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게 위로하지 않았다.
그녀는 괜찮냐고 묻지 않았고, 서툴게 위로하지 않았다
암과 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이연
나의 브런치에 와서, 또 나의 사진 게시공간에 와서 그녀는 나를 추앙한다고 말했다.
나는 전부터 그녀의 책을 사두고, 쉽사리 읽지 못했다. 그냥 그저 그런 책으로 대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사자마자 읽게 되는 책이 그저 그런 책이란 뜻은 결코 아니지만, 그녀의 책에서 나는 아마 어렴풋하게 내 지난 11년의 향을 맡았던 것 같다. 그래서 쉽사리 펼칠 수 없었다. 새해가 되자마자부터 그녀의 책을 읽겠다고 결심하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요즘 마음이 정갈한 순간마다 그녀의 책을 소중하게 펼치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인덱스 스티커를 붙인다. 전에는 책을 읽다가 반듯하게 연필로 줄을 긋기도 했고, 좋아하는 파스텔 톤의 컬러펜으로 문장 위를 칠하기도 했다. 모두 공감하는 문장, 소름 끼치는 문장들이었다. 그러다 책을 좀 깨끗하게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인덱스 스티커 한 세트를 샀다. 그리고 책 리뷰를 하기 위해서, 때로는 다시 읽고픈 부분에, 기억하고픈 문장 옆에다 인덱스 스티커를 붙이며 읽기 시작했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는, 거의 매 페이지마다 투병생활 동안의 나를 만났다. 여전히 나는 투병생활 중이고, 어쩌면 살아 있는 내내 이 병과 싸워야겠지만 비교적 초반의 내 모습이, 내 생각이, 내 감정이 그녀의 책에 모두 녹아있었다.
병 팔이 에세이를 써서 언젠가 팔아먹고 말테야!라는 앙큼한 꿈을 가진 나는, 그녀의 글 앞에 속수무책 무너져버렸다.
이미 최고의 투병 에세이가 있는데, 굳이 나까지 책을 낸답시고(물론 출간에 성공했을 경우) 종이를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
(혹시라도 이 글을 읽으실 출판관계자들께서는 이 문장을 흘려 읽으시길)
그녀가 나를 추앙한다고? 그녀를 읽자마자 내가 이토록 그녀를 추앙하게 되었는데, 그녀가 고작 나 같은 존재를 추앙하다니.
그녀에게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사람인지 보라고, 그녀가 좋아하는 숲에서 기다리겠노라고 도전장이라도 쓸 뻔했단 말이지. 누가 누구를 추앙하는 편이 온당한 지 가리기 위한 그런 도전적 만남의 도전장말이다.
물론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숲이 어디인지 모르므로 그런 도전행위를 실제로 옮기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