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결혼을 꼭 해야 하나요?

by 이정연


주말 아침, 출근해서 책상과 키보드를 닦고 나니 L 부장님이 들어왔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본인 책상으로 간 부장님은 본인 책상 아래에만 있는 전열기를 켜고는 나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며 말씀하셨다.

"S씨 시집간대~ 어쩔 거야, 정연씨는~"(너보다 어린 S가 시집가는데 넌 시집도 안 가고 뭐하냐는 의미)

"전 능력이 안돼서 못 가요."

그러고 크게 웃었지만 기분이 좋지 않다.




한 달 전부터 새로 다니기 시작한 병원에서도 결혼에 관한 얘기가 몇 차례 있었다.

"정연씨 결혼했어요? 차트 보니 결혼하고도 남았을 나이라서 한 번 물어봤지. 근데 얼굴이 너무 아기 같아서 안 했을 거 같긴 했어."

이건 양반이다. 그즈음에는 늘 숙면을 했던 터라 어려 보였을 수 있다. 그 나이 먹고 시집도 못 갔냐고 하더라도 저렇게 어려 보인다고 칭찬을 하면서 까는데 어찌 화가 날까. 론 결혼했을 나이가 대체 몇 살인지는 알지도 못하겠고, 기분도 유쾌하진 않지만.


"결혼했죠?"

"아니... 제가 서른 넘도록 모쏠이었어서요...ㅋㅋ"

"그래서 지금은 결혼한 거죠?"

아니, 안 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모쏠이었다는데,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결혼만 하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런 황당한 사람을 봤나. 미혼이라고 그랬더니,

"이 나이까지, 아직도? 연애도 못해봤고요?"

순간적으로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서, 아파서 시집 못 갈 거 같다고 말하고 말았다. 아픈 며느리 누가 허락하나요, 하면 웬만한 인간은 멋쩍어하며 입을 닥쳐주는 편이다.

, 불쾌한 대화의 연속.


집에서도, 친구들이나 그 누구도 결혼 기는 하지 않는다. 가끔 왜 안 하냐고 묻는 이들이 있긴하다. 다만, 그들의 전제는 '너처럼 괜찮은 애'가 왜 안 하니. 글쎄 결혼을 하면 다 괜찮고 능력 있는 사람이고, 결혼 못하면 뭔가 부족하고 무능한 사람인가? 결혼에 대해 묻는 사람들의 '당연히, 누구나 해야 하는 결혼'이라는 뉘앙스에는 이제 지쳐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한결같이 대답한다. "결혼할 능력이 없어서요."




L 부장님은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사업 두 번을 말아드셨다. 이건 그가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했던 말이니까 나도 그냥 가볍게 한다.

그렇게 사업을 두 번 말아 잡쉈으나, 사모님과 사이가 좋다. 퇴근 시간에 맞춰 안주를 만들어놓고 기다리신단다. 여섯 살 연상의 자그맣고 깜찍한 사모님은 사람들이 되려 연하인 줄 알만큼 동안이라 부장님의 자랑이다. 게다가 부장님은 처갓댁과도 사이가 무척 아서, 처가 식구들과 자주 술을 드신다.

이십 대 후반의 건강한 아들이 있고, 그는 얼마 전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아들이 공부하는 몇 년 동안 뒷바라지해줄 정도의 형편이 되었고,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아들의 차를 소형차에서 중형차로 바꿔주었다. 아들에게는 앞서 공무원이 된, 3년을 사귄 여자 친구가 있다.


이제 쉰을 바라보는 L 부장님의 최대 관심사는 아들을 비롯한 주변 젊은이들의 결혼. 인이 스무 살에 결혼한 열혈 청년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홀로 살아온 날보다 아버지와 남편으로 살아온 날이 훨씬 더 길어서인 것 같기도 하다.

얼른 아들을 결혼시키고 사모님과 단란한 노후를 꾸려가는 것이 부장님의 꿈이다.


그렇게 결혼이 행복이라고 믿는 부장님은 작년에는 나에게 선을 봬 줄까 몇 차례 말씀하셨고, 내 결혼 걱정을 꽤나 하신다. 가끔은 노산 걱정도 해주고.

(신고할까?) 다른 그 누구도 묻지 않는 일을, 하지 않는 걱정을 말이지.




나는 20대 때에도 연애를 하지 않았다. 연애는 쉽지 않았고, 쉽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연애를 생각하면 부수적인 모든 일들이 미리 떠올랐다. 연애는 공짜로 하는 게 아니니까. 늘 연애는 인생의 선택지에 없었다.

나는 적어도 책임질 수 있는 일만 하고 싶었다. 연애를 하더라도 내가 두 사람분의 밥값과 찻값을 내고도 여유가 있을 때, 즉 내가 스스로를 온전히 책임지고 다른 사람까지도 어느 정도 지고 갈 수 있을 때라고 스스로 정해두었다.

그래서 연애와 상관없이 스물 다섯까지 살아오면서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나 하나도 책임지지 못하므로, 아직은 이르다. 괜찮다.


ESRD를 얻고는, 스스로를 책임지지 못하는 날이 너무 길어졌기에 연애나 사랑을 암묵적으로 포기했다. 당연했다. 아픈 나는 평범해질 수도, 행복해질 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나는 모든 사람을 거부했다.

몇 년 전에 어떤 분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했음에도 끊임없이 거절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여전히 내가 나를 책임지지 못하기 때문이었고, 혹여나 호기심에 연애를 했다가 너무 괜찮은 나에게 그분이 푹 빠져서 결혼하자고 매달리면 매우 곤란할 것 같아서였다.(ㅋㅋㅋㅋㅋ)

15살 소녀 시절부터 내 목표는 반반 결혼이었으므로 가진 게 없는 나에게 결혼은 안될 말이었다. 물론 그 분과는 결혼은커녕 연애도 하기 싫었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나는 나를 책임진다. 중한 사람도 만났다.

아직 스스로 충분히 만족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나를 책임지고 가정을 위해 의무를 다한다. 나도 우리 집의 한축이 되어 살아가기 때문에 일상의 무게는 꽤나 버겁다. 그러나 의외로 버틸만하다.

암묵적으로 원하는 한 계속 일할 수 있지만, 일단은 1년 단위로 계약해야만 하는 신분이다.

병가 연차를 마음껏 쓸 수 있고, 아프다는 것이 약점이 되지 않는 큰 회사로 옮기는 것이 지금의 목표다. 지금의 회사에는 아프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리지 않았다. 주말에만 근무를 하므로 병가와 연차 내기도 렵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프다는 사실로 인해 타인에게 상처도 많이 받고, 때로 무시받기도 했다. 누군가는 나를 걱정하고 배려하는 척하며 동정했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아서 ESRD 3년 차에 결혼은 하지 않기로 했다.

혹여나 결혼을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상처만 받게 될 것이 뻔하다. 나는 병과 나 자신 외에는 가진 것이 없으므로. 나 아닌 타인까지를 책임질 수 있는 자세나 능력도 여전히 갖추지 못했다. 론 앞으로의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겠지만, 그 가능성을 상처 받는 일에 쓰고 싶지는 않다.

아버지도 나를 책임져 주지 않았던 삶이다. 그래서 고달팠다. 그가 저지른 일들의 수습로도 바쁘고 힘들었다. 타인에게 의지해서는 살 수 없음을 안다.


부잣집 아들인 능력 있는 남편을 만나 수시로 여행과 사치를 즐기고, 사랑을 듬뿍 받고 사는 친구도 있다. 한 때는 그 아이와 내가 무엇이 다를까 비교하고 고민하던 때도 있었다. 그저 각자 주어진 인생의 과제가 다를 뿐이다. 나에게는 혼자서도 헤쳐나갈 힘이 있다는 크나큰 장점이 있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믿어보려 한다.


사실은 남과 다르다는 것, 내가 평범하게 살아오지 못했으며 여전히 평범하지 않고 앞으로도 평범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매몰되어 있다. 때로는 미래에 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도 한다.

사랑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조건이나 아프다는 사실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이므로 누군가 결혼에 대해 물을 때 당당하게 결혼이 싫고, 혼자가 좋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아직은. 다만 결혼할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듯 말할 뿐다.


이 빈 껍데기에 이것저것 채우며 더 열심히 살아나가다 보면, 훗날 또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 스스로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지.

"부장님, 결혼을 꼭 해야만 하나요? 인생의 행복은 결혼으로만 얻을 수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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