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가 활짝 피는 계절. 다니는 길목에 드문드문 있어서 5월을 느끼게 한 붉은 장미. 작은 버스가 신호를 받았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파트 울타리에 예쁘게 피었네. 찰칵.
작년 이맘때 다니던 길에는 장미가 무척 많이 피어있었다. 늘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장미를, 올해는 병원 근처의 이 지점에서만 겨우 본다.
그때 울타리에 바짝 붙어서 크게 볼 수 있던 장미보다, 이렇게 떨어져서 보는 장미가 훨씬 예쁘다고 생각한다.
대구의 오늘 기온이 35도라고, 점심을 먹으러 나온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래서 내가 점심 메뉴를 결정해주어야 한단다. 지금 왼쪽에는 갈비탕 집이 있고 오른쪽에는 냉면집이 있다고, 왜 나왔는지를 잊을 만큼 덥다고 한다. 요즘 기력이 딸린단다.
"더우니까 몸보신을 위해 갈비탕을 먹어야 할 거 같지? 아니야, 아니야. 더운데 무슨. 냉면을 먹도록 해."
답을 듣더니 이내 또 문제가 있단다. 물냉이냐, 비냉이냐. 나는 투석환자라 국물이 있는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 그렇다고 양념이 너무 강한 걸 먹어도 되나. 그러면 속이 불편하겠지. 그러나 친구를 위해 고르는 이 시간은 고민이 필요 없어서 좋다.
"오늘은 너무 더우니까 물냉이야. 무조건. 고민하지 마."
친구가 보내 준 물냉 인증샷. 나는 눈으로 먹는다.친구의 점심 메뉴를 정해줄 때처럼 내 인생도 간단명료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거침없이 메뉴를 정해주니 친구는 목소리로 물개 박수를 쳤다. 지금쯤 면발을 흡입하고 있겠지.
5월의 언젠가 장미 사진을 찍었던 그 아파트 울타리 옆을 버스가 지난다. 울타리의 이 쪽 편은 장미 송이가 별로 없네, 생각하던 찰나 그때 장미 사진을 찍었던 지점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이 쪽은 여전히 풍성하게 예쁘게 피었구나.
사진을 찍었던 5월을 생각한다. 그 날 버스는 사거리를 앞에 두고 바로 그 지점에서 신호를 받고 멈춰 섰다. 찰칵찰칵, 서너 번 버튼을 누를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주어졌다. 잘 서지 않는 지점에서 버스는 멈추고 나는 5월의 장미를 담았다.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절대로 찍히지 않았을 사진을 보며 생각한다. 버스 안에서 찰칵거리는 소리를 내기 부끄러워 렌즈를 통해 장미를 보지 않았다면, 잠깐이라도 망설이거나 생각하느라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면 절대로 내게 남지 않았을 순간이 변하지 않는 붉은색으로 내 사진첩 속에 있다.
망설이지 않았던 모든 순간을, 나는 후회하지 않기로 한다. 아주 잠깐의 고민과 결정으로 했던 모든 순간의 행동을, 사진첩에 남은 5월로 생각하니 별 것 아니었다. 그 순간이 힘든 기억으로 남았다면, 그냥 사진첩 속에 그대로 두면 된다. 꺼내보지 않고 그대로 두고 나는 새로운 순간을 담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