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지혈이 잘 되지 않는다. 투석 중 혈관 압력이 정상 수치 이상으로 오른 것은 꽤 오랜 일이며, 수시로 혈관통에 시달리고 있다. 투석하는 왼팔에 툭 불거져 올라온 나의 동글이(정확히는 혈액 주머니지만, 애칭으로 동글이라고 부르고 있다. 공처럼 생겼다.)는 바람에 스치기만 해도 아프다.
이제 나는 미리미리 혈관 재개통술을 위한 중재신장실 예약을 잡아둔다. 나를 따라가 줄 보호자가 시간을 낼 수 있어야 하고, 평일이어야만 하므로 보호자의 스케쥴러를 보고서 날짜 합의를 했다. 7월 7일이라는 구체적인 시술 날짜를 마음에 품고, 대학병원의 간호사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주 쉽고 빠르게 K 교수님 시술 예약이 잡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이토록 매끄럽게 처리되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별 것 아닌 시술 예약도 나는 행복하다. 만으로 11년을 넘게 만나고 있는 K 교수님을 뵐 수 있다는 사실도 내게는 즐거운 일이다. 찢고 꿰매는 일이후에 오는 고통을 제외하면 말이다.
(K 교수님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공개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1958년생인 우리 교수님은 이제 정년퇴임을 앞두고 계시다. 점잖고, 과묵한 미남이신 데다 이 분야 최고의 실력자 셔서 인기가 많으시다. 물론 나에게도 인기폭발. 나는 교수님의 정년을 연장해달라는 요구 서신을 대학병원 측에 보내기도 했으나, 효과는 없었다. 교수님의 퇴직을 앞두고 한 번이라도 교수님을 더 만나려고 그러는지, 이 놈의 혈관은 자꾸만 말썽이다.
교수님을 만날 때마다, 교수님이 보고 싶어서 이 녀석이 나를 자꾸 이리로 데려온다고 농담을 하지만, 교수님은 웃으시면서도 깊게 고뇌하시는 얼굴을 하셨다. 투석환자에게 있어 투석혈관이란 생명줄과도 같은 것인데, 그 생명줄이 자꾸만 고장이 나니 그 걱정의 무게가 오죽하랴.
나도 늘 걱정은 된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오로지 교수님을 믿는 일과 의연한 척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죽고 사는 문제 같은 것은 하늘에 맡긴 지 오래다. 사실, 건방지게도 하늘이 나를 죽이지는 않으리라는 어떤 믿음 같은 것이 있기도 하다. 죽을 운명이었다면 이미 2012년 1월 17일, 이 대학병원에 오기 전에 나는 죽었어야 했다.
교수님과 나는 2012년 1월 17일 운명적으로 만났다. Y 교수님과 첫 외래진료를 본 뒤, 응급실 한편에 부려져 있던 나는 젊고 다정한 여자 주치의 선생님의 길고 긴 설명을 듣고, 응급실 옆 중재신장실로 실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른쪽 가슴을 열고, 응급으로 투석을 위한 카테터를 삽입했다. 그 카테터를 삽입해주신 것이 바로 K 교수님이시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이어져 온 인연이 만으로 11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 내 혈관은, 사실 조영제를 흘려서 보지 않아도 교수님 눈앞에 훤히 보이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혈관 재개통술을 하면, 40분이면 시술실을 나올 정도니까.
다른 환자들은 보통 1시간 반 정도가 걸리고, 혹시 심각한 경우에는 최대 3시간까지도 걸리는 시술인데 말이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교수님이 해주신 혈관 재개통술은 시술 이후 통증이 하나도 없을 정도여서 거의 긴장 같은 것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7일의 시술은 좀 달랐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교수님과 마지막 시술이 될 예정이어서(교수님은 8월 2일까지만 진료를 보신다.) 괜스레 마음이 울적했더랬다. 그런데 시술 어시스턴트를 할 선생님들이 다 외국분들이어서, 투석하는 내 왼팔을 교보재 삼아 너무 심하게 누르고 비트는 통에 기분이 멜랑꼴리 해졌다. 시술 어시스턴트인 선생님이 내 손을 왈츠 추듯 잡고서 전체 팔을 소독해주는데, 이 분들은 그것마저도 영 소질이 없었다. 세심함이 매우 매우 부족했다. 그래서 시술대 위에서 나는 굳은 얼굴로 누워있었다.
그러자 곧 차가운 시술 방으로 K 교수님이 들어오셨고, 나는 그제야 좀 풀어진 얼굴로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 누워 있어서 어쩌죠."
내 투석 혈관이 자주 좁아지기에, 최대한 나를 만나고 싶지 않으셨을 교수님을 배려한 농담이었다. 교수님은 눈빛으로 손사래를 치시며, 외치셨다.
"아니야. 네 얼굴은 엄청 보고 싶었어!!"
아, 이 다정함이란.
한 때는 넓디넓은 대학병원 건물 내에서 교수님을 마주쳐도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쳤었다. 나에게 K 교수님은 한 분이지만, K 교수님께 나는 수백, 수천 환자들 중 하나일 뿐일 테니 나를 기억하실 리가 없다는 그런 생각 때문에.
그런데 마스크를 쓰고 멋쩍은 듯 교수님을 지나치고는, 아쉬운 마음에 뒤돌아보던 나를 보고 계시던 교수님을 발견했던 그때, 우리의 시선이 교차되었던 그 순간에서야 나는 아차 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를 중재신장실의 간호사 선생님께 말씀드리고서야, 교수님께서 나를 아주 잘 기억하고 계심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교수님께 조금 친근하게 까불 줄도 알게 되었는데, 이토록 이별이 빨리 올 줄은 알지 못했다.
만으로 11년이 되도록 내게 이식 기회가 오지 않을 줄 몰랐기에, 교수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셨기에 늘 나와 내 혈관을 위해 애써주시리라 믿었다. 이별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나는 교수님을 다섯 번쯤 만났을 때부터 아주 친근하게 까불었을 거다.
우리의 마지막 시술. 교수님은 평소보다 더욱 다정하게 바늘구멍이 잔뜩 나 있는 내 왼팔을 따끔하게 마취해주셨다. 그리고 내 콧줄로 가스가 들어오고, 혈관을 타고 수면 유도제가 들어올 즈음 갑자기 나를 부르셨다.
"이정연이!!"
"넵!!"
"오늘 선생님이 다른 시술 하나를 더 해줄게."
"지난번에 해 주셨었던 밀러 시술이요??"
"그래. 그거."
"그거 엄청 아팠는데요... 힝..."
"에이. 뭐가 아파. 하나도 안 아파.
이번에는 선생님이 안 아프게 해 줄게!"
"알겠습니다!"
분명 푹 잠이 들어야 하는데, 나는 시곗바늘이 얼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깨어났다. 깨어나서는 교수님한테 아프다고 난리를 쳤다. 아픈데 언제 끝나냐고 징징거린 기억도 난다. 그러고는 나 아프니까 재워달라고 했더니만, 교수님이 "잠은 집에서 자야지, 왜 자꾸 여기서 자려고 해."라고 하셨다. 분명 약에는 취해있었는데, 스스로의 만행이 모두 떠오르다니... 퍽 재미있고, 부끄럽다.
다 끝났다며 나를 타이르시던 교수님은 정말로 금방 시술을 마무리해주셨다. 교수님은 한 번도 오지 않던 내 머리맡으로 와서, 아주 귀엽다는 듯 머리통을 감싸 쥐고 흔드셨다. 한 번도 없었던 그 다정한 손길에 우리의 마지막이 자꾸만 실감이 되었다.
"정연씨가 우리 시술실 환자 중에 제일 어린데, 정연씨랑 또래에, 시술실에서 이렇게 말 많이 하는 환자가 하나 더 있어요. 진짜 둘이 비슷해. 키만 그 친구가 더 커요." 간호사 O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 그러면 제가 더 작으니까 이 시술실 환자 중에 제가 제일 귀엽겠네요?"
"맞아, 맞아."
"그래 , 네가 제일 귀엽지."
O 선생님의 대답에, K 교수님도 환하게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신다.
여전히 약에 취한 귀여운 진상 환자는, 이제 시술대에서 침대차로 옮겨 탄다. 시술이 끝나면 바로 방을 떠나셨던 K 교수님은 오늘은 시술대 발치에 서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계신다. 그 모습을 마지막까지 보려고 시선을 고정했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해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모르게 실은 조금 울었다.
이렇게 우리의 이별은, 나의 눈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오늘까지도 나는 K 교수님을 생각한다. 시술 부위가 아파도 너무 아프다. 그도 그럴 것이, 살짝 구멍을 뚫어서 기구를 넣어 좁아진 혈관을 넓히는 일반적인 혈관 재개통술과 달리, 내가 받은 밀러 시술은 메스로 생살을 찢어서 안에 있는 혈관 통로를 꿰매는 일이다.
나는 혈관 재개통술과 밀러 시술을 동시에 받았기에, 팔뚝에 여러 시술 부위를 꿰매어 밴드로 덮어놓았다.
그래서 아주, 매우 겁나 아프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출근을 했다. (회사에서는 내 병을 알지 못한다. 쉿!)
그리고 특별히 아픈 이 시술은, 적어도 내가 다니는 내과의 인공신장실 100여 명의 환자 중 단 한 명도 받아보지 못한 시술이다. 정말이지, 어디까지 특별해져야 할지 모를 나의 투병기. 좀 멋지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언젠가 이식을 받고, 건강해진 모습으로 K 교수님을 뵙게 될 날이 있겠지? 우리 인연의 끈이, 이곳에서 끊어질 운명이 아니기를 간절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