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과자

사랑받는 일에 대해서

by 이정연




생각지 못하게 과자 선물을 받았다. 나의 친구이자 함께 글을 쓰는 동지이자 인생의 선배인 소중한 언니에게서. 우리는 나이 차이도 꽤 있고, 서로 살아온 인생도 다르고 아직 알지 못하는 많은 부분들이 서로 다르겠지만 공유하는 아픔이 있다. 나는 아프고, 그녀도 아프다. 병과 함께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 병에 얻어맞아도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 같은 아픔이 아니어도, 능동적으로 이 인생을 버티고 헤쳐나가고 있다는 삶의 속성만으로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내가 삶의 기로에서 방황할 때, 혹은 고민을 털어놓을 때도 그녀는 언제나 말했다. 난 정연이 편이니까 걱정 말고 하고픈대로 다 하면 돼,라고.

우리의 역사는 어찌 보면 짧디 짧고, 아직 서로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는데도 자꾸만 나에게 무언가를 주려는 사람. 그런 그녀가 나에게 과자를 보냈다. '샌드 웨이퍼', 얇게 구워진 과자 사이에 크림이 발린 그 과자를.


(나의 소중한 호정 언니가 보내준 샌드 웨이퍼.

이 글의 시작이 되었다.)


사실 내게 샌드 웨이퍼는 '고프레'로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태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다섯 살까지의 시간을 온전히 할매와 보냈다. 할매는 입성도, 성미도 매우 까탈스러운 사람이었다. 껌 한 통을 씹어도 무조건 미제 껌을 고집했고, 담배도 양담배만 피웠다. 그 시절만 해도 양담배라는 것이 흔치 않았고, 할매와 따로 살게 된 내가 할매를 보러 가는 날이면 꼭 특정 가게에 들러서 엄마는 미제 껌 몇 통과 양담배 한 보루를 샀었다. 알록달록한 담배 포장지가 참으로 신기했었다.

그리고 담배를 태우는 할매의 모습은 요즘 말로 하자면 좀 힙했었다. 평생을 주변에 담배를 태우는 사람이 몇 없긴 했었지만, 할매가 담배를 태우는 모습은 지금도 아련하게 가슴에 남아있다. 우리가 함께 앉아있었던 그 시절, 밤의 옥상의 공기도 지금 이 순간 내 살갗을 간지럽히는 것만 같다.


할매는 나와 오래된 단층집에 살 때, 보물창고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할매는 알뜰한 사람이어서 방에는 오래된 가구들만 있었고, 그 가구의 모양새를 봐서는 그 누구도 할매가 부자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할매의 방 안에는 단 하나, 나라는 보물이 있었고 그리고 그 보물과 할매만이 드나들 수 있었던 보물창고가 락에 있었다. 그래서 오로지 나만은 할매가 엄청난 부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할매 집에 다니러 오는 사람들 모두가 할매의 다락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했지만, 그 누구도 다락으로 가는 사다리에 손을 대 본 일이 없다.




100원짜리 사라다 빵부터 나는 값을 알지도 못하는 고급스러운 생과자에 이르기까지, 시장의 제과점 아재의 실력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 그곳이 할매의 단골 제과점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다락방 보물창고에는 그곳에서 사다가 채워놓은 것들로 가득했다.


할매는 주기적으로 시장의 제과점에 들러 주문을 넣었다. 이것 얼마큼, 저것 얼마큼 하는 식으로 주문을 넣어두고, 내가 100원짜리 사라다 빵에 시선을 빼앗긴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배가 부를 만큼 먹을 수 있도록 사라다 빵을 작은 손 한 봉지 그득 들려주었다.


할매의 다락에 올라가 보면 뚜껑이 있는 대나무 소쿠리함에 곱게 유산지가 깔려있고, 그 안에 할매가 주문해서 가져온 생과자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 누구도 오르지 못하는 다락에 혼자 용기를 내 올라가 뚜껑을 열고 생과자를 몇 개씩 훔쳐 먹고 하는 것이 그 시절의 내게 가장 큰 소일거리였다. 그리고 겁이 많았던 나는 그 생과자를 훔쳐먹고는 차마 다시 사다리를 밟고 내려오지 못해 해가 지도록 다락의 바닥에 얼굴을 대고 누워있곤 했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다 보면 는 늘 고프레 통들과 눈 맞춤을 했다.


할매는 다른 건 다 눈감아주면서도, 유독 고프레는 직접 꺼내 주었다. 할매가 드실 때만 원통형의 지함 고프레 통을 가져 내려와서 직접 꺼내어 내 손에 쥐어주셨다. 얇고 바삭한 동그란 과자 사이에 발려 있는 크림이 늘 나를 정신 못 차리게 만들었다. 나는 삼시세끼 고프레만 먹고 싶을 정도로 그 고프레를 좋아했는데, 할매는 하루를 마치고 난 뒤에 딱 한 번만 고프레 통을 열었다. 그리고 그 한 번이 매일 찾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조르면 그 귀한 일제 고프레를 한 번에 몇 개고 꺼내 주었고, 내가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고프레를 직접 꺼내 주었던 이유도 과자가 깨질까봐서였다.


할매는 늘 나를 사랑했다. 그렇게까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앞으로도 평생 만나기 힘들 것이라고 온 생애를 생각해왔다. 할매는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이, 그저 늘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었으며, 내가 잘 되기를 바랐다. 매에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가장 착하고, 가장 사랑스러웠다.


할매를 잃고 나서 거의 20년이 되어서야 나는 할매처럼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나게 되었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고 나니, 그 뒤로 자꾸 나를 아껴주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쩌면 내 인생의 기적은 지금부터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라는 사실만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었던 그 시절. 그 시절을 이들이 환기시킨다.

그들은 나에게 아무런 자격도 요구하지 않는다. 내가 그저 나라는 사실만으로, 내게 마음을 베푼다. 나를 궁금해하고, 나를 아끼는 이들이 있다.



비가 내리는 오늘 오후, 친구가 집 앞에 찾아왔다. 헤이리로 나를 데려왔다. 그래서 쓰고 있던 백 번째 글을 이곳에서 마무리하기 위해 펜과 노트, 블루투스 키보드를 가지고 친구를 따라나섰다. 비가 와서 꽤나 쌀쌀한 오후, 소중한 사람이 선물해 준 옷 중에서 따스한 여름용 니트조끼를 받쳐 입고 나왔다.

아직 모두 지나가지 않은 여름과 가을이 적절히 섞인 옷차림이 산뜻하다.


행복과 사랑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아픈 일은 불행이고, 결국 아프다는 사실은 내 인생에서 격리될 일이 없기 때문에 행복은 우주만큼 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인생은 내 생각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았다. 늘 불행한 사고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면서, 행복도 사랑도 진실로 우주만큼 멀었다.


그러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와 고막을 때리는 클래식을 들으며 가슴 떨리는 이 순간, 생각한다. 나는 이미 충분히 행복하고, 이미 분에 넘칠 만큼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내 우주는 행복과 사랑으로 가득하다.






브런치를 통해서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생각도 못했는데 아주 가까운 친구들이 되었습니다. 사실 백번째 글을 쓰기까지 아주 오래 고민하였데, 친구인 호정언니가 선물해 준 샌드웨이퍼를 받는 순간 오늘의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고, 새로 시작한 공부가 있어서 쓰고 있던 글을 이어가는 일도 마무리하는 일도 힘이 들어 오늘에서야 이 글을 내놓습니다.

늘 특별할 것 없는 제 글들을 읽어주시고, 구독해주시는 모든 친구분들 감사드려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또 다른 글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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