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를 떠나보내며

겁 없이 한 번에 매복치 두 개를 뽑는 멍청함. 후회한다.

by 이정연


7월 3일은 깨어나면서부터 지옥이었다. 전날 매복치인 오른쪽 사랑니 두 개를 한 번에 발치했다. 전철을 타고 집에 오는 내내 아팠다. 많이 아프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친한 친구인 E는 매복치를 처리하고도 아무렇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후자가 나의 경우이길 바랐다. 계속 피가 나면서 나중에 핏덩어리가 잇몸에 매달려 이에 씹히기에 지속적인 불쾌감을 느꼈지만, 이나 잇몸의 통증은 그리 심하지 않았고 배가 아파서 화장실도 다녀왔다. 나는 주로 화장실에 가면서 나의 건강함을 느끼기에,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서울까지 다녀온 피로가 한 번에 몰려왔다. 거실 한복판에 쪼그려서 엄마가 즐겨보시는 드라마 VOD를 보다가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는 엄마가 티브이를 보시다가 주무시는 핫 스폿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켜 나를 침대에 뉘었다.


새벽 2시 22분. 쪼르륵. 입에서 무언가 쏟아져 나왔다. 아뿔싸. 피를 토했다. 자는 도중에 피를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하여서 쌓이고 쌓인 피가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온 것. 베개에 수건을 덮어둔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사실 전날에도 피가 입가로 샌 적이 몇 번 있어서 일찍이 수건 하나를 깔아 두고, 또 여분의 수건을 머리맡에 준비해두었었다. 나의 준비성에 치얼스, 는 개뿔. 정말 피곤해서 자고 싶었다. 침이나 피를 뱉지 말고 삼키라는 주문을 받았었으니까 최대한 삼키려고 해 봤지만, 종일 피를 삼켰는데 더 이상 삼킬 수 있을 리가 없다. 입가에 힘만 살짝 풀어도 피를 쏟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 정도로 지혈이 되지 않고 있었다.


평소 투석 때문에 혈전제를 복용하고 있고, 이렇게 피가 나는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혈전제를 중단한다. 이번에는 닷새. 지난주 토요일 아침부터 혈전제 복용을 중단했다. 치료에서는 큰 문제없이 지나갔고, 7월 1일 저녁 대학병원에서 받아온 진통제를 미리 먹었다. 2일 아침에도 마찬가지로. 정말 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발치를 하는 순간, 드릴 소리와 통증만 잘 견뎌내면 아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취는 물론 아팠지만, 발치하는 동안의 드릴 소리는 그다지 길지 않았고, 교수님이 내 아가리를 잡고 낑낑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왜 이렇게 피가 많이 나지."라고 하시는 말씀은 다섯 번쯤 들은 거 같다. 그래도 발치하는 동안은 옆에서 젊은 선생님이 피를 다 빨아들여주니까 큰 불쾌감 없이 견뎠다. 약도 닷새 간이나 끊었는데, 지금 이건 운명의 장난이다.


입 안의 핏덩어리는 내 혀로는 끊어낼 수 없을 만큼 엉기고 엉겨서 계속 내 입 안의 일부인 듯이 그 자리에 있겠다고 시위 중이고, 나는 힘 없이 휴지에다 대고 피를 흘리고 또 흘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휴지를 모두 모으니 침대 옆에 울긋불긋한 산이 생겼다. 방 안은 피 비린내가 가득하다. 그런데 하루 종일 맡던 냄새라 처음에는 그게 피 비린내인 줄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피를 충분히 뱉었다고 생각되는 순간 입을 깨끗하게 닦고 다시 누웠다. 눈을 꼭 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또 입은 피를 뿜어낸다. 나는 그 순간 서서히 끓어오르는 마그마를 품은 활화산이었다. 또 피를 흘려대다가 엄마를 깨워보기도 했지만, 엄마를 깨운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니까. 일어나지 않는 엄마를 뒤로 하고 내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피 비린내가 훅 끼쳤다. 방 꼴을 보니 말이 아니다. 누워서 잠을 청하다가 또 피를 쏟아내며 깨고, 휴지를 들고 피를 흘려대고. 그 잔해가 엄청났다. 누워서 잠을 청하려는 내 욕심에, 과다출혈로 얼마나 채찍질을 맞았던가. 이제 잠드는 것은 포기하자. 일단 피 비린내 나는 잔해를 치우기로 했다. 쓰레기봉투를 가져와서 꾹꾹 눌러 담는데도 10리터에 한 가득. 저 모든 잔해에 내 피와 핏덩어리가 있다고 생각했더니 일순간 어지러움을 느꼈다. 조준을 잘했음에도 바닥에 피가 흘러있다. 알코올을 부어서 닦는데도 잘 닦이질 않아, 살인자들이 살해 현장을 닦을 때 왜 그렇게 온갖 세제와 약품을 쓰는가 알게 되었다. 고작 몇 개의 내 핏자국을 닦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다니. 나는 역시 늘 과하다.


병원에 가면 무슨 수라도 나겠지, 하고 새벽 6시 10분 집을 나선다. 전쟁이 나도, 투석은 받아야 한다. 그게 공휴일에도 병원이 문을 여는 이유다.

내 자리 침대 머리를 한껏 올렸다. 그럼 뭐해. 잠깐 잠든 사이에 또 마스크 안에서 피를 발사했나 보다. 목으로 뭐가 흘러내린다. 거즈를 물고 있었는데도 입가가 피범벅이 되었다. 정말 겁이 확 났다. 집에서 마음껏 피를 흘려버릴 때는 그렇게 겁이 나지 않았는데. 나는 쓰레기봉투도 있고, 휴지도 잔뜩 있었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 투석실에서는 열심히 피를 삼키며 참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실패다. 그렇게 피범벅이 되고 나서야 선생님한테 비닐봉지를 달라고 했고, 거기다 뱉어낼 걸 모두 뱉어냈다. 피범벅이 된 얼굴을 직접 닦아주는 원 선생님이 너무 다정하고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이제 나는 무섭다. 핏덩어리는 내 뇌까지 삼켜버린 것 같다. 사고가 되지 않는다.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당장 이 바늘을 뽑아버리고 대학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다. 나를 제외한 세상 모두가 침착해서, 나는 엉엉 울어버렸다. 아, 이 나이에... 원장님은 출혈이 심하면 요독이 확 올라가기 때문에 나를 그냥 보낼 수가 없다고 했다. 어린이에게 하듯이 한 문장 한 문장 끊어 말하며 조금만 참자고 했다. 김 선생님은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30분 일찍 투석을 끝냈다.


그 사이 엄마는 병원 아래에 와서 대기 중이었고, 건물을 나서자마자 주황색 택시가 보인다. 강남에 갈 거라고 하니 기사님이 대번에 타라고 손짓을 한다. 오전 11시 40분. 이 시간, 이 자리에 서울 택시라니. 아주 미묘하게 행운이라고 느낀다. 엄마는 500미터쯤 같이 타고 가다가 내렸다. 4시까지 출근인데 나를 따라 강남까지 갔다가 다시 일산으로 가는 건 무리다. 그래도 같이 가겠다고 고집 피우는 엄마에게, 이런 순간 나는 매우 현실적이고 냉정하다. 500미터 동안 내게 혼이 나더니, 엄마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나는 충분히 혼자 이 일을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니까, 엄마는 회사에 가는 것이 맞다. 엄마가 같이 간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엄마가 내렸다. 나는 재빨리 문을 닫아버렸다. 엄마는 그렇게 해야만 가니까. 그래,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새삼 알겠다. 주연 님은 그렇게 무모하게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화내서 정말 미안해.


기사님과 단 둘인 택시 안에서 피를 흘려대면 좀 그렇지. 강남까지 가는 1시간이 안 되는 사이에 또 마스크를 제대로 적셨다. 고개를 숙이고 병원에서 가져온 비닐과 물티슈를 이용해 뒤처리를 했다. 마스크는 버린다. 그리고 얼른 새 마스크를 끼고 고개를 들었다. 자유로를 타지 않았는데, 무척 빠르다. 무조건 빨리 모셔다 드리겠다던 기사님의 자신 있는 말씀이 거짓이 아니었다. 슬슬 반포대교 쪽으로 올 때 아까 소란스러워서 죄송했다고 말씀드렸다. 모두 이해한다고 하셨다. 응급실 앞에 내린다. 네이버 지도에서 보았던 딱 그만큼의 택시비가 나왔다. 정말 운전을 잘하시는 분이구나, 새삼 감탄했다. 저도 다음 주 월요일에 여기 진료받으러 와요. 여기서 수술 받았었거든요. 치료 잘 받으세요, 아가씨. 하고 말씀을 건네시는 것이 아주 담백하고 따뜻했다.


응급실 입구에서 문진표를 작성하고 체온을 재고 문진표 확인을 하고 들어간다. 나는 심각하게 아픈데, 안경을 낀 젊은 남자분은 나에게 "보호자시죠?"라고 당연한 듯 묻는다. 오늘따라 왼팔 혈관이 도드라져서 꼴 보기 싫었는데, 보호자처럼 보인다는 사실에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났다. 쓸데없는 과정들을 거쳐 혼자 응급실에서 치과로 올라갔다.

점심시간인데 친절한 여자 선생님이 계셨다. 교수님은 오전 진료만 있으셨고, 30분에 이규현 선생님이 봐주실 거예요. 30분까지 선생님은 나한테 이것저것 질문을 받고도 한결같이 예쁘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치과에 오기 전 불친절했던 응급의학과의 기억은 잊혔다.


이규현 선생님. 내 글에 처음으로 실명으로 등장하는 분이 되었다.(아니네.. 주연 씨 이름 나왔네. 주연 씨는 엄마다.) 늘 가명을 쓰는 내가 웬일로. 키 크고 잘생겨서 실명 쓰는 거 절대로 아님. 웃기려고 한 농담이다. 지금도 볼은 잔뜩 부어있고, 매우 뜨겁다. 치통도 있다. 안 그래도 작명 센스는 지난 빙하기에 얼어서 떠내려갔는데, 이름 지을 정신 같은 건 이 순간 없다.

나는 진짜 핏덩어리를 달고 있었다. 선생님은 투석환자 중에는 가끔 나 같은 케이스가 있다고 했다. 역시 흔한 건 아니란 말이군. 혈소판 수치가 낮냐고도 물었다. 나를 진료 의자에 뉘어놓고 혈전제 얘기를 하기에, 지난주 토요일부터 닷새간 끊고 발치했노라 하였다. 그렇게나 나를 괴롭히던 핏덩어리를 모두 제거해주었다. 눈을 꼭 감고 있었음에도, 매우 꼼꼼하게 온갖 기구를 이용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마취를 하면 지혈 효과가 있으므로 마취를 할 거라고 했는데, 핏덩어리를 제거할 때는 다정하게 설명해주던 선생님이 예고도 없이 훅훅 마취 주사를 들이댔다. 계속 긴장이 됐다. 피를 빨아들일 건지, 나를 찌를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발치 때의 마취와 느낌이 달랐다. 액상으로 된 지혈제로 적신 거즈를 내 입 안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침을 삼키니 씁쓸한 지혈제의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대로 20분 정도 기다려서 상태를 보자고 했다. 길고 긴 20분이었다.


만약 이런 처치로도 지혈이 되지 않으면 뭔가 꿰매거나 해야 한다고 했는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피는 멎었다. 선생님은 다시 입 안을 살펴보고, 액상형 지혈제를 듬뿍 적신 거즈를 비어버린 사랑니 자리에 넣었다. 4시 반까지 꼭 물고 계세요. 그걸 꼭 무니까 또 턱이며 볼이 아프다. 택시를 탔다.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최고다. 강남에서 파주까지 어떻게 한 시간이 안 걸리냐고. 서울 어드매에서부터 일산까지는 설핏 잠이 들었다. 구산동에서부터 정신이 차려졌다. 그러고 또 한 번 졸았던 것 같다. 나머지 자유로에 대한 기억이 없다. 네이버 지도에서 알려준 택시비보다 만원이 더 나왔지만, 이제 집이다. 누울 수 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탈의를 하고 손을 씻었다. 다른 건 할 여력이 없다. 아직 4시 반까지는 좀 남았다. 턱이 얼얼해도 참고 계속 물어야만 한다. 4:12. 아직도 한참 남았네 속으로 한숨을 쉰다. 아이스 팩 얼려둔 걸 꺼내서 오른쪽 볼에 가져다 댄다. 깨끗한 손수건으로 한 번 쌌는데도 너무 차갑다.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나 보다. 깨어나니 어느새 5시 반. 움직이지 않는 턱을 잘 달래고 혀를 잘 써서 깊숙한 곳에 박힌 거즈 덩어리를 빼낸다. 피만 흥건했던 때와 달리 지금은 피로 물들지 않은 부분도 있구나. 조금은 안심이 된다. 그리고 병원에서 선생님이 챙겨주었던 멸균거즈 한 포를 뜯어서 두 번 접어서 입 안에 또 밀어 넣는다. 한 번, 두 번. 손짓을 하며 두 번 접어서 넣으라고 설명해주었던 선생님 몸짓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다시 눕는다. 이내 잠이 든다.


깨어나니, 밖은 어둡다. 동생은 야근. 엄마는 당직 출근. 혼자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다. 거실 한편에 아무렇게나 버려둔 핸드폰을 찾으러 나갔다. 생각보다 메시지가 많다. 걱정하는 친구에게 설명을 하다 보니, 대학병원에서 받아온 진통제와 항생제 생각이 났다. 그 길로 약봉지를 뜯어서 알약 두 알을 삼켰다. 식후에 먹는 약인데 그냥 털어 넣어 버렸다. 동생이 퇴근해 돌아왔다. 집에 가족이 돌아오니 그제야 허기가 진다. 냉장고에 있는 죽을 꺼내서 또 마시기 시작한다. 겨우 0.5인분의 죽을 모두 다 삼키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이를 닦았다. 처음으로 피가 나지 않는 칫솔질. 부어있는 오른쪽의 민감한 부분은 피하되, 최대한 깨끗하게 칫솔질을 하고 가글을 했다. 누워서 영상을 보다가 꾸벅꾸벅 조니까 동생이 영상을 꺼 주었다. 자다가 가위에 한 번 눌렸다. 그러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또 잠이 들었다.


겨우 잠드는 일일뿐인데, 이것만으로도 행복하다. 24시간 이상 대출혈을 겪으며, 그저 이 핏덩어리만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들려고 누웠는데 피를 토하면서 깨는 일만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먹는 일, 잠드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 새삼 느꼈다.

매복치 두 개를 발치했던 그제, 돌아오는 전철에서 혼자 글을 썼다. 글을 쓰는 동안은 글에 집중하느라 아플 수 없었다. 나의 감각은 시시각각 변해서, 나는 십 분에 한 번씩 새로운 문장들을 추가했다. 아픈 감각은 그대로이지만, 그냥 그 순간은 쓰느라 아플 새가 없었다. 그 글은 영원히 발행하지 않을 테지만, 그렇게 서랍에 쳐박히게 될 글도 마찬가지로 나의 치유이자 구원이 된다는 사실. 글을 쓰는 일은 새삼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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