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버 러버의 종말

by 이정연


지난주 언젠가 갑자기 카카오톡 추천 친구에
낯선 남자 이름이 떴다. 누구인지 그 이름을 물끄러미 보았다. 추천 친구에 떴다는 것은 상대가 내 번호를 갖고 있다는 의미인데, 대체 누구일까...


나는 회사 분들이나 그 관계되는 분들은 카톡에 뜨지 않게끔 설정해두었고, 친구는 별로 없어서 카톡 목록이 무척 단출하다. 그 짧디 짧은 목록에 불쑥 나타난 그의 파괴력은 꽤나 컸다.


한참이나 있다 떠오른 그는, 한 때 아주 잠깐 좋아했던 사람이다.


그 친구와는 취미로 하던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 알게 되어,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나는 본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선을 긋는 타입인데 아프고 나서는 그게 더욱 심해졌다. 특히 이성에게는 긋기가 더욱 심해서, 웬만해서는 대화를 하려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스스럼없이 내게 다가왔고,
이전부터 나와 가까워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는 말마다 따뜻한 햇살 같은 친구였다.
나는 아픈 주제에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는 것은 양심이 없는 일이라 생각해서, 처음부터 선을 그었다. 나는 아파. 그냥 좋은 친구로 지내는 거면 상관없지만, 나를 여자로 보진 마.


그는 말했다. "요즘 세상에 안 아픈 사람이 어딨어? 너는 아파도 남한테 피해 주지 않고 이렇게 씩씩하게 잘 살아가잖아. 나는 네가 너무 마음에 들어."

나는 조금 마음을 놓았다. 이 친구라면 한 번 만나보아도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워낙 바쁜 일을 하는 사람이라, 틈날 때마다 연락을 하고 퇴근을 하면 또 퇴근을 했다고 보고를 했다. 그리고 퇴근 후 어딘가 외출을 하면, 누구와 어디를 가서 무얼 할 예정이라고 내게 알려주었다. 사실 그가 늘 하는 일이라 친한 형과 저녁 먹으러 시내에 나가는 일이 대부분이라, 나는 그런 그의 인간관계가 퍽 마음에 들었다. 나를 만나기 이전에 여성과의 만남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쓸데없이 여사친 이야기를 지껄이지 않는 폼이, 남사친 따위 없는 내게는 딱 맞는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렇게, 사귀는 사이는 아니지만 매우 친밀한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 그는 늘 내가 그의 0순위라고 느끼게 만들었고, 이것이 말로만 듣던 썸임이 분명했다.
서로 바빴기 때문에, 톡을 하고 전화를 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우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만날 약속을 잡고 사진 속 그 사람을 눈앞에 마주하는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이 될 것임을.
우리는 전화나 카톡을 하며 함께 음악 경연프로를 보았고, 그는 내가 읽고 있는 책을 궁금해했다. 그리고 늘 서로의 일상을 공유했다.
매일의 꾸준한 통화로 우리는 서로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는 말했다. 너처럼 특이하고 매력적이면서 바른 여자는 처음이야. 너무 마음에 들어.

그는 나의 모든 것을 마음에 들어 했다. 이런 일은 내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프고 나서, 일 관계로 아는 친구들이 두어 번 소개팅을 시켜준 일이 있었다. 그러나 단발성 만남에 그치거나, 만남 전에 내가 스스로 나의 '병'을 밝히는 바람에 상대편이 매우 겁을 내고 도망친 적은 있었다. 기신부전이 법정 감염병도 아닌데 말이지.
그에게 '아프다'고만 말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는 다르리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내 스스로도 예감했는지 모른다. 겁이 나서 '아프다'고만 말했는지도.

그리고 언제나 슬픈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그도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역시나.
어느 날, 내가 몸이 좋지 않아 시술을 받았던 그날. 대학병원에 있느라 그의 연락을 받지 못했고, 뒤늦게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을 때 그가 대뜸 물었다. "너... 혹시 투석해?"
이전에 아픈 곳이 신장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고, 그가 결국 눈치를 채고서 내게 물은 것이다.
내가 대답을 하자, 그는 잠깐 숨을 고르더니 대뜸 말했다. "우리 여기서 그만하자."

나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만, 내가 아픈 것만은 감당할 수가 없다는 말. 자신은 나와 사귀게 되면 결혼을 염두에 두고 만날 거였단다. 하지만 아픈 사람을 평생 감당할 자신이 없으니, 서로의 마음이 깊어지기 전에, 시작하기도 전에 여기서 멈추자는 말.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나는 본디 결혼 생각도 없었는데 그는 나와 너무 먼 미래까지 내다보았다. 슬픔에 앞서, 내가 그와 결혼할 생각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그 순간만큼은 하늘이 무너질 만큼 슬펐기도 했지만. 대학병원 침대에서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내게 미안해했다. "하지만 정연이라는 사람은 너무 좋으니 인연이 끊어지는 것은 원하지 않아. 우리 친구로 지낼래?"

나는 그의 말에 그러고 싶지 않다고 빠르게 답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고 말한 후 그의 카톡방을 나왔다. 재빠르게 그의 번호도 지웠다.

한 이틀쯤은 그의 전화를 기다렸다. 나는 아프지만, 나 스스로를 책임지며 살고 있었고 무엇보다 건강했다. 그가 마음을 고쳐먹고 나를 한 번이라도 만나보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이틀이 지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입술을 깨물고 그와의 모든 통화기록을 지웠다.


방법이 없었다. 내 외모나 성격이 불만이라면, 노력해서 변화하면 되는 일이었다. 가난이 문제라면, 돈 버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면 됐다. 그러나 그는 내가 아픈 것이 싫다고 했고, 나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며칠을 울면서 누워있었다. 눈을 감고, 그를 잊겠다고 입술을 깨물고 또 깨물었다. 그와 알고 지낸 시간은 고작 짧은 봄, 한 계절도 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나다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는 그 모습을 그대로 좋아해 주었기에 꽤 아팠다. 하지만 내가 아파서, 단지 그것 때문에 나를 만나지 않겠다는 사람이라면 나도 사양이다.


나는 그렇게 플랫폼에 혼자가 되었다.

햇살은 찬란했고, 나는 여전히 젊고 빛났다.

나는 아프다. 죽지 않는 한, 영원히 이 병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나를 책임지며 살고 있고, 나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 아니, 그에게 상처받기 이전보다 나를 더욱 사랑한다.


그리고 생각했다.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누군가를 내 인생에 들여놓을 생각 따위 하지 말아야지. 내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에게 속지 말아야지. 아마, 앞으로도 내 인생에 영원히 사랑은 없을 테지만 내가 나를 사랑하므로 괜찮다.


그랬던 일이 벌써 5년 전이었던가...

그리고 그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정말로 기억에서 깨끗하게 지워졌었다. 그런데 고작 추천 친구에 뜬 세 글자 이름에, 그의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에게 거부당했던 일까지가 떠올라 나는 아주 잠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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