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할 일 잘하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면 되니까. 내가 아프다는 사실만으로도 편견을 갖는 일이 혹시라도 생길까 봐, 내가 행여나 실수하게 되는 순간 아파서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해버릴까 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프다는 사실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지만, 나에게는 늘 약점이기도 해서. 나는 돈을 버는 일에서만큼은 당당하고 싶었다. 흉터가 있는 팔뚝만 가리면 아무도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게 득인지 독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개인적인 친분 없이 일로 만난 사람들을 정말 일로만 대하고 싶었더랬다. 그리고 상사분들도 동료도 모두 남자분들뿐이어서 서로를 철저히 일로만 대하니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아프기 전에도 해 보았던 일이라,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일이 훤히 보인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서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굳이 건드리려 하지 않는 운영 프로그램을 혼자 익혀서 하니 사장님도 부장님도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내가 노력하는 만큼 나의 진심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아프기 전에도 늘, 고용주 입장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월급을 아깝다고 생각하게 되는 사람은 절대로 되지 말자는 게 신념이었다. 은근한 노예근성이기도 하고, 엄마에게 배운 성실에 바탕을 둔 신념이기도 하다.
아픈 이후 6년 간 나는 나를 전혀 책임지지 못하고 살았다. 하지만 기왕 나를 책임지기로 하였으니 월급날 사장님이 기분 좋게 주시는 편이 서로를 위해 좋다고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늘 최선을 다해 일했다. 물론 월급은 김대리님이 입금해주지만. 사장님은 다른 곳에도 사업장이 여럿 있는 분이라 마주할 일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나는 주어진 일 이상으로 해내는 떳떳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과한 수준의 최선은 다하지 않는다. 그러면 내가 불만이 생길 테니까.
처음부터 투석을 하는 월, 수, 금은 빼고 계약된 관계였다. 다만 그 핑계는 투석이 아니라 공부였다. 내가 쭈욱 공부를 하고 있다고 알고 계셨기에 정말 오랜만에 만났던 이번 봄에 그러셨었다. 공부는 잘 돼 가냐고. 정말 잘 돼서 떠나면 좋겠다고 싱긋 웃으셨다. 사실 계약되지 않은 날에도 나를 필요로하시면 일을 했다. 투석 후엔 출근할 수 있을 만큼 체력이 따라주었기에, 아프다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 전에 부장님이 나의 월, 수, 금에 대해 잠깐 말씀하신 적이 있다. 왜 늘 그때만 곤란한지 가볍게 물어보셨었다. 어디 몸이 안 좋으시냐고, 농담인지 걱정인지 모를 그 말에 "제가 지병이 있어서요."하고 허허허 웃었는데 평소에도 부장님과 나는 아재 개그를 비롯한 많은 농담이 통용되는 사이이기에 부장님도 "아, 그러십니까"하고 놀라는 척하며 웃고 말았다.
그런데 지난주, 투석받는 팔에 불거진 혈관이 소매 아래로 살짝 드러나 몇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는 그게 멍처럼 보였었나 보다. 팔이 왜 그러냐고 부장님이 대뜸 물어보셔서 정말 뜨끔했다. 투석 때문에 이런 상태인데, 그저 멍이 잘 드는 체질이라서 그렇다. 나도 모르는 사이 어딘가에 부딪혔나 보다고 말하고 넘겼다.
개인적인 관계를 맺지 않을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앞으로 새로이 시작한 이 수험생활에 성공해, 아프다는 걸 내보이고 입사하게 되더라도 나는 굳이 먼저 아프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사람들이 쓸데없이 나에게 편견을 가지지 않길 바라서인지, 내가 여전히 내 병에 떳떳하지 못한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그래도 아직은 그러고 싶다. 아픈 일에 대한 얘기까지 공적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지는 않다. 아직 내 마음이 어리고, 조금 삐뚤어져서 인지도 모른다.
오늘 시험을 치르고 왔다. 다시 시작하는 수험생활에 필요한 첫 번째 시험이다. 그전에 한 번 실패했던 수험생활이 있었기에,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한 이번 준비로도 비교적 수월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실패한 수험생활로 쌓인 공부와 내공도 만만치 않았다. 그 실패가 고마웠다.
두 달 정도 전부터 준비를 시작했고, 그중 대부분의 시간을 적당히 혹은 가끔 공부했다. 매우 집중해서 열심히 공부한 시간은 아마 시험 전 열흘 남짓이었던 것 같은데 내 마음에 꼭 들어차진 않지만 고득점으로 가장 높은 급수를 획득했다. 이랬는데 마킹을 엉망으로 한 건 아니겠지. 크크큭. 이제 또 다른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 치른 시험도 생애 처음, 다음 치를 시험도 생애 처음이다. 처음 해보는 일들을 마구마구 늘려가며 나의 자기 효능감을 차곡차곡 쌓아가려 한다. 자기 효능감이나 쌓자고 하는 공부는 아니지만, 정말 필요해서 하는 공부이긴 하지만 나도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이 기분은 실로 짜릿하다.
아파서, 가진 것이 없어서. 늘 이런저런 이유들로 패배감에 절어서 살아가던 나에게 Y 오빠가 인생의 선배로서 해주었던 말이 있었다. 그는 나의 학교 선배도, 나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도 아니고 특이하게도 가장 친했던 친구의 6년 된 남자친구였더랬다. 지금은 나도 그녀와 헤어졌고, 오빠도 그녀와 헤어졌다. 나와 오빠는 아주 가끔씩만 안부를 주고받는 정도로 남았다. 어쨌든 그런 어려운 사이임에도, 단 한 번 단둘이 만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오빠가 해주었던 말을 기억나는 대로 옮긴다. 물론 친구가 먼저 제안한 만남이었다. 몰래 만난 거 아니다.(오빠는 그때 손을 많이 써서 손목 수술을 받았고, 외국에 체류중이었던 친구는 그런 오빠가 걱정되어 퇴원 후 상태를 체크할 겸 나를 보냈다.)
"정연씨, 저는요 사실 늘 실패하면서 살아온 인생이에요. 정연씨도 알다시피 우리 학교 나오면 대부분 대기업에 취업이 잘 돼요. 제대하고 나서 저도 잠깐 몸이 안 좋아서, 휴학을 했던 적이 있어요. 그러고 학교로 돌아가니 모든 게 힘들더라고요. 친구들처럼 취업 준비를 위해 해 놓은 것도 많이 없고. 그때는 인간관계를 비롯해 모든 것이 힘들었어요. 어쨌든 친구들이 하나 둘 대기업에 합격하길래, 저도 대기업에 원서를 열심히 넣었죠. 저는 원서만 150번 쓴 것 같아요. 물론 그중에 최종까지 간 적도 여러 번 있긴 한데, 늘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어요. 계속해서 패배만 했죠. 그러다가 조금 하향 지원해서 D그룹에 결국 합격해서 들어가긴 했지만 내가 정말 원했던 회사 최종에서 떨어졌을 때 정말 힘들었어요. 그리고 서류합격도 못하고 떨어진 원서도 나는 100개가 훨씬 넘거든요.
사람이 인생에 이렇다 할 성취가 없고 계속 실패만 하니까, 나중에는 정말 나는 패배한 인생이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같은 학교를 나왔고, 내가 친구들보다 그렇게 떨어질 것도 없는데 자꾸 나만 실패하니까요. 그러다 한 번 새롭게 도전하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청년 창업 지원해서 오늘까지 온 건데. 이것도 쉽지만은 않네요. 그래도 적어도 계속해서 문은 두드려봤다는 당당함은 있어요.
여자 친구의 제일 친한 친구로 정연씨를 아는 거니까, 내가 후배 대하듯이 편하게 얘기하기가 어렵고 그래요. 그래도 내가 얘기하면 정연씨는 알아들을 거 같아서, 내가 보고 느끼는 정연씨는 그렇게 도망치고 주저앉지 않아도 될 거 같아서 얘기하는 거예요. 그때 면접 앞두고 도망친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계속 실패하던 20대 때의 내가 생각나서 언젠가 한 번 깊게 얘기를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간에 나는 계속 도전해왔고, 도망은 치지 않았다고요. 정연씨는 아픈 것 때문에 늘 주눅 들어 있는 것 같아서. 더 당당해져도 되고, 스스로를 믿어도 돼요. 그리고 스스로 발전하는 일에서 멀어져 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주 작은 성취부터 시작해서 점점 그 크기를 키워가요. 처음부터 한 번에 큰 걸 얻을 순 없어요. 그런데 작은 것 하나를 성취하고 나면 자신감이 붙어서 또 도전하고, 또 도전할 수 있어요. 그러면 진짜 큰 기회가 왔을 때 그걸 잡을 수 있는 거예요."
정말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인생의 선배로서 정말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이제 선배시니까 말씀 편하게 해 주십사 하였건만 Y오빠는 끝끝내 나를 정연씨라고 부르다가 우리는 제각기 그녀와 이별했다. 이제 뭔가 일정 선을 넘어서 가까워질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 여전히 Y오빠는 나를 정연씨라고 부르고 깍듯하게 대한다. 그리고 반년에 한 번 물었던 안부는, 이놈의 역병 때문에 지난 4월쯤 한 번.
나는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언젠가 누군가가 말했던 대로, 내가 아프다는 걸 알고 나를 받아주는 일터는 절대로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래서 공부 하나 안 하면서도 지난 2년간 가짜 수험생의 타이틀만은 놓지 못한 이유는, 아픈 걸로 나를 차별하지 않고 기회를 줄 유일한 일이 공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프다는 걸로 서류에서 떨어질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아픈 사람을 위한 전형도 따로있다.(그 전형에 부합되는 걸 보면 내가 정말 많이 아프긴 한가보다.)
몇 달 전 정말 다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던 방향을 틀어서 준비를 시작했다. 가야 할 길이 멀다. 해야 할 공부도 전에 비해 더 많아졌다. 그럼에도 이 도전을 다시 시작하기로 한 이유는, 여기서 끝날 인생은 아닌 것 같아서. 여기서 끝날 인생은 아니어야만 해서. 아프기 전의 나는 나를 무한히 믿었고, 나를 크게 될 인간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에 여기서 주저 앉으면 단 한 번뿐인 나의 인생이 엉엉 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그렇게 엉엉 울어 왔으니까, 이제 눈물을 그치고 나아가야만 한다.
경쟁률은 생각 이상으로 높지만, 나는 이제 도망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나에게 단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로 했다. 그 첫 번째 관문을 이제 막 통과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비겁하게 살아왔는지 단 몇 편의 글로 다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그렇게 나는 도망에 도망을 거듭해왔다. 아프다는 한 마디가 얼마나 큰 방패막이가 되어주는지. 물론 아픈 사람들이 모두 도망치는 건 절대로 아니다. 마음이 건강하고 위대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나도 늘 도망만 쳐온 것은 아니지만, 그 위대한 사람들에 지금껏 나는 포함되지 못했다. 난 도망치며 청춘을 허비해왔다. 앞으로는 그 어느 것에서도 도망치지 않는다. 이런 비겁한 나도 도망치지 않으니까, 멋진 당신은 절대로 도망치지 않기를 바란다. 조금쯤 쉬어가는 건 괜찮다. 인생에 있어서 쉼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니까. 하지만 절대로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