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은 6층의 비상계단

이천시 인공신장실 화재 사건을 떠올리며

by 이정연


이천에 있는 인공신장실에서 화재가 나서 5명이 사망했다는 기사의 캡처본을 동생에게서 받았다.

투석 중에 깨어 있는 시간이 많았던 시절에는 뉴스를 참 많이도 읽거나 보았는데, 투석 중에 계속 잠들어 있게 된 다음부터는 뉴스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뉴스를 열심히 챙겨보는 동생이, 누구보다 빠르게 '이천 인공신장실 화재, 5명 사망'이라는 기사를 캡처해서 내게 보내준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투석환자들의 사망 소식은 나와 우리 가족의 마음을 싸늘하게 훑고 간다. 투석환자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을 그런 비극 앞에 늘 침착한 동생마저도 동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가장 처음 투석을 시작하고 나서는, 투석환자들의 죽음에 무척이나 민감해서 관련된 기사들을 많이 찾아 읽곤 했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기사 중 하나는, 암환자의 5년 생존율보다 투석환자의 5년 생존율이 더 낮다는 기사여서 절망에 절망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고, 나머지 하나는 투석 중에 병원 전력공급에 문제가 생겨서 투석기가 멈추는 바람에 쇼크로 심정지가 와서 사망한 환자의 이야기였다.


첫 번째 기사를 읽고 나서, 나는 결국 내가 서른 살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아주 오래, 그리고 굳게 믿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살아서 서른 살이 되었을 때는 뛸 듯이 기뻤다. 서른이 되기 전에 자살기도를 두 번 했음에도 말이지.

약을 털어 넣고, 결국 응급실에 실려간 순간에는 죽는 것이 미치도록 억울하고 슬펐다. 위 세척을 당하면서도, 자살 시도자라는 눈총을 받으면서도 그래도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죽을 만큼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가족들이, 아니 정확히는 아버지가 너무도 야속했었다. 사실 죽어도 아쉬울 것이 없는 삶이었다. 내가 살아있기를 원하는 사람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없는 그런 고독한 우주에 나는 홀로였다. 우주에 단 한 사람만 있었더라도, 나는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겠지. 그러나 미칠 듯이 수직 하강하는 혈압과 함께 내 생의 작은 불꽃이 꺼지는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회복기로 들어섰을 때, 나는 내가 죽지 않았음을 마음으로 기뻐했다. 죽지 않아서 기쁘다는 말은,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두 번째 기사를 읽고 난 다음 날은 병원에 가자마자, 우리 병원의 전력공급에 대해 수 선생님에게 질문을 했었다. 그리고, 우리 병원에는 혹시라도 건물 전체에 전력 공급이 중단되더라도 긴급하게 투석기를 돌릴 수 있도록 비상 전력 발전기가 설치돼 있으므로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을 얻었다.

죽은 투석 환자의 나이나 상황, 모든 것은 내게 불필요한 정보였다. 다만 그가 나처럼 혈액투석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과 투석 중에 죽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그토록 죽음을 두려워했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지난 1년 간 얼마나 죽기를 바랐던가.


죽음과 맞닿아 있는 희귀 난치병 환자가 밝고 건강한 웃음을 지으면 얼마나 사랑받을 수 있는지를 나는 잘 알고 있었다. 9년의 세월 동안 그 누구보다 씩씩했고, 그 누구보다 밝고 건강했다. 아픈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나의 밝음과 건강함을 모두가 사랑스럽게 여겨주었고, 누군가는 아니꼽게 여겼다.


대학시절, 간호학과에서 개설한 기초 간호학 강의를 수강했던 나는 WHO에서 말하는 '건강'의 기준에 부합되는 사람이라고 늘 스스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의 뇌종양 사건을 시작으로 내 몸과 마음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그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9년 동안 함께 했던 주치의 A 선생과도 이별한 터였다. 나는 그 이후, 온 우주가 내가 죽기를 바란다고, 세상에 내 편은 없다고 뾰족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9년 동안 악착같이, 이를 악물고 살고자 했던 모든 노력들이 연기처럼 내 안에서 사라졌다.

살고자 하는 의지도 없으면서, 그래도 살고 싶어 하는 척하며 나는 병원을 옮겼다. 그리고 지난 1년 간, 지금까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가장 최악의 혈액검사 결과지들을 받아 들었다. 온 우주가 나의 죽음을 바랐고, 이제 나조차도 삶에 대한 의지를 잃었다. 나는 늘 죽음을 바라게 되었다. 투석을 하는 일조차도 체력에 부쳐, 정말로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었던 나날이 이어졌다. 투석을 시작한 지 10년을 훌쩍 넘긴 날의 일이었다.


나의 우주는 10년 간 몇 번의 대폭발을 거친 후, 내가 살아있기를 원하는 몇몇 사람들이 머물게 되었다. 누군가는 나를 끈질기게 이 생에 잡아두었다. 그렇게 8월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생에 대한 의지를 잃은 자신을 숨겨두고 거짓되게 살고 있었다.


그날도, 투석을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누워있던 참이었다. 동생의 메시지가 도착했던 그 순간에도. 렇게 사는 것이 살아 있는 것인가 스스로에게 묻고 있던 그 순간.

인공신장실이 있는 이천의 한 건물에서 불이 났고, 총 5명이 사망했다. 기사를 읽어보니, 결국 사망자 다섯 명 중 넷이 투석환자였다. 그중 한 분은 인공신장실의 간호사였다.

투석 중에 갑자기 사고가 나면, 기계에 꽁꽁 묶인 환자들은 달리 방법이 없다. 15 게이지나 16 게이지의 굵은 바늘 두 개가 한 팔에 위아래로 꽂혀있고, 그 길고 긴 셀라인은 투석기에 긴밀히 연결돼 있다. 우리 몸의 모든 피가 빠져나가 투석기를 통해 한 번 걸러져서 다시 몸으로 되돌아온다. 런 바늘을 갑자기 뽑아내면 출혈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나처럼 겁이 많은 사람은 자력으로 그 굵은 바늘을 뽑아낼 자신도 없다. 백혈구나 적혈구 셀이 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굵은 바늘을 쓰는 것인데, 의료진도 아닌 사람이 그걸 뽑아내며 혈관벽은 또 얼마나 상할 것인가.

이렇다. 이렇게 투석환자는 길고 긴 셀 라인으로 온몸이 투석기에 꽁꽁 묶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계에 꽁꽁 묶인 환자들을 내버려 둘 수 없어서, 돌아가신 간호사님을 비롯한 의료진들은 화재현장을 떠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투석기가 뿜어내는 위협적인 경고음이 연기로 가득 찬 인공신장실을 울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 어떤 빈틈도 남기지 않고, 환자들의 두려움이 들어 차 있었겠지.


이천 인공신장실 화재 뉴스가 난 것이 금요일인 5일, 그리고 월요일에 병원에 갔더니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혹시 이천과 같은 사고가 날 때를 대비한 당부의 말이 끊임없이 오갔다. 내게도 니들링을 하러 온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다. '혹시 큰 사고가 나면, 간호사들이 돌아다니면서 기계가 멈추도록 조작해줄 것이다. 리고 기계가 멈추면 바늘 가까운 곳에서 셀라인을 가위로 자른다. 이미 내보내진 피는 그 양이 얼마나 많든 그냥 버려야 할 것이다. 버리는 피는 돌아보지 말고, 셀라인을 자르고 그대로 바늘을 달고 비상계단을 통해 탈출해야 한다.'


투석에 끝난 후에는, 환자들을 그룹 단위로 모아 탈출 요령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주말 동안 장님은 환자수에 맞춰 방독면 100개를 준비해두었다. 환자에게 금전적인 부분을 아끼지 않는 원장님에게서는 늘 적당한 무게의 진심을 느낀다. 어쨌든 지금은 탈출이 중요하니까, 감동은 조금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나는 탈출 요령을 설명하는 수 선생님을 따라서 비상계단까지 함께 달려갔다. 불이 나서, 탈출하지 못한 채 죽는 일은 없기를 바라면서. 아마, 내가 나를 포기하는 것과 생을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8일의 비상계단은 비가 내려서 을씨년스러웠다. 그 후로도 투석이 끝난 후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면서, 자주 비상계단을 확인하고 내다보았다.




바깥공기가 통하고 환한 빛이 드는 비상계단을 보며, 거듭 생각했다.

역시, 나는 여전히 살고 싶다고.

정말로... 이 병을 업고라도 뛰고 싶다고. 그렇게라도 나는 나를 살리고 싶다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