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매거진은 금요일에 글을 발행한다. 글을 발행하고 나면 서로 수고했다는 인사를 오픈 톡방에서 나누고, 한 주에 한 사람씩 소재를 내놓는다. 우리는 세 사람이서 매거진 글을 발행하고 있고, 이번 글이 세 번째 발행으로 이번 소재 제안자는 나였다. 1, 2주 차에 각 주차에 따른 소재에 맞춰 열심히 글을 쓰면서도 때때로 나는 어떤 소재를 내놓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되곤 했다. 글을 쓰는 일보다, 소재를 정하는 일이 더욱 힘들다고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분명 다른 두 분이 주신 소재로 글을 쓰고 있는데도, 3주 차 소재는 어쩌지? 하는 생각이 자꾸만 튀어 오르곤 했다.
2주 차 글을 발행한 지난 금요일 밤이 되어서야 오픈 톡방에 '브런치'라는 소재를 건넸다. 분명 고민했던 다른 소재가 있었던 것도 같은데 이제 그 단어는 전혀 떠오르질 않는다. 무작정 "우리 브런치라는 소재를 가지고 글을 써요." 던져두고서야 깊은 고민에 잠겼다. 나에게 있어 '브런치'의 의미는 무엇일까.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들만 얽힐 뿐, 글이 무척이나 써지지 않는 데다 집안에 일도 생겨서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들도록 뛰어다닌 한 주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내 소재 선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의 내 삶은 평범의 궤도를 한참 벗어났다. 나는 늘 외롭게 우주를 맴돌았다. 그 삶의 궤도에 대해 누군가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고,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면 설명하지 않아도 아주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에 내 궤도의 흐름을 알고 있었고, 만약 정말 특별하게 가까운 사람이라면 오랜 시간에 걸쳐서 설명을 했을 터였다. 그러나 지나온 날에 대해 설명을 하고픈 사람은 20대를 꽤 지나오면서도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희귀 난치병 환자가 되어 더욱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버렸다.
혼자서 우주를 유영하는 일은, 외롭긴 해도 나름의 충만함이 있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노출되지 않아도 되었고 혼자 이런저런 진리를 탐구하기에도 참으로 좋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참 잘 지냈다. 친구를 만나는 일은 많아봐야 분기별로 한 번이 될까 말까. 어느 해에는 일 년에 친구를 딱 두 번 만나기도 했다. 그 외의 시간들에 나는 주로 가족과만 지냈다. 가장 친한 친구는 동생과 엄마였고, 우리는 함께 영화도 자주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녔다.(그 덕분에 한 때는 맛본 집 겸 일상 블로그를 운영하는 취미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들은 아픈 일에 대해 입 아프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하게 배려를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취미 동호회 사람들과 다시 연락을 시작하고, 회사를 다시 다니기 시작한 것이 6년을 꼬박 아팠던 이후였던가. 나는 생글생글 웃지만 상대와의 거리는 반드시 두는 사람이었다. 동호회에서 만난 언니가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서야 나는 타인과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사람임을 알았다.
"정연이는 겉으로는 친절해 보이지만, 늘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게 선을 그어서 깊이 다가갈 수가 없었어."
나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설명하는 것이 싫었다. 본디 평범하지 않았던 나의 삶에 희귀 난치병이 더해져 설명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은 상태가 된 것이 힘겨웠다. 설명한다고 해서 이해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같은 것도 없었다. 동호회 사람들에게도, 회사에도 아프다는 말은 하지 않고 지냈다. 늘 혼자서 많은 것을 삼켰다.
일주일에 세 번씩 네 시간에 걸친 투석을 하고, 투석을 하러 가지 않는 평일의 대부분을 대학병원에서 보냈다. 아픈 시간이 늘어갈수록 시술과 외래진료에 들여야 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래도 나는 즐거웠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왠지 이 너머에 '좋은 날'이 있을 것만 같았다. 평일에는 여러 병원들에 다니고 주말에는 출근했다.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때때로 지독한 우울감이 나를 괴롭혔다. 그런 가운데 글만은 쓰고 있었다.
나아가려고 노력했지만 도통 나아가질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던 날, 진진이 말했다.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걸 해."
친구인 조매영씨가 브런치에 글 올리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를 전공한 매영씨는 당시 내가 아는 친구 중에 유일하게 글을 쓰는 친구였다. 매영씨 덕분에 브런치에 관심을 가졌던 이후, 한 때는 브런치에서 연재소설을 챙겨 읽기도 했었다.
나는 하고 싶은 걸 하라는 진진의 말에 일주일 간 고민을 한 뒤에 무엇에 홀린 듯 매영씨 생각이 나서, 밤을 새워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다. 그리고 투석이 끝난 후 올라탄 마을버스가 신도시의 OO 1단지를 지나는 지점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알람이었다.
내 글을 누가 읽어나 줄까, 하는 의구심으로 시작된 브런치 생활이었지만 이곳에서 참 많은 작가님들과 구독자님들을 만났다. 그들은 내 글을 읽고서 메일을 보내고,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말을 걸어왔다.
단지 글을 읽은 것만으로 현실에서 알고 지내는 그 누구보다 따스하게 나를 이해하고 토닥여주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물론 브런치에서 상처받은 일들도 있었지만, 브런치라는 세계는 그 어느 곳보다 좋은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세계였다.
사실, 나의 소중한 사람은 내게 제일 처음으로 제안 메일을 보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정중하고 따스하게 나를 응원했다. 단지 내 글을 읽었을 뿐인 그는 진심으로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처음 받은 그의 메일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낸 그 여름의 토요일 밤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글 속에는 감출 수 없는 누군가의 온전한 모습이 있다고 믿는다. 그는 나를 읽었고, 나도 그를 읽었다. 내 인생에는 절대로 없을 줄 알았던 좋은 일이 처음으로 일어났다. 그를 만난 이후, 자꾸 좋은 사람들이 나의 삶에 나타났다.
정말 슬픈 일이지만, 건강하던 때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특별한 사람이 희귀 난치병에 걸린 내게 나타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사람이 이 브런치를 통해 내게 다가올 것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았지. 내 모든 글은 투병의 역사, 투병의 일상을 담고 있으니까 매력을 느낄만한 글은 아니었다.
결국 내가 아픈 것을 모두 받아들일 그런 마음이 깊은 사람들, 좋은 사람들만이 내 곁에 남을 것이라는 생각은 항상 막연하게 했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아픈 나를 이성으로 생각하고 다가오리라는 생각은 결단코 한 적이 없다. 나를 좋아했던 남자들(?)은 내 병에 무지했거나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모른 채 나에게 다가왔었다. 내가 투석 환자라는 사실을 알고 도망간 소개팅 상대도 있었고, 서로 좋아했는데 병이 깊다는 것을 알고서 돌변한 사람도 있었다. 모두 한치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역시나' 그러한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아픈 사실까지를 모두 포함한 것이 온전한 나 자신인데, 그들은 온전한 나를 좋아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내 병은 너무도 무거워서,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던 친구들은 무수히 나를 떠나갔다. '아프다'는 사실에 갇히지 말라고 진진은 나를 야단쳤지만, 아프다는 사실 외에 그들이 나를 외면하거나 떠나갈 이유를 나는 찾지 못했다. 훗. 나는 평범하지 못한 인생을 살았지만, (진진이나 가족들처럼만 나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착하고 배려가 넘치는 꽤나 괜찮은 사람이었거든.
내가 아프다는 걸 알게 된 모두가 그러했다. 일부는 나의 불행이 무거워 나를 외면했고, 일부는 나의 불행을 위로하고자 하였으나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해서 외면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신의 삶이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서 결코 나를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다. 그들을 절대 미워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곁에 최소 20년에서 평생을 머물렀던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세상의 모두가 나를 외톨이로 만들었던 과거를 설명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혼자였다. 그런데 아픈 나, 어찌 보면 가장 진실되고 내밀한 나를 읽어주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들 중 누군가는 아주 꾸준하게 내게 댓글을 통해 마음을 남겨주었고, 가끔은 오래 망설이다가 불쑥 나타나 이야기를 건네는 분들도 있었다. 모두 내 우주에 나타난 아주 사랑스러운 존재들이었다. 그 특별한 존재들을 나는 지금도 개별적으로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인 소중한 친구가 글쓰기 모임을 제안해주어서, 나는 요즘 전에 없이 아주 부지런히 글을 쓰고 있다. 친구는 벌써 오래전에 나를 위해 시를 써서 선물해주었고, 달을 보면 내 생각이 난다고 한 고백 이후로 2년 넘게 꾸준한 우정을 보내주고 있다.
한 번은 브런치에서 처음 다른 작가님의 출간 소식을 접하고 책을 구매했던 일이 있는데, 어찌어찌 연이 닿아 그 작가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대화를 나누어보니, 동갑내기라는 것 외에 여러 공통점이 있어서 지금까지 꾸준하게 서로 예의를 지키는 친구로 지내고 있다. 늘 서로 경어를 쓰며 예의와 존중을 바탕에 둔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지.
이 모든 친구들과 아직 만나지는 못했지만, 아주 오래 만난 친구보다도 마음은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브런치에서 '굳이 고단한 나를 택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꽤 많은 브런치 친구들의 얼굴을 실제로 마주하기도 했다. 서로의 글을 읽는 것 이상으로 가까워지고 싶은 친구들이기도 했지만, 살아가는 일이 바빠 자주 만나거나 여러 번 만나지는 못했다.
굳이 고단한 나를 택한 소중한 사람과는 함께 하는 12번째 계절을 앞두고 있다. 브런치는 나의 우주를 끊임없이 팽창시키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도 브런치(아점)를 함께 하며 브런치에서 만난 우리의 운명에 대해 담소를 나눌 날이 오리라고 믿고 있다. 당신이, 그리고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