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1)
2주 만에 책상에 앉아, 한 손쓰기 중입니다.
2021년 9월 30일 오후 10시 10분. 휘익, 투욱, 뽀각.
날은 꽤나 어두웠고, 그 역은 공사 중이었습니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엘리베이터는 뽑혀나갔고, 새로 지어지고 있는 역사에서 빛을 내뿜던 에스컬레이터로 향하는 길은 빙글빙글 멀기도 했지요. 그런데 어라, 한 무리의 사람들이 새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직진으로 가는 것이 아니겠어요? 지름길이 분명합니다. 달빛은 환하게 그들이 지나간 지름길을 비춰주었고, 나는 의심 없이 그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두 세 걸음을 걸었을까, 몸의 왼쪽이 휘청하며 천 길 낭떠러지로... 는 아니고 1m 아래의 선로로 떨어졌습니다. 아주 차가운 선로와 몸이 닿기까지 생각보다 길고 긴 시간이었고,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손 쓸 새도 없이 모든 소지품과 함께 온 몸으로 떨어졌습니다.
떨어진 순간의 충격과 아찔함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습니다. 코레일 직원 몇 분이 내려다봅니다. 그 어둠 속에서도 부끄러워 벌떡 일어났습니다. "올라올 수 있겠어요?" 누군가가 제 가방을 받아 올려주더니, 그렇게 묻습니다. 그러나 대답할 수 없어 주저앉습니다. '으악' 속으로만 외마디 비명을 질렀습니다. 왼팔의 손목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증이 느껴졌고, 왼팔에 유독 힘이 들어가질 않아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꼭 움켜쥔 형태로 지지한 채 한참을 주저앉아 있다가 일어났습니다.
바로 플랫폼으로 오를 힘이 없어서, 거친 선로를 헤치고 돌고 돌아 플랫폼 끝에 설치된 조악한 계단을 차곡차곡 밟고 추락하기 전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여자 승무원 한 분이 걱정이 가득 담긴 얼굴로 얘기합니다. 가방과 모든 소지품을 챙겨서 들어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요. 역무원실에 데려다준다 고요. 그러고는 부여잡고 있는 왼손을 보더니 많이 부어올랐다고, 많이 다친 것 같다고 합니다. 그제야 저도 제 손을 제대로 보았습니다. 손목 바로 위의 손등에 동그랗고 단단하게 무언가 솟아 있습니다. 투석을 하고 있는 팔인데 이거 큰일이구나,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걸을 수 있고 움직일 수 있음에 손목을 삔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승무원님이 역무원실 입구까지 데려가셨지만, 거절하고 되돌아 나왔습니다. 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는데 혼자 운신할 수 있는 내가 그러는 건 인력낭비처럼 느껴졌습니다. 정신을 잃은 것도 아니고, 내가 누구인지 또렷하게 생각나고 말도 또박또박할 수 있는데 119라니. 아무리 아파도 구급차를 타본 일이 거의 없는 나는, 스스로 운신할 수 있는 이 상태에서는 더더욱 구급차를 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손목 통증이 엄청나긴 해서, 일단 전철을 타고 시 경계를 넘어 우리 시로 가서 근처의 응급실로 가겠다고 했더니 승무원님이 제 이름과 전화번호만 받아두시고 전철 출입구까지 배웅해주셨습니다.
전철을 기다리며 집에 연락했습니다. H역에서 선로로 추락했고, 전철을 기다리는 중인데 우리 동네 응급실에 가야 할 것 같다고 전달했습니다.
늦은 시간인데도 전철은 복잡합니다. 그 복잡한 전철의 한편에 실려 얼굴을 구긴 채 30분 내내 서 있었습니다. 죽을 맛이었지만, H역의 역장님과 승무원님에게서 온 전화를 받아 통화를 했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소중한 사람에게서 걸려온 전화도 받아 아무렇지 않은 척 '집에 가면 전화할게요.' 얘기하고 끊었습니다. 그 누구도 내 상태를 알 수 없을 만큼 의연한 목소리였을 겁니다.
그렇게 전철에서 내려서 역 앞에서 동생의 차를 타고, 가장 번화한 시 중심부의 의료원으로 향했습니다. 이런, 이곳의 응급실은 폐쇄되었군요.(나중에 알아보니, 도립 의료원이라 코로나 환자 수용때문에 폐쇄되었더군요.) 짜증이 솟구칠 만큼 아팠습니다. 지금 시간에 문을 연 곳은 우리 동네의 작은 종합병원 한 곳뿐이네요.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동안 아파서 짜증을 많이 냈고, 덕분에 가족들에게 욕도 꽤나 먹었습니다. 아파서 그러는데, 별 일 아니리라 생각하고 나의 더러운 성격 탓을 하는 가족들이 밉고, 서럽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우주의 왕따. 우주의 왕따를 실은 차는 시골 종합병원 앞에 당도했습니다.
흡사 주먹으로 경제활동을 하실 것 같은 응급실 당직 의사 선생님은 X-ray 처방을 내렸습니다. 아픈 곳을 모두 말하고, 여러 부위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내 사진을 보던 의사 선생님이 말합니다.
"생각보다 심각하네요. 손목뼈 골절입니다. 당장 깁스부터 하고 입원해야겠는데요?"
2021년 10월 1일. 시계는 막 자정을 넘겨서 10월이 되었습니다. 화려하게 10월의 포문을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