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서 생긴 후천적 쌍꺼풀입니다.
막내 고모와 아빠를 똑 닮은 외모인데
늘 아빠 같은 눈이 불만이었습니다.
속쌍꺼풀만 진 눈.
고모는 눈이 크고 예뻤는데,
고등학생 때 쌍꺼풀이 생겼다고 해서
나의 유일한 희망은 고모였습니다.
나도 자라면 고모처럼 쌍꺼풀이 생길 거야!
사춘기 시절에는 거울을 보며
눈을 끔뻑거리면서 눈을 부릅뜨면 쌍꺼풀이 짙게 지곤 해서, 요대로 찢고 꿰매 달라고 병원 가서 말해볼까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고모처럼 되는 기적이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아이고, 정연이는 다 예쁜데 눈이 파이다(별로다)~
눈은 마, 엄마를 닮았으마 더 예뻤을낀데~
초등학생 때 친구 어머니가 한 그 말이
콕 박혔습니다.
내 눈에는 내가 영 안 예쁜데,
역시 이게 다 망할 놈의 눈 때문이었구나!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자라면서 한 번씩 쌍꺼풀이 생기더니
스물다섯, ESRD를 얻고
한 달간 병원생활을 하고 나와보니
쌍꺼풀이 진정 나의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엄청 많이 아프면 그렇게 되기도 한답니다.
오늘 그 소중한 쌍꺼풀이 사라졌습니다.
투석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팔만 붓는 것이 아니라 눈도 붓습니다.
특이하게 저는 그렇습니다.
투석하는 팔을 다쳐 6주나 깁스를 한 탓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혈관 시술을 받으러 가는 길입니다.
새벽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올 때
부어있는 눈을 보고 아주 조금 슬펐습니다.
힘들게 얻은 쌍꺼풀이잖아요.
물론 대학병원 시술실에서 한잠 자면
다시 혈관도, 얼굴도 돌아오겠지요.
시술이 잡혔으므로 12시간째 금식 중입니다.
그런데 글을 쓰니까 배가 고프지 않아요.
평소라면 경의선-3호선 루트인데
오늘은 경의선-1호선-9호선 루트로 병원에 갑니다.
벌써 9호선을 갈아타러 왔습니다.
늘 다니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오니까
살짝 긴장도 되면서 수도권 전철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가 새삼 놀랍습니다.
꼭 그 길이 아니어도 됐던 겁니다. 인생처럼요.
사람이 엄청 많은 9호선 급행에 타지 못하고 밀려났습니다.
아이고, 먹고 살기 빡빡하네요.
이 급행을 타고 출근하는 분들을 배려해
저는 다음 전철을 기다립니다.
아침부터 서울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보는 기분도
나름 색다르네요.
부디 우리 친구님들은 지옥철 안에서 짜부되지 마시고
편안하고도 활기찬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전 씩씩하게 시술 잘 받고 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