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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키 리리 Nov 18. 2022

브런치를 사랑하는 일


1.


아이들이 잠들자 녀석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걷어찬 이불을 가슴께로 덮어주었고 도망간 베개를 머리 밑으로 옮겼다. 살짝 말아쥔 손가락을 하나씩 펼쳐보다가 내가 없는 세상을 상상했다. 엄마 없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며칠째 죽음에 생각했던 내가 무서워졌다. 겁쟁이 쫄보라서 절대 실행에 못 옮기겠지만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했다. 죽음 다음의 세계가 무섭진 않았으나 나 없이 남겨질 아이들의 세상이 무서웠다. 그리하여 오래오래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고 그들 옆에 웅크리고 누워서 잠을 청했다. 태아처럼 몸을 만 채 다시 엄마 뱃속으로 기어들어가 영원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까스로 지웠다. 


브런치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 죽음을 떠올리고 생을 생각하고 다시 죽음을 떠올리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곳.


긴 우울에 질식할 것 같을 때, 내가 '나'라를 사실이 못 견디도록 싫을 때,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울 때, 슬픔이 밀려올 때, 밀려온 슬픔에 난파선처럼 가라앉을 때, 마음에서 뻗어나간 감정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할 때, 어딘가에 무엇을 털어놓지 않고는 못 배길 때. 그럴 때마다 브런치가 생각났다.


꽝꽝 얼어버린 얼음장 밑에서 살려달라고 발버둥 칠 때, 숨구멍을 알려준 곳도 브런치였다. 수면 위로 시시각각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 흘려보내지 못한 아픈 순간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날 때마다 브런치에 글을 썼다. 아픈 순간을 되새기며 활자로 살려내는 작업은 고통스러웠지만 쓰고 나면 머릿속이 정리되면서 감정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게다가 내 슬픔에 공감해주고 내게 빛과 온기를 보내는 사람들이 달아주는 댓글은 세상 그 누구에게서도 받아보지 못한 가슴 벅찬 위로들이었다.


그렇지만 요즘 나는 브런치를 떠나고 싶다.




2. 


임용 공부할 때 학교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 그곳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눅이 들었다. 나는 도저히 이 힘든 수험생의 길을 갈 수 없으리라 여겼다. 브런치는 내게 그런 인상을 주었다. 끊임없이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 그들의 각양각색 인생과 펼쳐놓은 글 앞에서 나는 주눅이 들었다. 비교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이 주눅은 나에 대한 믿음의 상실로 이어졌다. 


공부할 때 방구석에서 혼자 했다. 경쟁자라곤 나밖에 없는 곳. 그곳에서 맘껏 자고 티비도 보고 느릿느릿하게 내 속도대로 움직이며 지냈다. 나는 "선착순입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달려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아예 달리기를 포기한다. 경쟁에 참여하기보다는 참가자 무리에서 이탈하여 혼자 저벅저벅 돌아가길 선택한다. 브런치 안에서 중심을 잡고 걸어가기엔 나는 자주 흔들렸다. 


브런치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 혼자 글을 쓰고 혼자 글을 보고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지내는 편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나만의 작은 세상을 유지하기엔 브런치는 꽤 소란스러웠다. 그 소란스러움에 이끌려 이것저것 읽다 보면 자괴감이 밀려왔다. 읽고 그냥 흘려보내면 되지만 어떤 글은 계속 마음에 남았고 나는 왜 그처럼 쓰지 못하냐고 스스로 다그쳤다. 때론 이렇게 살고 있는 내가 답답하게 느껴졌고 자꾸만 나를 미워하게 되었다.




3. 


브런치에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이 출간이 목표인 듯 보였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2020년 2월, 브런치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에는 그런 욕심이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 출간을 했다는 소식을 전하거나 자기 브런치 메인에 출간한 책들을 주욱 늘어놓을 때면 '어쩌면 나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의심하며 욕심을 부렸다. 매거진을 만들고 그 매거진 포맷에 맞게 잘 정제된 글을 썼다. 이렇게 글을 써야 편집자의 눈에 들어 책을 출간할 수 있겠다는 그릇된 욕망이 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이 노동처럼 느껴졌다.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고, 책 한 권 내지 못하는 내가 보잘것없어 보였다. 얼마나 황폐한 생각인가? 이 생각에 사로잡혀 나는 내 안의 빛나는 어떤 부분을 점점 더 죽이기 시작했다. 글쓰기에 대한 단순한 열정으로 가득 찼던 내면은 점점 황량해졌다. 돌이킬 수 없었다. 


욕심 없이 순순한 열정으로 글을 쓰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브런치에 있으면 있을수록 욕망에 부채질하는 순간들을 끊임없이 만났다. 그 절정은 '브런치 북 출간 프로젝트'였다. 수천 명의 작가들이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응모를 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결과야 어찌 되었든 글은 남고, 쓰는 나도 남고, 글쓰기 근육도 키울 수 있으니 응모 그 자체만으로도 큰 수확이라는 내용을 담은 타인의 글을 여러 편 읽었지만 상을 받고 싶다는 욕망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어차피 해도 안 돼.'라는 무기력한 체념이었다. 수상이나 출간에 목표를 둔 자의 안타까운 대가. 나는 어떻게 하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 체념이 내겐 너무나 달콤해서 그냥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사실 답은 안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 목표를 수정하고, 꾸준히 글을 쓰고-.


'꾸준히 글을 쓰고'에서 말문이 막힌다. 사람들은 어떻게 무기력한 마음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자신의 글쓰기 동력으로 삼는 걸까? 




4. 


브런치는 인스타의 팔로워, 팔로우 개념에 해당하는 구독자수와 관심 작가가 있고,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독자가 좋아요와 댓글을 달 수 있다. 브런치 생활 3년 차지만 여전히 이것에 신경을 많이 쓴다. 좋아요나 댓글이 많이 없으면 내 글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구독자수가 줄어들면 내가 무엇을 잘 못 했나 돌아보게 된다. 


우울증 환자인 나는 에너지가 늘 바닥이다. 똑같은 일을 해도 쉽게 지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다. 휴직 중이지만 집안일과 육아를 전담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만 신경을 써도 늘 허덕인다. 남는 시간을 침대에 그냥 누워서 보낸다. 이런 내가 브런치 앱을 시시각각 들여다보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일이 점점 더 버거워졌다. 


예전에 여행을 가느라 일주일 가량 브런치를 안 했던 적이 있었는데 정말 마음이 편했고 홀가분했다. 사람들 반응에 전전긍긍하거나 구독자 수가 줄어들까봐 노심초사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작가분들의 글을 읽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지만 그들의 글을 꼭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그것대로 좋았다. 


글쓰기가 좋아서 시작한 브런치였지만 내게 족쇄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브런치 안에서 균형을 잡고 댓글, 구독자수, 좋아요 따위에 마음을 주지 않기엔 나는 너무 쉽게 흔들렸다. 이런 사람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브런치를 탈출하는 것이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브런치를 떠나지 못하리란 사실을 안다. 타인의 글쓰기와 나를 비교하고, 출간 욕심을 버리지 못하며, 브런치 앱은 여전히 족쇄같이 느껴지지만 말이다. 앞서 적은 이 세 가지 단점이 브런치를 하다 보면 생기는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나는 좀 더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을까? 비교하지 않고, 욕심을 버리고, 브런치 앱을 삭제하면 된다는 간단한 해답 앞에서 방황하는 이유는 그만큼 내가 오랫동안 그것들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리라. 


여전히 마음은 브런치를 떠나고 싶다는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있다. 떠나지 못하리란 사실을 안다고 적었지만 그건 내게 하는 다짐과도 같다. 떠나면 안 된다는 다짐. 왜 떠나면 안 되는지 정확한 답을 아직 찾지는 못했다. 사람들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나 공감의 댓글, 가슴이 터져나갈 듯 답답할 때 글로 내지를 수 있는 공간, 숨구멍. 이런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브런치가 가진 매력을 여기에 머물면서 천천히 찾고 싶다. 그건 오랜 시간 더 휘청거리고 흔들리겠다는 다짐이며 그렇게 부유하는 감정 속에서 똑바로 한 곳을 응시하고 싶다는 바람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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