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사랑은 내리사랑이지.

by 이정연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아들방에 들어간다. 갑자기 찬 공기가 훅 들어가니 추운지 미간을 찌푸리며 뒤척이는 아들. 찡그리지마~하고 이마를 만져주고 다시 푹 자라고 문을 닫고 나왔다. 결혼도 안한 나에게 무슨 아들이냐고?

사실은 네 살 터울의 남동생이다.


어릴 때 너무 허약해서 코피가 자주 나고, 잘 울던 아이였다. 지금은 키 184센티미터에 80킬로그램의 건장한 청년이지만. 물론 얘는 태어나던 순간을 제외하고 늘 키와 덩치는 컸더랬다.


2000년대 초반 우리 집이 망해서 잠깐 큰집에 맡겨졌을 때, 그 낯섦에 울음을 터트리던 아이였다.

"누나야 우리 손 잡고 자면 안되나?" 울음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말하는데 "자-"하고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님은 어디에 가 계신지도 모르고, 아마 그 때의 아이에게 온 세상에 의지할 것은 내 손 밖에 없었을 것이다. 손을 잡고서 안심이 됐는지 조금 재잘거리다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숨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깨어있었다. 10월이 다 된, 공기가 차가운 밤이었다.


그 때도 동생은 키 170에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비만이었는데, 나에겐 아기처럼 느껴질만큼 귀여웠다. 성인이 된 이후로도 한참동안 나에게는 그러했다.


큰어머니는 정말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 우리는 매우 착하고 얌전하게 지냈음에도 삼 일이 안 되어 쫓겨나 할머니께로 보내졌었다. 그 삼 일 동안의 기억은... 동생과 마늘을 빻던 기억. 물론 삼 일 내내 마늘을 빻은 것은 아니고, 어차피 집이 망해서 학교도 못가고 피신해 있는 우리에게 할 일도 없으니 마늘을 빻아놓으라는 큰어머니의 주문이 있어서였다. 이제와 말하니 무슨 학대처럼 들리는 일화이긴 하다.


"누나야 팔 아프잖아-" 내가 절구를 잡고 콩콩거리고 있으면 이내 절구공이를 빼앗아든 동생이 혼자 엄청 많은 마늘을 찧었었다. 그래도 난 곧 어른인데. 아무리 튼실하다고해도 넌 아직 아기인데... 누나 먼저 생각하는 착한 아이.

한창 성장기라 먹고 싶은 게 많았을텐데, 눈치 보느라 밥도 겨우 한 공기만 먹은 불쌍한 아이. 그 때 큰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에는 똑같은 뚝배기의 된장찌개가 삼 일째 물만 더해져서 뜨겁게 올라오곤 했다. 찌개의 농도와 맛은 하루하루 연해졌다. 그 때 쫓겨난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계속 그 곳에 있었다면 동생은 영양실조로 절구공이를 잡은 채 죽었을지도 모른다. 흑흑.


그 사이 많은 고난이 있었고, 우리는 대구에서 경북 산골로, 경기도로 무진 옮겨다녔다. 동생과 나는 그 때 서로에게 유일한 친구였다. 만약 형제 없이 혼자였다면 이겨낼 수 있었을까, 늘 생각한다. 모든 순간을 함께 겪었기에, 적어도 나의 상황과 감정을 온전하게 이해할 사람이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것은 불행을 뿌리치고 한 발짝이라도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어 주었다. 뿌리친다고 불행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하나를 떨쳐내면 다음 것이 또 엉겨붙는 식이었지만, 그래도.


하지만 지금 생활에 찌든 동생은 이기적이다. 모두들 출근한 주말에 본인이 먹고 남긴 그릇 한 번 씻어둘 줄 모르고, 집에 생필품이 떨어져도 사다놓을 줄 모른다.

친구들이 다 학교 다니고 마음껏 뛰놀 때 집에서 설거지하고 청소하던 불행한 십대 시절을 보내서인가. 물론 그런 시절을 보냈기에 엄마도, 나도 동생에게 잔소리를 하지 못하지만.


한 동안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는데, 밤늦게 퇴근하고 오니 싱크대에 설거지가 그대로 있다. 보온 도시락이 망가질까봐 집에 오자마자 내 도시락과 싱크대에 있던 설거지를 싹 해버렸다. 왜 저렇게 이기적인가. 평일내내 힘든 회사생활에 지쳤을 동생을 이해하면서도 이기적이라는 생각에 불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짜증이 나려던 찰나, 동생을 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들. 저 아이는 내 아들이다.


엄마는 늘 지친 몸으로 집안일을 기꺼이 하니까. 엄마의 마음으로 설거지를 했다. 아, 이거구나. 동생을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니 화가 날 게 없었다.

그래. 2000년대 중반 언젠가의 그 밥상. 정말 가난하던 시절이라 밥상에 있던 거라곤 콩나물 국, 콩나물 무침에 계란후라이와 김치. 그래도 밥만은 갓 지어 나쁘지 않았던 그 밥상에 둘이 나란히 앉아서 밥을 먹었다. 동생이 오물오물 먹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마음 아파서 내 몫의 계란후라이를 뚝 떼서 동생 밥 위에 얹어주었다. 그 때 알았다. 자식이 먹는 모습만 보아도 배부른 부모의 심정을.


이런 애틋함을 알게 해준 아들을 미워하면 안돼. 혼자 피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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