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차림에 안경을 낀 이 분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다. 짧은 단발머리에 또렷한 눈빛과조곤조곤한 말투.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던 몇 안 되는 나의 투석 동료.
결혼생활 중에 신장이 망가져, 투석을 받다가본인 아버님의 신장을 이식받아서 아주 건강하게 생활하시다가 50대에 다시 투석을 하게 되셨다는 정도, 남편 분이 호텔리어 시라는 것과 아주머니는 교육행정직 공무원 출신이라는 것 정도가 내가 아는 것의 전부였다.
나보다 앞선 시간에 투석이 끝나면 걸어서 댁으로 가시는 A 어머니는 인공신장실 근처에 사신다. 그런 분이 오늘 내가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으로 오셨다. 놀라서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었다.
"건강해 보이네. 몸은 괜찮지?"
같은 인공신장실에 치료를 받으러 다니지만, 서로 시작과 끝이 달라 마주칠 일이 잘 없다. 전에는 대기실에서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으나 코로나 이후에는 환자들을 시간대별로 철저히 분리하기 때문에, 도통 마주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6시 30분에 3명, 40분에 2명, 이런 식으로 환자를 끊어서 받는다. 나는 딱히 시간으로 항의를 하지 않기에 오전반 가장 뒤의 시간인 8시에 배정을 받았다.(어르신들은 새벽같이 오셔서 빨리 투석받으시기를 원하신다.) 물론 집이 멀어서 너무 이른 시간은 곤란하기도 하다.
나는 오늘도 괜찮아 보이나 보다.
건강해 보인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아주 조금 쓰렸다.
지금 현재 '전과 달리 건강하지 않음'을 말씀드렸더니, 어머니의 얼굴에 걱정의 빛이 떠올랐다.
내가 타야 할 마을버스는 오늘따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어머니와 몇 마디 나누다 어머니가 타시는 버스에 따라 올랐다. 어머니는 시내 쪽으로 볼일을 보러 가신단다.
나도 이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다른 전철역에서 전철을 타야지.
서른셋에 이식을 받아서, 서른넷에 아이를 얻으셨다고 한다. 그 전에는 유산의 아픔을 많이 겪었는데 이식을 받자마자 출산을 하셨으니, 이식을 통해 정말 많이 건강해지셨다는 뜻 이리라. 그때 낳은 아이가 스물여덟이야,라고 하시는데 내 마음이 뭉클했다.언젠가 대기실에서 따님 얘기를 한 적이 있으신 걸, 기억한다.
"이식받아서 18년 동안 건강하게 잘 살았어. 다시 투석하게 된 건 10년이지만. 너도 이식받아서 건강하게 살아야지. 젊으니까 앞으로 시집도 가고."
"전 연애 한 번 못해보고 투석을 시작해서 시집은 글렀어요.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요. 다들 얼마나 조건 따지는데. 흐흐."
모태솔로 출신으로 투석을 시작했다고 하니 어머니가 조금 당황하신 것이 느껴졌다.
"그래, 우리 딸도 시집 안 간다고 하더라. 혼자 잘 살면 되지."
결혼생활을 하던 중에 몸이 안 좋아져서 남편분이 모든 걸 감당해준 어머니와 나는 처지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건강했던 나를 사랑했던 사람이, 건강하지 않은 나를 여전히 사랑한다 하면 나는 막을 방법이 없겠지. 내가 아니라 주변의 그 누구도 그걸 막을 순 없을 테지만, 지금의 나에겐 건강했던 시절부터 사랑했던 사람이 없다. 엄연히 다르다.
어머니가 버스에서 내린 이후,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아프다는 것은 사람을 시시때때로 비참하게 한다. 건강해 보여서, 건강하다고 생각해서 괜찮다고했던 9년은 와르르 무너졌다. 9년을 기점으로 나는 건강하지 않은 방향으로 선회했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지칠까 봐 염려했지만, 사실 나 또한 이제 지쳐버렸다. 그래서나는 전철이 아닌 평소 전혀 다니지 않는 길에서, 낯선 버스를 타기로 결심했다.
외딴 정류장에서 혼자 울기 위해서. 십여분 정도는 아주 크게 소리 내어 엉엉 울어도 될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또 슬픈 생각들이 차 올랐다. 그래서 울지 않기로 했다. 그냥 원래 내리려던 역 근처의 정류장에서 내렸다. 전철을 탔다. 종착역에 와서 집 앞에 오는 버스를 탔다.
사는 것이 너무 슬프고, 나는 너무 주눅 들어서 혼자 울고 싶었지만 그냥 무언가에 떠밀리 듯 집으로 돌아왔다. 적어도 지금은 도망칠 때가 아니니까.
이식이 언제 될지는 모릅니다. 저는 뇌사자 이식을 신청해둔 상태거든요. 하지만 다시 이식 검사를 받으러 입원합니다.
거의 10년의 세월을 기다렸으니, 5년에 한 번씩 하는 이식 검사를 이미 두 번 받았어야 합니다. 곧 세 번째 이식 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태일 테지만, 저는 10년이 다 되어 망설이고 미루어 두었던 두 번째 이식 검사를 받으러 갑니다.
이식을 준비하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늘 이식의 마지막 단계에서 미끄러졌습니다.
한 번은, 이번에는 꼭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병원 측의 이야기에 그들의 말대로 짐을 싸 두고 기다렸습니다. 짐을 싸 두고도 마음이 울렁거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늦은 저녁, 혈액 교차반응 검사를 통과한 대여섯 명의 사람 중, 저와 다른 한 분이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으나 결국 그분께 이식의 기회가 가고 저는 밀려났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오열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렇게 울고 싶지 않아서, 저는 대기자 명단에만 있되 이식은 잠정적으로 중단시킨 상태로 지난 몇 년을 살았습니다.
코로나가 길어지고, 그렇기에 이식도 원활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시 도전합니다. 기대는 하지 않으려 하지만, 자꾸 기대가 피어오릅니다. 이러다 또 실망하게 될까 봐 '잘될 리가 없다'라는 부정으로 마음을 억누르려 하지만 그러면 또 눈물이 나고 막막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버티고 있습니다.
버티고 있지만, 힘이 든다고 당신에게 투정 부려 봅니다.
댓글은 모두 감사히 잘 읽고 있지만, 답을 드리지 못하는 것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도저히 기운을 내지 못하고 있어서 그래요. 답이 없으면, 아 이 친구가 많이 힘들구나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