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까

by 이정연


나는 외톨이다. 매달 초가 되면 나의 혈액검사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는, 소중한 사람 단 한 사람이다. 도 요즘은 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 투석을 받은 지 만으로 10년을 지나면서, 스스로도 많이 지쳐버렸다. 그래서 차트를 모으는 것 외에는 그다지 스스로의 몸 상태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리고 스스로의 상태에 대해 더욱 신경 쓰지 않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겉으로는 스스로의 상태에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도, 매달 초 혈액검사 이후에 늘 차트를 확인한다. 이제 첫 투석으로부터 만 11년을 꽉 채웠으니 이것은 아주 오랜 습관이다.

투석을 시작했던 초기에는 그 누구보다 내가 나 자신의 병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어려운 병 앞에 결코 무릎 꿇지 않겠노라, 이식 기회가 오는 순간까지 최적의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겠노라 늘 다짐했다. 내 몸 상태를 잘 알기 위해 차트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기롭게 차트를 복사해와도 의학용어밖에 없는 차트를 읽을 수가 없었다. 정상기준치도, 평균치도 전혀 알 수 없었다. 나는 뭔가에 꽂히면, 그 길로 그걸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그날 밤을 새워서 의학용어를 검색하고, 차트에 붙임쪽지를 붙여가면서 검사결과를 분석했다. 그리고 결국 해결하지 못한 두어 가지 항목은 다음 날 아침 병원에 가서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그 이후로는 당당하게 혼자서 차트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능숙하게 차트를 읽는 내 모습을 본 선생님들은 밤을 새워 공부했다는 고백에 대견해했다. "정연아, 너처럼 하는 게 맞는 거야. 스스로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 하는 병이야, 이 병은. 혹시라도 공부하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우리 중 누구한테든 물어봐. 알겠지?"


스물다섯이 되자마자부터 함께 한 신장실 간호사 선생님들은, 정말 따뜻하기 그지없었다. 오래오래 함께 했던 선생님들은 "정연아, 그런 건 언니한테 물어봐야지~"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나를 동생처럼 생각하고 아껴주셨다. 새벽 6시에 병원에 도착해서, 호사 데스크를 차지하고 공부를 해도 용인이 되었다.

투석 중에 저혈압 상태가 올 것 같다 싶으면, 우리 간호사 선생님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내게 달려와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주었고 혈액검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걱정뿐만 아니라 응원과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선생님들의 지지를 받은 나는 또 악착같이 조절을 해서 바로 다음 달에는 정상수치로 돌아와, 우리는 늘 웃을 수 있었다.


병원을 떠난다는 나를 그토록이나 잡았던 그 촉촉한 눈빛들을 잊을 수 없지만, 나는 지난 1년 간 새로운 병원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새로운 병원으로 옮기면서 몸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사상 최악의 결과들. 100명이 넘는 환자들 중 가장 혈액검사 결과가 나쁜 상태가 유지되었다. 투석효율도도 사상최악으로 떨어져서 미국신장학회에서 말하던 그 죽음에 가까운 수치에까지 도달해 보았다.(미국신장학회에서는 Kt/v가 1.2 이하로 떨어진 상태가 몇 달 이상 유지되면 사망에 이른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났다. 나름대로 식이조절 등의 노력을 했기에 혈액검사 결과가 좀 나아졌으려나 싶어, 신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내 자리에서 차트를 살펴보던 나를 지금의 원장님과 그날의 담당 간호사 선생님이 공격한 것이었다.


원장님은 감히 환자가 차트를 보는 것이, 우리 의료진의 근무일지를 훔쳐보는 것과 같다며 정연씨는 친하면 남의 핸드폰을 막 빼앗아서 보냐고 나에게 역정을 내었다. 남의 기록을 함부로 본 것도 아니고 내 자신의 혈액검사 기록을 본 것이 이렇게 비난받을 일인가 싶어 나는 속으로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원장님의 비난 폭격에 민망해져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그날의 담당이었던 간호사 문 선생님은 한술 더 떴다. 환자가 지나치게 궁금한 것이 많고, 알려고 들면 의료진에게 따지기밖에 더하겠냐고. 그러니 원장님이 저렇게 싫어하시는 것도 당연하다고. 환자는 그저 의료진이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평소 니들링할 때도 손 끝이 너무 거칠어 문 선생님에 대한 감정이 좋지만은 않았는데, 저런 이야기들에 내 음은 거친 사포가 되어버렸다.




이제 나는 절대로 내 차트에 손을 대지 않는다.

차트에는 한 장에 6개월분의 혈액검사결과가 기재되어 있어 몸의 변화를 한눈에 살피기에 좋았는데, 이곳에서는 그 차트를 건들지도 못하게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전의 병원에서는 10년 동안 인해주었던 일을.

차트에만 쓰여 있는 수치는, 계산식을 이용해야만 도출해낼 수 있는데 차트를 보지 못하게 하니 이제 스스로 계산식을 찾아내어 직접 수치를 계산하고 있다. 귀찮지만 매달 혈액검사를 할 때마다 그 달의 검사결과지를 달라고 부탁서 새롭게 모은다. 원장님에게 비난을 받았던 그 달 이후로, 아예 내 병에 대해 관심 갖기를 포기할까 하다가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도 수치를 낮추는데 유효했던 방법을 원장님에게 제안할까 말까 하다가, 공손하게 약 추가하는 건에 대해 얘기하니 흔쾌히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조금 떨어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상수치까지 떨어뜨려서 유지하는 것이 내게는 필요한데, 그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감히 환자인 내가 나설 수밖에. 나에게는 무엇보다 나 자신의 건강이 중요했기에 혼나거나 무시당할 각오를 하고도 나섰는데 받아들여져서 다행이다. 나를 챙길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 더욱 강하게 든다.




저녁에는 예전 병원에서 친했던 간호사 선생님과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밝고 환한 선생님과는 이제 환자와 간호사 사이를 넘어, 언니 동생 사이로 지내고 있다. 언니는 병원의 그 누구도 해주지 않던 내 몸 상태에 대한 걱정을 해주었다. 나중에 이식을 했을 때, 이식신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수치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요즘 몸 상태가 어떤지를 묻더니 대번 처방약에 대한 지적도 해주었다.


원래 지난 병원에서는 모범생으로 통했던 나다...



너무 멋진 사람이다. 훌륭한 간호사의 표본이다.


그리고 앞으로 공부하다가 좋은 자료가 있으면 공유해주겠다는 언니의 이야기 우리의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비록 지금 병원에서 나를 돌봐주는 간호사 선생님은 아니지만, 이렇게 내게 마음 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또 조금 지친 나를 세워준다.


오늘 조금 부족하고 스스로에게 소홀했어도, 내일은 더 나아지면 되고 더 내게 신경 쓰면 된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까.




표지사진; 새해의 첫 아침해, 이정연, 2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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