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엔 떡국, 오늘은 투석.

by 이정연



맑은 콧물이 똑똑 떨어진다. 바짝 마르는 코와 목을 축이려고 무언가 많이도 마신 주말. 평소 국물을 먹지 않는 투석환자가 설날 떡국의 국물을 모조리 마셨다. 떡국 속에 들어 있는 떡을 싫어한다. 늘 질깃해서 삼키기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올해는 오색 쌀떡을 샀다. 그 몇 푼 하지 않는 걸, 벼르고 벼르다 올해는 사고야 말았다. 색감이 예뻐서인지, 이번 떡은 질깃하지 않고 잘 씹혀서 목구멍으로 꿀떡꿀떡 잘도 넘어간다. 꿀떡도 아닌데 말이지. 진하고 구수한, 따뜻한 고깃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면서 이 감기를 가라앉혀 주기를 바라며 먹었다.


그러나 종일 맑을 콧물을 뚝뚝 흘리고, 되려 밤에는 또 코가 잔뜩 막혀 코맹맹이 소리가 났다.


요 며칠은 자정을 넘기면, 피로가 몰려와서 딴짓을 못한다. 그냥 핸드폰을 놓고 곰순이(26년 된 나의 반려 인형이다. 작명센스 따위 지난 빙하기에 얼어 죽었다.)를 꼬옥 끌어안고 바로 잠으로 빠져들었다.


새벽 4시 53분에 눈이 떠졌다. 시간을 확인하고 안도했다. 습관적으로 버스앱을 켰다. 아, 아직 첫차도 다닐 시간이 아니구나 싶어 조금 더 눈을 붙였다. 6시 넘어 개운하게 깨어났는데, 벌써 버스 타고 나서기엔 좀 이르다 싶어 그냥 나를 조금 더 침대에 부려놓았다.

가족 모두의 운전기사 노릇하는 동생이 안타까워, 어차피 한산한 공휴일의 대중교통을 즐기자 싶어 오늘 병원도 평소처럼 버스와 전철을 이용할 결심.


아차. 버스가 15분 후에 집 앞에 온다! 벌떡 일어나 욕실로 간다.

이를 꼼꼼하게 닦고 고양이 세수를 하고 방으로 돌아오니, 맙소사. 버스 도착이 3분 후. 에잇 이 버스는 보내주자. 아직 옷도 못 입었고, 빙판길에 뛰었다가는 세상 하직하는 수가 있다.


다음 버스가 오기까지 막간을 이용해 또 5분을 누워본다. 크크크. 아침의 5분은 쏜살같다. 다시 벌떡 일어나 반소매 티셔츠와 슬랙스를 입었다. 그 위에 모자 달린 따뜻한 점퍼를 입고 모자를 뒤집어쓰고 머플러도 둘둘 감았다. 왼쪽주머니엔 투석실에서 사용할 지혈대 한 쌍과 이어폰을 챙겨 넣고, 오른쪽 주머니엔 초록색 교통카드와 핸드폰을 챙긴다.


우리 동 출입문을 열고 나오니 간밤에 또 눈이 왔던지 길 위에 눈이 소로록 덮여있다. 전혀 춥지 않은 새벽이다. 힘차게, 그러나 몸에 긴장을 놓지 않고 길을 걷는다. 눈 길 위를 종종걸음 치며 걷는 스스로를 병아리 같다고 생각한다. 새벽부터 나에게 귀여움 받았다.


평소 출근길은 사람이 많아서 좌석에 앉지 못하는 때가 훨씬 많은데 오늘은 한산해서 편히 앉을 수 있어서 좋군. 시골동네의 배차간격이 긴 버스라 늘 사람이 매우 많다. 그래서 오늘의 밀도 낮은 버스가 정말로 좋다. 우리 병원 식구들처럼, 달력 숫자가 빨간색이어도 출근하는 이들도 있겠지? 전철역 앞의 택시 정류장에도 택시가 늘어서있다. 세상 모두가 대단해 보이는 아침. 일부러 텅빈 칸을 찾아 전철에 올랐다. 브런치 글을 읽으며 병원으로 가는 시간, 도망치지 않고 내 목숨을 살리러 가는 나도 참 대단하구나. 마음으로 나를 안아주는 아침. 새해에는 나를 많이 사랑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니 맑은 콧물도 멎는다.




표지사진; 열린 전철문, 이정연, 20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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