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에는 악몽을 꿨다. 요즘 악몽을 자주 꾼다. 새벽이든 아침이든 깨어날 때마다 온몸이 흠뻑 젖을 만큼.
그러나 그런 스스로의 몸이나 마음을 돌볼 여유는 없다.
그저 정신없이, 지금 해야 하는 일들을 하며 그렇게 매일을 살아내는 것이 최선이다.
연말이니까 평소처럼 연하장을 쓰기 시작한다. 올해에는 12월 1일에 우체국에 갔는데, 벌써 연하장이 매진이라며 인터넷 우체국으로 구매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인터넷 우체국에서 사는 건 편리하지만, 생각보다 배송이 늦었다. 대신 카드에 넣는 속지는 매우 넉넉하게 받았다. 꼭 엄마가 연하장을 쓰던 90년대의 정이 넘치는 우체국에 다녀온 기분이었다.그 시절 우체국에서는 카드 외에, 글씨를 틀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속지나 봉투를 꽤 여유 있게 챙겨주었었다. 요즘의 우체국은 실수로라도 속지 한 장 더 주는 법이 없다.
엄마는 아주 오랜 세월 연하장을 써왔다. 연말 인사 겸 새해 인사를 정성스럽게 붓펜으로 써 내려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라는 내내, 나도 어른이 되면 꼭 연하장을 보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연하장을 썼던 그 해, 엄마는 220통의 연하장을 보냈다. 바깥일, 집안일을 다 하고 12월 초부터 한 동안은 매일 밤마다 잠을 줄여가며 작은 찻상에서 붓펜으로 연하장을 쓰던 엄마를 보며 한 편으로는 저렇게 많이는 쓰지 말아야지, 엄마처럼 넓은 인간관계는 맺지 말아야지 생각했었다.
(엄마는 대구 살 때만 해도 핵인싸였다. 정치할뻔했던 사람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인간관계의 폭이 크게 넓어지는 일이 없다. 본디 알던 사람과 소원해지거나 관계가 아예 끊어지는 경우는 때때로 있지만, 새로운 친구가 생기는 일은 또 흔하지가 않아 그럭저럭 나의 연하장은 그 수량이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회사나 병원처럼 큰 조직은 아예 연하장 쓰기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처음 다니던 병원에서는 5-6년 간 꾸준히 연하장을 썼는데, 그 덕에 한 해에 50 통도 넘게 쓰게 되었다. 상대에 따라 멘트도 다른 연하장이기에 짧은 편지나 다름이 없어, 결국 아픈 몸에 무리라고 느껴져 병원 식구들에게 드리는 연하장부터 과감히 생략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큰 조직 구성원들에게는 연하장을 쓰지 않는다.
어쨌든 오늘은 연하장 보낼 주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느라 오전부터 시간을 보냈다. 모두 출근한 집에 혼자 있으니 내 끼니를 챙길 생각보다, 남는 시간에 누워있을 꾀가 먼저 났다. 주소들을 정리하고, 연하장 봉투를 쭈욱 쓰고 나니 피로가 몰려와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다나카 영상을 보며 깔깔거리기도, 깜빡 졸기도 하다가 퍼뜩 빈 밥솥이 떠올랐다. 그리고 저녁 메뉴 고민을 좀 하다가 오늘은 냉동고에서 보았던 가자미를 구워야지, 생각하고서 벌떡 일어나 아침에 가족들이 남기고 간 그릇부터 빈 밥솥까지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하고, 밥을 안쳐놓고 나니 냉동고에서 꺼내놓았던 가자미가 적당히 녹았다. 찰싹 붙어있는 두 마리를 분리해서 컵 모양의 종이 포일 위에 눕혀서 식용유를 부어 생선 표면에 (장갑 낀) 손으로 스윽스윽 바른다. 그리고 포일을 더 뜯어서 생선을 가두어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돌린다.
종일 굶었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다. 원래도 나는 생선을 싫어하니까, 좋아하는 생선을 엄마 실컷 드시라는 의미에서 엄마 몫의 한 마리만 구웠다. 그렇다고 혼자 저녁을 드시면 또 엄마가 쓸쓸해할 것 같아서 내 몫의 반찬으로 계란말이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단출하게 계란을 네 개 깨고 나니 현관 번호키 눌리는 소리가 뾱뾱 난다.
우리는 늘 멀쩡한 식탁을 두고, 거실 테이블에서 밥을 먹는다. 식탁을 사용하는 사람은 오로지 동생 한 사람이다. 테이블에 구운 가자미와 반찬들을 차린다. 큰엄마가 담가주신 시큼한 총각무김치도 꺼내고, 김도 접시에 예쁘게 담는다. 그리고 나는 얼른 계란말이를 하러 다시 주방으로 간다. 마음이 급하고 사람이 쪼잔해서 계란을 아꼈더니 말리다가 말았다. 그래도 직사각형 접시에 그럴듯하게 담고, 그대로 식도로 칼집을 냈다. 그렇게 계란말이를 가져가니 엄마는 벌써 가자미 살을 발라 오물거리고 계신다. 아직 밥은 뜸이 드는 중이다. 엄마가 반찬만 드시는 걸 보니 마음이 급하다. 백미가 완성되었다고 쿠쿠 양이 말하자마자 나는 달려가서 주걱을 들었다. 배가 고팠을 엄마를 위해서 먼저 두 주걱의 밥을 솔솔 퍼 담는다. 내 몫은 한 주걱이면 충분하다.
둘이서 맛있게 저녁을 먹는다. 내가 한 것은 별로 없는데도, 엄마는 내가 한 반찬들이 다 너무 맛있다고 좋아하며 밥을 드신다. 어차피 김도 대기업 공장에서 구운 것을 접시에만 담았을 뿐인데. 크크.잘 드시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다. 내가 덜 먹어도, 커다란 계란말이를 엄마 밥 위에 놓아드리고, 또 놓아드린다.
저녁을 먹었으니 나는 바로 설거지를 한다.
엄마가 불안해 보이기 시작한 것은, 벌써 10월부터였다. 나는 섬세하니까 불안한 엄마를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고, 엄마를 달래고 보듬느라 스트레스가 쌓였었다. 그러나 그때는 잠깐 스쳐 지나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곧 괜찮아지겠지 했다.
그러나 그렇게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님을, 시간이 지나며 이런저런 사건들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그 복잡한 마음을 씻어내듯이, 나는 늘 식사 후 바로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하는 내 옆에 서서 엄마는 또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재잘거리고, 운동을 가고 싶다고 재촉한다. 얼른 설거지만 하고 가자며 엄마를 달래서 거실로 보낸다. 엄마는 다시 티브이 앞에 앉아 불암이 오빠와 밥상 투어를 한다.
손에 물기가 마를 새도 없이, 또 옷을 챙겨 입고 엄마와 동네 산책로로 나선다.
전에는 설거지가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컨디션이 안 좋은 때가 많았고, 나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서 그럴 때는 끼니를 건너뛰는 때가 많았기 때문에 싱크대에 있는 설거지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니까 이따 엄마가 알아서 하겠지 했었다. 어쩌다 내가 설거지를 하게 되어도, 집안일을 돕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퇴근하고 돌아와 보니 동생은 피로한 상태에서 회식을 하고 취해 잠이 들어있고, 엄마도 거실 티브이 앞에 누워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런데 이 둘이서 설거지는 또 엄청 쌓아놨단 말이지. 이것 참. 피곤하지만 소맷단을 걷고 또 설거지를 한다.
어릴 때는 설거지를 제일 싫어해서 설거지를 하게 되면 화가 났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피곤해서 눈이 감기는 상태에서도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완벽하고 깔끔하게 설거지를 한다. 이 꼴을 해놓고 누워 있는 엄마를 보아도, 내 자식이려니 생각하면 화날 일이 하나도 없다.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자식이어서' 참아주는 것처럼, 나도 엄마를 나의 사춘기 딸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엄마가 전처럼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기만 한다면, 이깟 설거지쯤 평생 해줄 수도 있다, 고 생각하지만 거칠게 튼 손이 아주 조금 서러운 겨울의 오후.
어쩌면 평생 자식을 키울 일이 없는 내게, 하늘은 이렇게라도 양육의 어려움과 자식에게 너그러울 수밖에 없는 부모의 기쁨을 알게 하려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