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그렇지, 라는 아픈 말.

by 이정연


(표지 사진은 나를 정말 좋아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로부터 받은 소중한 생일 선물. 나의 아픔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어서 이번 글의 표지로 사용했다.)





나는 살아온 세월 동안 또래에 비해 많은 일을 겪었다. 그건 팔 할은 아버지를 잘 만난 덕분이었다. 아버지 덕분에 몇 번이고 풍랑을 만나 나는 가라앉을 뻔했다. 나는 나약 하디 나약한 인간인데, 신기한 것이 그런 풍랑을 맞을 때는 정신이 한껏 차려진다. 물론 맨 처음에는 어푸어푸, 정신을 못 차리고 울면서 버둥거렸지만 그런 일이 거듭될수록 나는 울지도, 발버둥을 치지도 않게 되었다.


이러저러하게 일처리를 하고, 가까운 사람들 혹은 먼 사람들과 부닥치며 나는 사람들의 바닥을 많이도 보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내게 아주 작은 단서만 주어도 나는 그를 완전하게 불신할 수 있으며, 내 마음에서 완전하게 내쫓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 말해도, 실은 사람을 믿지 않기 때문에 더욱 사람을 믿고 싶어 하며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에게서 좋은 구석을 찾아내고 싶어 한다. 인간은 원래 모순과 망각의 동물이라 나는 또 누군가 상냥하게 나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오면 그를 덜컥 믿어버리곤 한다. 물론 가리지 않고 아무나 믿는 것은 아니고.


몇 년 전 취미를 매개로 만났던 그녀는, 당시 모쏠이어서 머릿속이 대책 없는 동화였던 나를 무척 예뻐했다. 적어도 나는 그런 줄로 믿었다. 그러나 관계가 지속될수록 우리는 다른 점이 너무 많았고,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좋은 친구였고, 나는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픈 몸으로 그녀를 만나러 왕복 4시간을 오가는 일 같은 것,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물 같은 것들 말이다.

그녀는 굉장히 차가운 사람이었지만 유독 나에게만은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고, '늘 우리 정연이'라고 말하며 내가 자신감을 잃을 때면, '예쁘다, 귀엽다' 등의 말들로 등을 토닥여주었다.

나는 그녀가 고마워서 늘 나의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아픈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은 어느 순간 나를 너무 힘겹게 만들었고, 어느 날 그녀의 한 마디에 나의 최선은 꺾였다.


나는 아버지의 일을 통해 사람들의 바닥을 많이 보았고,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나 스스로 사회로 나온 뒤로는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들 중에서는 꼭 나의 가족인 듯이, 내가 빈털터리여도 내게서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내게 무어라도 하나 더 먹이고 쥐어주려는 고마운 이들도 있었다. 나 같은 게 뭐라고... 때로는 그들 앞에 부끄러울 만큼. 그들은 나를 믿어주는 친구였으며, 나를 보듬어주고 보호해주는 부모님 같았다.


그녀와 나는, 그 좋은 분들과 한 모임에 속해 있었다. 어느 날 그녀와 얘기를 하다가 나를 너무 예뻐해 주시는, 모임 언니들에 관한 얘기가 나왔는데 그녀가 대뜸 그러는 것이다. "네가 아프니까 안쓰러워서 다들 널 예뻐하시는 거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나의 마음을 표현한다. 결코 마음을 말로만 표현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내가 무언가 받게되면, 기쁜 마음을 한껏 담아 환한 표정으로 표현하고 잊지않고 답례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으므로,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마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기에 행동하고 표현했다. 그런데 내가 단지 아프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예쁨을 받는다는 그녀의 말에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그 후로 나는 그녀에게 주었던 나의 최선의 크기를 점점 줄여갔다. 그랬더니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녀 쪽에서 내게 최선을 다해왔다. 물론 그 최선은 전철로 왕복 4시간인 거리를 차로 데려다 줄 남자 친구가 생겨서였었지만. 녀의 최선은 늘 남자 친구의 지갑으로 이루어졌다.

그녀의 최선에도 불구하고 이미 내 마음은 불편해졌고, 그 후로 어느 공통된 지인을 통해 그녀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 말에 의하면 '아무 노력 없이' 사람들에게 예쁨을 받는 정연이가 밉단다. 왜 사람들이 걔만 예뻐해? 짜증 나.

제기랄. 역시 그녀에게 불편함을 느꼈던 이유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를 향한 그녀의 칭찬에는 늘 가시가 있었고, 그녀가 진심이라고 말해도 나는 진심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아픈 것만이 내가 가진 무기인 듯, 나라는 사람을 후려치는 것이 자주 반복되었다. 내게 용기를 주는 듯하면서도 자꾸 나의 병을 거듭 강조하는 그녀에게서 나는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의 말다툼으로 나는 그녀와 영원히 단절되었다. 속이 후련했다. 그녀도 꼴 보기 싫은 나와 끊어진 것이 좋았던지 우리 중 누구도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다.


며칠 전, '당신은 아프니까 삐뚤어졌네요'라는 몇 사람의 공격을 받고서 아픈 사람에게 '아프니까'라는 단서를 붙여서 하는 말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그분들 모두가 꼭 그녀와 같았다. 대화를 하는 도중, '정연씨는 아프니까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요.', '아프니까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겠지만요.', '아프니까...', '아프니까...' 그렇게 강조해주지 않으셔도 되는데 모든 결론이 아프니까,였다. 길가는 사람이 나를 때리면 건강하든, 병에 걸렸든 불쾌한 것은 당연한데 내가 아프기 때문에 그 폭력을 곡해한다거나 그런 식으로 치부하는 것이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래, 나는 예민하고 성질이 더러워서 참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아파서가 아니라, 태생적으로 기질이 예민하고 성질이 더럽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타인의 공격은 절대로 그냥 넘기지 않을 뿐, 아픈 사람에게는 그냥 그가 아프고 힘들다고 할 때만 따스한 위로를 건네면 되는 거예요. 심심할 때마다 '당신은 아픈 사람이니까'라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요.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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