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시딘이 발려 있으면 균이 침투하지 못할까요?

아마도. 당신의 말은 후시딘처럼 내 상처에 발려 나를 지켜주고 있다.

by 이정연



아프다는 것은 약점이다. 누구든 나를 상처 입힐 수 있게 처를 벌려 놓고 기다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픈 것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아프다는 사실은 절대로 내 본연의 가치를 훼손할 수 없다고.

그러나 아픈 시간을 지나오며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생채기 내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결국 나도 그들의 생각에 물들어 버렸었다.

아프지 않았다면 절대로 듣지 않았을 그런 말들. 그래서 그들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은 아픈 내 탓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밤들도 있었다.

어쩌면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다. 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만은 나를 아껴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휘두르는 채찍에 졌다.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병을 얻고 1년이 지났을 즈음, 엄마가 쓰러졌다. 이모들 중 가장 가까이에 살던 K 이모는 엄마 병실에도 자주 얼굴을 비추고 나름대로 마음을 써주었지만, 늘 그 마음을 상쇄시키는 못된 말들을 뱉었다. 그중 내게 남아서 지워지지 않는 몇 마디가 가장 큰 도화선이 되어 나는 이모의 전화번호를 지워버리고 내 번호를 바꾸어 버리는 식으로 외가 식구들에게서 나를 격리시켰다. 그렇게라도 나를 보호하고 싶었다,


"하나뿐인 딸내미가 이런 심각한 병에 걸렸으니 네 엄마가 안 쓰러지고 베기냐. 나였으면 아마 신경 쓰다가 머리통이 터져서 죽었을 거야. 네 엄마가 착하게 살았으니까 그래도 이 정도로 끝난 줄 알아라."

그들이 말로만 엄마를 걱정할 때, 나는 혼자 시청이고 어디고를 뛰어다녔다. 그렇게 20대 중반의 아픈 백수는 엄마 병원비를 마련하고, 동생과 함께 엄마를 돌봤었다.

이모들은 말로 상처 내기에만 골몰했지, 따뜻한 마음 한 조각 나누어줄 줄 몰랐다. 그리고 그들이 탓하기 쉬운 대상은, 언제나 아픈 나였다.


나는 아파도 늘 스스로를 돌봤다. 물론 아픈 동안의 7~8년은 시술에 보호자가 꼭 동행했어야 했으므로 병원 가는 일에 엄마나 동생의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 대체로 나 아닌 사람에게 내가 아픈 일로 피해를 끼친 일은 없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해야만 스스로에게 위안이 된다. (아프다고 가족들에게 짜증 낸 일은 많으므로.)

그리고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는 내가 아픈 일로 피해를 끼친 일이 전혀 없다. 이 또한 그렇게 믿고 싶은 일이고, 아마 거의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진실도 사실도 세상에 순도 100퍼센트의 것은 없으므로, 늘 확신에 차서 말할 때 조금은 망설여진다.




그렇게 애쓰며 살아오고 견디는 동안, 나는 나를 많이 미워하게 되었다. 나는 아픈 일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냥 늘, 잘 아팠고 잘 견디는 것뿐이었다. 래도 잘 견디고 나아가면, 언젠가 내게도 행복이 찾아올 거라고 믿었던 날들.


그러나 아프기 때문에 자발적 비혼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누군가의 말에,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녀는 매일 나와 만나는 의료진이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돌봐주는 사람조차 내가 아프기 때문에 평범한 일들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하기에, 나는 입술을 깨물고 행복으로부터 나를 거세시켰다.

이해받으리라 생각했던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나를 상처 입히는 사람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작고 귀여운 스타일을 좋아한다며, 나를 소개받고 싶다던 아는 분에게 '걔는 희귀병 걸린 아픈 애'라서 안된다고 말했다던 친구. 결국 내 병이 더해질수록, '불행한 얘기네'라고 하는 말에 상처는 덧났다. 그래, 거듭되는 병 얘기는 강한 이에게는 정말 듣기 싫은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본인은 너무너무 건강해서 아프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 못하겠다며, 정연이 너는 너를 이해해줄 만한 아픈 남자나 의사인 남자를 만나야겠다고 막말을 하면서도 본인의 농담(?)이 재미있는지 혼자 마구 웃어대던 철없는 남자 사람 친구도 있었다.

친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조차 본인이 하는 말이 내게 상처인지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모두 떠나보냈다.



나는 결국 결혼뿐만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누군가를 내 인생에 끌어들이는 일은 죄가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몇 번인가 타인의 마음을 외면하거나 거절한 일도 있었다. 내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누군가 나를 사랑하게 되었고, 나도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그 어떤 계산도, 양심도 없이 덜컥 그의 손을 잡아끌어 내 삶에 들여놓았다.

아프고 나서 처음이었다.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함께 글을 쓰던, 새로운 친구에게 나는 아마 나의 소중한 사람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도 같다. 평범한 대화를 나누다가 친구가 본인의 소중한 사람들 이야기를 하기에, 나도 그의 이야기를 했다.

"와, 남자 친구분이 정말 대단한 분이시네요. 작가님이 아픈 것을 다 알고도 만나시다니요."

아...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만으로 '너 같은 애'라고 표현하던 S 조교의 화법이다. 내가 모 방송사 시험을 볼 거라고 했더니, '너같(이 아프)은 애'를 그런 회사에서 뽑아줄 리 만무하다고 했던 바로 그 S조교 말이다.

말 끝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버티는 나를 칭송하기에 친구관계 이어가기를 포기했다. 나는 '까딱하면 죽을 위험' 같은 것에 처해있지 않다. 절대로.


한 번은 소설을 쓰는데 등장인물 중에 투석 환자가 있어서 내 인터뷰가 필요하다던 친구가, 막말을 했다.

"투석을 처음 하게 됐을 때 심정이 어땠어? 솔직히 팔다리가 다 잘린 듯한 좌절이었을 것 같아. 나라면 그렇게 느꼈을 거야. 너는 정말 대단해."

와하하하하하. 이걸 칭찬이라고 한 걸까. 설마 일부러 상처 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해버렸다.

"투석만 받으면 죽는 병도 아닌데, 뭐. 병에 걸리면 또 걸린 대로 다 살만해요. 대단해서 견디는 게 아니라, 죽지 않으면 다 살아지는 게 인생이에요."

이런 대답이 나의 최선이었다. 친구에게서도 마음이 이만치 멀어져 버렸다. 어쩔 수 없다. 나에게 상처 주는 이에게서 마음이 멀어지는 일만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이니까.




아픈 내가 씩씩하게 견디는 모습을 안쓰러워하는 사람도 있고, 기특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진심은 내게 늘 온전히 전해진다.

때로 병과 분리시켜서 나를 생각하는 친구도 있다. 나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모두 고마운 친구들이고,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분명 길게 생각하지 않고, 당장에 생각나는 대로 뱉어내서 나를 상처 입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정말 일부러 내게 상처를 주기 위해 말하는 이도, 그 어떤 의도도 없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처 받지 않기로 한다.

친한 친구가 말했다.

"정연이 너에게 아무렇지 않게 상처 주는 인간들을 파리, 모기라고 생각해버려. '너는 파리, 모기. 나를 상처 입힐 수 없지.' 그러면 마음이 편해져. 하하하."


얼마 전부터 새로이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에서 베트남인 가정부가 이렇게 말했다.

"시어머니 말은 방부제 같아. 아무리 해도 잊히지 않거든."

지금껏 나를 깊게 상처 준 몇몇 말들은 정말 방부제 같다. 아무리 오래되어도 썩지를 않고 내 안에 남아있다. 그 썩지 않고 남아 있는 방부제 같은 말을 멍하니 바라보며 슬프고 멍청하게 앉아있던 날들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 말 꾸러미들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는 날들이 더욱 많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마법처럼 그 말들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요원한 일이지만.

내가 만약 당신 안에 썩지 않는 말을 남겼다면, 나에게 꼭 말해주길. 상처 받았다고. 그러면 나는 당신에게 정중하게 사과할 테니까. 계속 나와 인연을 이어가고픈데, 나의 방부제 같은 말이 너무 상처가 되어 힘들다면 나는 무릎이라도 꿇고 용서를 빌 테니까.





내가 좋아하는 당신들이, 소중한 당신들이 해준 예쁘고 따스한 말들은 내 마음에 씨앗처럼 심겨서 언제나 예쁘게 피었다 지고를 반복하며 내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항상 고마운 마음을 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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