 같다고 걱정을 하실 뿐.
내 체중에 3.xx의 수분은 정말 무척 과도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무리되는 숫자를 계속 지고 고집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월, 수, 금의 오후는 늘 컨디션이 좋지 않다. 요즘 화도 잘 낸다. 아프면 그렇게 화가 나고, 화를 내고도 아프다는 것이 핑계와 면죄부가 되어주는 악순환.
그런데 몇 시간 전 구토를 했다. 저녁을 잔뜩 먹고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했다. 봐야 하는 페이지까지 보고서 쏟아지는 졸음에 쪼그려서 잠깐 잠이 들었다. 한 시간 남짓. 깨어나니 속이 좋지 않았다. 샤워하고 나오려다가 말고 먹은 걸 토해냈다. 기분이 좋지 않다.
며칠 전부터 새로 시작한 운동을 억지로 다 했다. 힘들다고 몇 가지 동작을 남겨놓고 끝내는 건 내가 운동 앱에 지는 일 같아서 억지로 운동을 모두 다 했다. 매일 하는 마사지를 했다. 아침에는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도 받았고, 동생이 사준 매운 떡볶이도 온 가족이 맛있게 먹었고, 오늘 해야 할 공부도 했다. 운동, 샤워, 마사지 모두 했다. 푹 자면 마무리되는 하루가... 그러나 마무리되지 않는다.
소화가 되지 않은 채로 시계의 숫자는 0:01로 바뀌며 오늘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냉장고에 시원한 활명수 한 병이 있었다.
마사지하면서부터 보고 있던 인간극장을 이어 보면서 활명수 한 병을 천천히 다 마셨다. 끄억끄억. 우렁찬 소리를 뱉는다.
서서히 소화가 되기 시작하니 글이 쓰고 싶어 졌다. 인간극장에 나오는 서울 야경에 가슴이 설렌다.
다시 전처럼, 아니 전보다 더 모범적인 환자가 되어야겠다고. 아니 그러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미 새벽은 깊어버렸지만 저녁부터 저축해 둔 잠이 있으니까 짧지만 푹 자고 일찍 일어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