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중 어떤 분이 나의 별그램에 댓글을 달았다. 내 글을 읽고 브런치 작가 소개에 연결되어 있는 계정을 보고서 사진을 구경한 듯했다.
사진을 좋아하는 나는, 사진과 짧은 글을 함께 올리는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브런치에는 호흡이 긴 글을 올리지만, 그곳에는 대충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짧은 문장들을 끄적이거나 순간의 슬픔을 폭발적으로(?) 박제하곤 했다. 이 곳과 다른 맛이 있어서 익숙하진 않았지만 나름의 감정 분출 창구로 잘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 구독자님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그분의 댓글도 여러 차례 받고 보니 기분이 좋았다. 새 친구가 생긴 느낌이었다.
10여 년을 아프다 보니 어느새 만나지 않는 친구들도 많아졌고, 주변에 새로운 인연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심지어 아픈 내내 같은 병원을 다니고 있어서 주위의 얼굴들도 거의 변하지 않는다.
그런 내게 브런치는 신세계였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수없이 많은 분들이 내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로 마음을 나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댓글로 말을 걸어오는 분들이 모두 친구처럼 느껴졌다. 나이와 성별과 지역, 모든 것을 떠나서 나를 아주 아껴주는 친구처럼 느껴졌다.
글쎄. 내가 그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좀 요상할 정도로 기억력이 좋다. 물론 학습적인 면에서도 그랬다면 싸울대에서 박사과정까지 밟고 지금쯤 인류의 역사를 뒤흔들만한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기억력은 학습 외적인 부분으로 한정되어 있다. 예리하기까지 하다.
그분이 내 별그램에 댓글을 남긴 이후, 그 전의 언젠가 브런치에도 댓글을 남겨주었던 분인 것을 알아차리고서 알은척을 했다. 그러고는 내 새 글에 그분이 길고 긴 댓글을 남겨주어, 나는 기왕지사 별그램까지 연결되어 있는 인연인데 하는 마음으로 생전 보내지 않던 직접 메시지로 그분께 말을 걸었다. 훈훈한 칭찬이 오갔다. 그리고 그날 밤이었나, 그분에게 차단을 당했다.
내가 혹시 무슨 말실수를 했나, 아니면 메시지를 보낸 것 자체가 부담이었나. 혼자 매우 많은 고민을 했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얼마나 싫고 꺼려졌으면 나를 차단까지 했을까. 그리고 그분은 당연하게도 그 후, 내 브런치 구독을 끊어버렸다. 프로필 명도 바꾸신 것으로 보아, 나를 매우 매우 싫어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세상에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아마 지금도 누군가는 나를 싫어하는 낮이나 밤을 보내고 있을터. 열 명의 사람이 있으면 적어도 둘이나 셋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나를 열렬히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고백을 받았던 학창 시절을 거치며, (어떤 이유로 인해서 정연이 너를 싫어했었어, 혹은 이러이러한 이유로 네가 싫어라고 고백하는 학우들이 있었다. 내가 그들을 괴롭혔던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함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은 나를 힘들게 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오후에 대학병원 진료를 앞두고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그러다 내 글에 달린 댓글까지를 쭈욱 읽다가 '탈퇴한 사용자'님의 댓글을 보았다. 글을 정말 재미나게 쓰시던 A 작가님이셨는데, 마지막에 악플 때문에 고생하셨었다. 이유 없이 공격하는 메일이나 댓글을 받고 그에 대한 글도 쓰셨었는데, 그 이후 탈퇴를 하셨나 보다. 물론 공격 메일이나 악플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로 탈퇴를 하셨을 수도 있다. 그저 A 작가님의 댓글을 보니, 생각의 나무처럼 뻗어나간 것이 나를 싫어하는 누군가에 이른 것뿐이다. A 작가님은 본인의 글만 성실히 썼을 뿐인데, 누군가는 공격 메일을 보내고 악플을 달았으니까. 내가 무언가 잘못해서 미움받는 게 아닐지도 모르지. 그래도 그분은 나에게 욕을 하거나 공격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를 싫어함에도 상냥하고 친절하게 내 글과 나를 칭찬해주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친절도 상냥함도, 나를 향한 호의도 거짓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까지 비약하니까, 나는 문제적 또라이.
누구에게나 미워할 권리는 있다. 그러나 밉고 싫을 때, 차라리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해주는 편이 좋겠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싫어하는 사람에게 싫어한다고 얘기하지 못한다. 대신에 공평하게 모두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아해도, 상대가 나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제를 늘 깔고 있다.
만약 먼저 연락을 한다면, 그건 정말 상대를 좋아한다는 의미. 상대는 나에게 호감이 없는데 혼자 설레발쳐서 또 차단당하면 안 되니까. 앞으로는 더, 먼저 연락을 시도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대체 언제쯤이면 쿨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