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
내 어린 시절, 엄마는 늘 지쳐 있었다. 그래도 악착같은 마음으로 가정을 지켰는데 책임감과 의무감 때문이었다. 여유가 없던 엄마는 자신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린 나를 자주 외면했다. 궁금한 것이 많던 나는 늘 엄마 곁에 붙어서 질문을 해댔지만 엄마는 내가 원하는 답을 해주지 않거나 입을 닫았다. 때론 네가 이상하다거나 예민하다고 말했고 나는 가만히 듣기만 했다. 엄마의 표정에선 "네 탓이 아니야."거나 "차츰 괜찮아질 거야." 때론 "미안해." 이런 말을 읽을 수 없었다. 당시의 엄마를 떠올리면 무기력하고 지친 표정만이 떠오른다. 나는 그 표정에 짓눌린 채 살았다. 그 시절 엄마가 내게 다른 표정을 보여줬더라면 내 삶이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고민해보지만 답은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도 평온한 삶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삶은 온갖 구덩이를 파 놓고 엄마를 기다렸고 그는 점점 말라갔다. 어떤 날은 수많은 구덩이 중 하나가 나 때문에 생긴 건 아닐까 고민했다. 어린 나는 엄마에게 닥친 불행이 모두 나로 인해 빚어진 것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가끔은 엄마가 타인이나 친척들 앞에서 내 흉을 보거나 흠을 잡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얼어붙은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내 신체 특성 하나하나를 자세히 말하며 지적할 때면 내가 나라는 사실이 미치도록 싫었고 지금도 이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고 내 우울증 지분을 엄마에게 모조리 주는 것은 비겁하다고 믿는다. 엄마가 나를 이리 키웠지만 계속 자존감이 낮은 채로 끊임없이 외줄 타는 기분으로 사는 것도, 모든 일에 자신이 없고 쉴 새 없이 자책을 하거나 수치심을 느끼는 것도 어쩌면 내가 선택했기 때문은 아닐까 믿는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알지만 결국은 내가 선택한 삶이니까 우울증을 10년이나 데리고 다니는 건 엄마 탓이 아니다,라고 쓰며 엄마를 원망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2년 전 나는 엄마의 다른 표정을 보았다.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극에 달할 때 아버지와 다툰 적이 있었다. 엄마도 아이들도 모두 있던 자리였다. "생각을 좀 해보란 말이다!"라는 아버지의 말에 너무 화가 나서 벽에 머리를 박았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엄마는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내게 말했다.
"애들 본다, 방에 들어가!"
그때 처음으로 엄마의 당황한 얼굴을 보았다. 거대한 재난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엄마가 선택한 방식은 회피였다. 보기 힘든 대상을 외면하는 식으로 나를 방에 내몰았다. 방 안에서 숨 죽이며 울고 있는데 문 밖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하다. 아빠가 화를 내서 미안해."
미안하다는 목소리에 설움이 북받쳐 정신없이 울었다. 한참 뒤 방 안에서 나오니 부모님은 돌아간 뒤였다. 우울증을 10년이나 달고 사는 자식은 부모에게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나는 끝내 묻지 못했고,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외면하고 싶었던 것은 나일까? 무심하게 나를 키웠던 과거일까? 답은 알지 못하지만 어린 시절 나를 지배했던 엄마의 무기력하고 냉랭한 얼굴과 더불어 당황한 엄마의 표정은 나라는 존재가 그에게 어떤 의미일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분명 엄마는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라고 믿지만 여전히 그런 마음을 애써 붙잡아야 할 만큼 약하다.
며칠 전 엄마와 산책을 했다. 단 둘이서만 걷는 게 어색해서 큰 아이에게 같이 가자고 말했다. 쌀쌀한 가을 오후였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고, 사방이 붉게 물들 무렵 아이는 놀이터 그네를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 엄마와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새 아파트 새 집으로 이사를 한 엄마는 모든 게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낡고 오래된 집에서 벗어나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평온한 노후를 보낼 엄마의 모습이 그려졌다. 긴 푸닥거리 같았던 수십 년의 세월이 이렇게 정리되어 흘러간다고 생각하니 다행이다 싶었다.
잠시 후, 이사 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네 마음이 편한 대로 결정해. 그게 제일 좋아."
그 말을 듣고 나는 어쩐지 울고 싶어서 고개를 돌렸다. 도무지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제와 이런 따뜻한 말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가도 엄마가 이리 마음 편한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순간, 인생이 커다랗게 곡선을 그리며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화해하라고, 네 지난 과거와 화해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아무 감정 없이 지난 시간을 추억하고 싶었다. 과거가 더 이상 고통이지 않게 흘려보내고 싶었다.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도 아빠도 되돌아가서
다시 사랑을 하고 나를 또 만나요
모두 모여 하나 둘 셋 사진 찍구요
다 아는 얘기 모르는 척
무지개마을 우리 막내 산책시키고
푸른 하늘 펼쳐보며
백아의 노래 '시간을 되돌리면'에 나오는 가사다. 노래 가사 속 주인공은 부모를 무척 사랑했나 보다. 시간을 되돌려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사랑을 하고 또다시 나를 만나 달라니.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노랫말이다. 하지만 내심 가사 속 주인공이 부러웠고 내 인생 내내 그토록 부러워한 대상이 그 무엇도 아니고 지금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는 누군가였다는 사실이 서글플 뿐이다.
나는 이 노래를 질리도록 들었고, 귀에 딱지가 앉을 무렵에서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 냉랭하고 차가운 엄마의 표정에 익숙해져서 따뜻한 말로 이야기하는 엄마의 얼굴을 도저히 마주할 자신이 없는 내가 이상한 걸까? 어쩌면 엄마로서는 단 두 가지의 표정으로 그를 기억하는 자식이 오히려 더 냉정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