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병원 건물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도 모르게 6이라는 숫자 버튼을 눌렀다가 이내 6을 다시 눌러서 빨갛게 들어온 불을 꺼트리고 4층을 눌렀다. 지금의 병원은 4층이고, 어제 새 병원에 서류 제출을 해두고 환자카드를 새로이 작성해두고 왔다. 새로 옮기는 병원은 6층. 그래서 나도 모르게 6이라는 숫자를 눌러 버린 거다. 아주 잠깐 마음이 싸하고 슬펐다. 내 몸은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구나.
언제부턴가 어긋나기 시작했던 주치의와의 관계. 내게 투석으로 인한 여러 합병증들이 생겨도, 본인의 전공이 아니어서인지 관심이 없어서인지 관망했던 사람. 한 때는 많이 의지하고 기대했던 주치의였기에 실망도, 분노도 많이 했었다.
올해 들어서는 그녀와의 사이에서 완전한 소통의 부재를 느꼈고, 브런치에 그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다. 주치의나 병원 식구들이 내 글을 볼리도 없는데, 그들이 내 글을 읽고서 불만을 표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거짓된 글을 쓴 것도 아니었는데.
'뇌종양 가능성'에 대해 쉽게 말하고, 본인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기는커녕 관심조차 없는 그 냉담함에 질려 버렸던 올봄의 나는 그녀와의 이별을 결심했다.
이곳 도시에는인공신장실이 몇 군데 없다. 일반내과에 부설 인공신장실이 있는 병원이 총 네 곳. 지금의 병원(A)을 제외하면 세 곳이 남는다.
비교적 역사가 짧은 두 병원에 연락했는데 자리가 없단다. 심지어 한 곳에서는 '환자 분이 돌아가시거나, 멀리 이사를 가셔야만 자리가 난다'라고 했다. 기분이 묘해졌다. 그 누구도 죽지는 않기를 바라면서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려달라고는 말해두었다.
나머지 한 곳(D)은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랜 인공신장실이라 이미 환자가 꽉 들어차 있다. 연락해볼 필요도 없이 포기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일산에 있는 병원들도 검색해보았다. 투석이 끝나고 힘든 날들도 있을 터인데, 그 순간에는 눈이 뒤집혔었다. 그나마 심평원 평가도 좋고, 전철역 가까이에 있는 병원을 찾아서 가족들에게 얘기했더니 엄마가 결사반대를 했다. 매일 그 거리를 오가는 것은 무리란다. 사실 나도 자신은 없었는데, 그냥 주치의와 헤어지고픈 마음뿐이었다. 주치의가 나한테 어떻게 하는지 엄마는 안 당해봐서 모른다며 소리를 빽 질렀다. 우리는 사나흘을 다투다가 그냥 내가 마음을 접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그 이후 나는 얌전해졌다. 이미 주치의에게 안 좋은 감정을 몇 번 표했던 터라, 돌이킬 수 없게 관계가 서먹해진 느낌이었다. 내가 깨어 있는데도, 주치의는 내가 잔다고 생각하고 회진을 않고 스쳐가는 날도 생겼다. 그때부터였다. 주치의에게 최대한 공손한 눈빛과 말투를 시전 했다. 우리 사이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싶었다.
주치의가 내게 어떻게 행동했든, 주치의를 미워한 것도, 믿지 못한 것도 나였으니까 불편함은 내 업보다.
여름의 어느 날. 병원 앞 정류장에서 점례 어머니를 만났다. 병원 바로 근처에 사시는 어머니는 볼일이 있어서 시내로 가신다고 했다. 꽤 오랜 동료 사이이며, 제법 친한 우리는 함께 버스를 기다리며 얘기를 나누다가 같은 버스를 탔다. 신도시에서 구도심으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서로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전철 종착역으로 이사한 얘기에 이르러서 점례 어머니가 걱정을 하신다. 우리 동네에서 병원이 있는 신도시까지는 너무 멀지 않으냐고. 그러더니 내가 전화도 해보지 않고 포기했던 그 병원에 대해 말씀하신다.
"내가 원래 시내에 살 때는 그 병원에 다녔었거든. 신도시로 이사 오면서 집 앞에 있는 지금 병원으로 옮긴 거지. 그 병원 원장님이 딸 둘을 둔 아빠라 그런지 성격이 무척 다정해. 환자들한테 엄청 잘해~ 거기가 이번에 oo역 앞으로 확장 이전한다고 나한테 연락이 왔더라고. 다시 오시라고 말이야. 거기 한 번 알아봐. 정연이네 동네에서 훨씬 가깝잖아?"
그날 저녁 바로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가족들 모두 대찬성. A병원이 있는 곳은 일산의 후광을 입고 세워진, 이 도시 최초의 신도시여서 전철역이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있다. 운전을 하지 않는 나는,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또 신도시 마을버스를 갈아타느라 매일 새벽 6시 반에 집을 나선다. 그렇게 나서서 병원까지 한 시간이 걸린다.
7시까지 늦잠을 자는 순간은 완전 꼬여버린다. 신도시에 있는 병원까지의 택시비는 대략 18,000원. 출근 시간대라 차가 막혀서, 택시로도 40분의 시간은 거뜬히 소요된다. 병원을 마치고는 버스나 전철을 기다리는 시간 등 변수가 많아서 한 시간 반이 지나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종착역으로 이사하고 2년을 이 짓을 했다. 그래도 오랜 정이 있어서. 다정하고 친한, 언니 같은 간호사 선생님들이 너무 많아서 다른 병원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를 '정연아'라고 부르는 그 목소리들이 오랜 세월 내 눈물을 닦아 주고, 손을 잡아 주고, 등을 두드려주고 안아주었다.
D병원에 대해 슬쩍 알아보았다. 오래된 병원이다. 원장님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다. 환자뿐만 아니라 간호사 선생님들에게도 무척 다정하고 잘 대해주어서 오래 근무하는 간호사가 많다고 했다. A병원으로 이직한 어린 간호사조차도 4년이나 근무하고 여기로 옮겨왔단다. 옮겨온 이유는 집이 신도시로 이사해서라고. D병원에 대해 엄청 칭찬을 하더라.
D병원에 문의 전화를 하고, 엄마와 직접 찾아갔다. 한 번의 방문과 두어 번의 통화만에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자리를 받았다. D병원이 역 앞의 새 건물로 이사를 하고부터 나오면 된다고 일러주신다.
이사가 9월 중순이 될 것 같다기에 조용히 기다렸다. 병원을 옮길 거라는 말은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 주치의는 친절해졌다.
이제 난 새 사람이 있으니 더는 주치의에게 기대가 없이 쿨해졌다. 이래서 사람들이 양다리를 걸치나 보다. '네가 아니어도 돼'라는 여유를 가진 사람에게서는 매력적인 향기가 나는 게 분명하다.
9월에 한다던 이사는 10월까지 한 달이 미루어졌지만, 결국 결전의 날은 정해졌다. 바쁘게 이런저런 서류들을 준비하며, 지난 수요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10시 정도가 되면 인공신장실의 간호사 10명 모두가 출근한다. 대략 10시 즈음을 생각하고 총 13잔의 커피를 배달시켰다. 외래의 선생님 두 분과 주치의까지 해서. 모닝커피 한잔씩들 하시라고 주문했다며 친한 간호사인 수미 선생님에게 얘기했다. 그리고 그 길로 내 침상을 찾는 모두에게 '왕복 2시간 30분'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음을 설명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D병원은 우리 동네에서 전철로 10분밖에 안 걸린다.
마지막으로 투석을 받고 병원을 나서던 월요일 오후, 비가 내렸다. 오후 다섯 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 밤이 된 듯 어둑한 느낌의 거리였다. 깁스를 새로 해서 불편하고 비도 추적추적 내려서 카카오 택시를 호출해서 탔다.
집에 오는 내내 속이 울렁거리고 울컥했다. 10년 가까이 보아 온 이 동네, 익숙한 많은 사람들을 이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울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