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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키 리리 Nov 25. 2022

병이 깊다

1. 


아이들이 모두 떠난 오전, 나는 침대에 누웠다. 그전에 블라인드를 내렸고 내가 누울 공간 가장자리에 이불을 쌓아 올려 마치 관에 누운 것처럼 만들었다. 눈을 감으니 편안함이 몰려왔다. 둘째 녀석을 데리러 가기 전까지 4시간가량 잘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밤마다 나를 괴롭히는 하지불안증후군은 신기하게도 이 시간엔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지난밤과는 달리 푹 잤고 이토록 달콤한 무기력 속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었다. 우울증이 심해진 11월 한 달 내내 오전 시간을 이렇게 보냈다. 


요즘 집중력이 떨어져 책 읽기가 힘들고 글쓰기는 더욱 버겁다. 체력은 방전 난 듯 바닥이라 늘 방바닥에 붙어 있다.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것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싫다. 혼자 산속에 들어가서 고요히 지내고 싶다가도 아이들을 챙기기 위해 억지로 몸을 움직인다.


그렇다. 밝음, 상쾌함, 환희, 햇살, 행복, 기쁨, 즐거움. 내게서 이런 것들이 사라졌다. 또 뭐가 있을까? 


"이런 단어들은 당신 몫이 아니라서 내가 빼앗아갔다."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으면 차라리 나았겠지. 내게서 희망을 빼앗아 간 사람이 나 자신이라서 비참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왜 스스로를 못살게 굴고 괴롭히고 내 몫의 기쁨을 끊임없이 약탈하도록 내버려 둘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내가 잘못 태어난 건 아닐까? 하는 데까지 미쳤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쉽게 자기혐오에 빠진다. 남들은 결국 이겨내는 문제 앞에 꼬꾸라졌다고 판단한다. 게다가 과거에 부정당한 기억이나 억울한 순간, 사과받지 못한 장면을 머릿속에 재생시키고 즐거웠거나 행복했던 순간은 까마득히 잊는다. 마치 그런 순간이 없었던 것처럼 살며 내게 남은 것은 고통밖에 없다고 상기한다. 정상적인 사고가 안 된다. 주위에서 아무리 "넌 괜찮은 사람이야.",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차츰 나아질 거야."라고 위로를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우울증은 사람의 귀와 눈을 막고 오로지 고통 속에 자신을 던지도록 만든다. 


고통과 고난이 뒤따르지 않는 삶은 없지만 매번 그 고통을 상기하며 사는 삶은 버겁다. 10년 동안 우울증과 함께 살면서 우울증과 잘 지내는 법을 깨우쳤다고 믿었다. 실제로 많은 순간들을 그렇게 보냈고 무난히 헤쳐 나왔다. 그런데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내가 터득한 방법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설령 기억나더라도 소용없을 거라고 믿는다.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리라 생각하고 결국은 빠져나올 수 없을 거라 판단한다. 


거대한 슬픔이다.




2. 


의사 앞에 앉자마자 약 용량을 늘려야겠다고 말했다. 내가 겪은 일들을 늘어놓자 그의 얼굴에 근심이 한가득이다. 상태가 나빠져서 지난번에 뺀 약을 다시 집어넣었다. "한 달 분 처방해드릴까요?"라고 묻는 그에게 "괜, 괜찮을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힘들면 한 달이 되기 전에 언제든지 다시 오라고 말했다. 그를 4년 동안 만났지만 내가 진료예약 날짜까지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병원을 찾아간 적은 딱 한 번밖에 없다. 진료실을 나오는데 그가 말했다. "오늘 나온 김에 좀 걷는 게 어떨까요?" 나는 그러겠노라고 말하며 밖으로 나왔다.


오늘 진료는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왠지 허전하고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의사는 그 어떤 순간보다 멀게 느껴졌다. 이 말은 그동안 그에게 많이 의지했으며 그의 처방을 전적으로 믿었다는 뜻이다. 이상하게도 이날은 그런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이, 모든 순간이 그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작용한 듯 보였다. 누군가에게 내 우울한 감정을,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마음을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이 힘겨웠다.


병원 밖으로 나오니 햇살은 다정하리만큼 따뜻하고 바람은 차가웠다. 터벅터벅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 좌판을 펼쳐놓은 노점상, 뻥튀기 아저씨, 붕어빵 아주머니, 이상한 자세로 뭉친 다리를 풀고 있는 상인, 테이크 아웃 음료를 들고 지나가는 사람. 모두 제 몫의 슬픔과 고통을 짊어지고 살겠지. 나는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겼다. 집까지 걸어갈까 하다가 버스를 탔다.


아침에 구운 계란 2개만 먹고 나온 터라 배가 고팠다. 좋아하는 초밥을 먹으러 즐겨가는 식당으로 향했다. 메뉴판을 보고 1인 메뉴 중 제일 비싼 것을 골랐다. 잠시 뒤 나온 초밥을 하나씩 입안에 넣고 오물거렸다. 배불리 먹고 나오면서 근처 수제 두부집에서 손두부를 하나 샀고, 다이소에 가서 수세미 2개를 샀다. 떡집에서 떡국떡과 반달떡을 샀다. 파프리카 5개도 샀다. 


그러는 동안 우울을 조금 잊을 수 있었다.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내일을 떠올리지 않고 코 앞에 닥친 시간에 대해서만 골몰했다. 




3. 


병은 깊어 나를 떠날 생각이 없고, 나는 답을 모르겠다. 답 없는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기엔 병과 보낸 시간이 너무 오래다. 정들었을까? 이제 그만 가라고 등 떠밀고 싶은데 당최 떠날 생각이 없는 병을 가만히 응시하며 눈을 감는다. 


우울증이 다시 심해졌지만 지금껏 잘 지내왔다고 마음을 고쳐 먹는다. 병이 언제 나를 떠날지, 떠날 수는 있을지 고민하지 않기로 한다. 먼 미래도, 내일도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내겐 내일이 없다. 모레도 없고 다음 달도 없다. 그저 코 앞의 시간만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을 잘 보내면 그다음 순간도 잘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병과 함께 하는 또 다른 방법 하나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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