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2)

by 이정연



시골 종합병원의 의사는 투석환자를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처음 접하는 투석환자가 투석하는 팔목이 분질러져서 왔으니 그의 난감함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내 후회가 밀려왔다.

적어도 신장내과도 있고 부설 인공신장실도 있는 일산의 대학병원으로 갔어야 했다.


응급실 간호사들에게 원장님으로 불리는 그는,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상태가 좋지 않으니 당장 깁스부터 하고 입원해서 치료를 하는 게 맞습니다."라고 말했다. 당장 7시간 후에는 투석을 하러 가야 하는데 입원이라니. 게다가 평소 투석혈관이 있는 왼팔은 시계, 팔찌, 반지 그 어느 것도 착용하면 안 되는 터라, 깁스라는 말에 손사래를 쳤다.


어느 병원을 가든 투석환자라는 말을 제일 먼저 한다. 이곳 시골병원의 응급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투석에 대해서는 깡그리 무시하고 입원 얘기부터 한다. 팔 뿐 아니라 통증이 있는 다른 부위들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다. 몇 번이나 영상의학과를 오가며 X-ray와 CT촬영을 했다. 추락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고 정신이 드니 다른 통증들도 느껴졌다. 등과 둔부가 너무 아팠다. 심지어 똑바로 누워 촬영할 때는 눕지도 못하고 벌떡 일어날 만큼 통증이 심했다. 떨어질 때 뒷 쪽으로 떨어졌다. 낙법 하듯이. 떨어지던 그 순간, 내 유전자에는 낙법이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농담이 머리를 스쳤다.

사진 상으로 손목 외에 다른 곳은 전혀 이상이 없다고 했다. 솔직히 이상이 없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아파 뒤지겠는' 상태였는데도.



시골 병원의 의사는 쉽게 나와 타협해주었다. 왼팔에 부목 같은 것을 대어 주고, 투석 후 다시 방문하라고 강하면서도 다정하게 말했다. 적어도 4주 이상의 치료기간이 필요할 터이고, 본인은 정형외과 전문의가 아니므로 아침에 정형외과 선생이 출근하면 함께 내 치료 방법을 강구해보겠단다.


뼈가 부러졌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가족들 모두가 공손해졌다. 너무 아파서 짜증 낸 것을 성질이 더러워서라고 혼내고, 또 아픔을 잊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농담하는 것을 고, 농담하는 걸 보니 별로 안 아픈가 보다 하였던 동생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 사람들아, 내가 아파 뒤지겠다고 했잖아요!!

착하게 살아야겠다. 내가 평소 차분하고 착했다면 짜증 내는 순간, 내게 심각한 일이 벌어졌음을 다들 알아차렸을 텐데. 크흡.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한 시가 되었다. 너무 아파서 소파에 앉기도 힘들었다. 엄마가 옷을 들춰서 선로와 닿았던 부분들을 살펴주었다. 등과 둔부에 온통 긁히고 멍든 상처가 있다고 했다. 몸을 편히 돌릴 수가 없어서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왼쪽의 둔부만 살폈다. 선로 모양의 까만 멍이 길게 나 있었다. 아주 분명하게 선로와 입맞춤을 했음직한, 자로 그은 듯한 멍이었다.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똑바로 누울 수도 없어서 소파에 모로 누워 눈을 부릅뜨고 있다가 침대로 돌아왔다. 끄응 소리를 내며 누웠다. 침대가 푹신해서 그나마 누울 수 있었다. 갑자 잠이 밀려왔다. 그대로 4시간쯤 잤다.


그리고 깨어난 아침. 출근해야 하는 동생은 나를 병원에 데려다줄 수 없어서,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갔다. 모두들 엄청 놀라서, 걱정과 안쓰러움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10월 1일 오전의 손 상태. 손등이 퉁퉁 붓고, 통증이 매우 심했다. 그래도 이 상태로 투석을 받았다.


투석은 평소와 같이 진행되었고, 딱딱한 병원 침대에 꼬리뼈가 닿는 것도 고통이었던 나는 브릿지 자세를 취해 둔부와 침대 사이에 거리두기를 시도했다.

다른 팔도 아닌 투석혈관이 있는 팔이라 걱정이 한가득이었던 나는, 회진이 시작되면 주치의가 내게 가장 먼저 달려와 주리라 생각했다. 1구역에서 주치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가 사라지곤 했다. 외래도 바빠서 외래와 인공신장실을 왔다 갔다 하는 중이란다. 제길. 서운하군. 결국 주치의는 2시간이 지나서야 내 앞에 나타났다.


처참한 꼴을 보더니, 무조건 대학병원에 가란다. 그래서 내 혈관을 봐주는 교수님이 계신 강남의 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다. 주치의는 급히 진료의뢰서를 쓰러 갔고, 나는 너무 고통스러우므로 투석 4시간을 버틸 수 없겠다고 수 선생님에게 앓는 소리를 했다. 수 선생님은 기계 조작을 했다. 투석시간이 30분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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