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생겼어요.

by 이정연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일, 그리고 또 가장 힘든 일은 단연코 설거지.


나는 주로 새벽 6시 반이면 집을 나선다. 뒤이어 동생이 출근을 하고, 7시 50분쯤 엄마가 마지막 순번으로 출근을 한다. 내가 집을 나설 때 주로 나를 뺀 나머지는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아침식사래봤자 거창할 것이 없는 밥과 국에 찬 두어 가지인데 병원에 다녀와서 싱크대를 보면 한살림이 나와있다. 체 다들 뭘 잡순겨.

병원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로 제대로 물에 불려져 있지 않은 싱크대의 그릇들을 헹궈서 물에 불린 상태로 차곡차곡 정리한다. 그리고 청소와 빨래를 모두 하고 나서 내가 추가한 그릇이 더 늘어난 싱크대에 서서 설거지를 한다.

야근이 없는 가족이 퇴근하는 저녁이면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식사를 준비한다. 빨래와 청소, 설거지는 무척 깨끗하게 잘 해낼 자신이 있지만 솔직히 갑작스레 맡게 된 살림이라 찬거리 레퍼토리가 풍부하지는 않다. 집에 '한국인이 좋아하는 반찬 000가지'라는 아주 직관적인 제목의 책이 있는데 꼭 읽어보아야지 하면서도 절대 읽지 않는다. 그럴듯한 반찬을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과 귀찮은 마음 중 결국은 귀찮음이 늘 이기는 법이다.


어쨌든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또 설거지를 한다. 이상하게도 어느 날은 설거지를 서너 번 하게 되는 날도 있다. 이 설거지라는 것이 본디 건강하던 때에도 가장 싫어하는 집안일이었던 터라 끔은 이를 악물고 해야 할 만큼 힘든 날들도 있었다.

게다가 나는 1년 365일 중 단 하루도 고무장갑을 끼지 않는다. 아, 올초에 내가 좋아하는 안녕작가님에게 독특한 색상의 고무장갑을 선물 받아서 두어 번 껴본 일이 있지만, 워낙 답답한 것을 싫어하는 데다 맨손으로 뽀득하고 깨끗한 그릇을 느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는 평생을 고무장갑 없이 살아왔다. 본디 손도 더럽게 자주 씻기에 핸드크림도 잘 바르질 않는다. 그래서 손이 거칠다.


그런 나에게 부산에 사는 은혜언니는 '집에 식기세척기를 들여. 신세계예요, 신세계!'라고 몇 번 추천사를 날려주신 적이 있다.

과연 우리 집 주방에 그 친구를 들일 여유공간이 있을까 싶어 욕심내었다 포기하기를 여러 차례. 그러나 이대로는 진짜 죽겠다 싶어, 결국은 가족들에게 '식세기로 신세계를 열어보지 않겠는가!' 제안을 했다.


늘 남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만 하는 전업주부를 부러워하며 살았다. 내 인생에는 절대로 없을 역할이어서 더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집안살림을 하면서, 세상의 모든 전업주부들을 존경하게 되었고 더불어 더 이상 그들을 덮어놓고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살림이라는 것이, 매일매일 부지런히 쓸고 닦아야 그나마 현상유지라도 되는 것이고 조금만 소홀해도 아주 엉망이 되어 안 한 티가 팍 나는 일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게다가 돌아서면 끼니 걱정, 세탁물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싶으면 또 누군가 옷을 벗어놓아 쌓이는 게 보통인 것이 집안일이니까. 안일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


청소는 좋아하는 일이니 크게 관계가 없고, 빨래는 세탁기가 해준다지만, 하루에 서너 번 설거지하는 날에는 정말로 기가 막혔다. 나도 병원 가고, 출근도 해야 하고 또 미래를 위해 할 일들이 많은데 어찌 집안살림에만 메여 있겠는가 말이다. 이러다 영원히 집안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결국 식기세척기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리틀 김영옥으로, 욕에 재능이 있는 나는 또 쇼핑에도 재능이 있다. 늘 싸고 좋은 걸 잘 찾아낸다. 이번에도 믿을 수 있는 회사의 합리적인 가격이 붙은 모델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우리 집 주방에 설치가 가능할지를 가늠해 보고, 가족 단톡방에 식기세척기 사진을 올렸다. 색상 투표를 했다. 만장일치로 화이트. 시 대기업은 대기업이다. 밤에 주문을 했는데, 바로 다음 날 기사님이 전화연락을 주셨다. 내일 오전 11시에 방문하겠다는 약속대로 딱 제시간에 와서 착착착, 설치를 하고는 친절히 설명을 해주고 가셨다.


식기세척기가 배달되기 전에 미리 쿠퐝으로 식기세척기용 세제를 사두었다. 역시 준비성이 철저하다.

집에 설치기사님이 오신다고 싱크대를 텅텅 비워놨었다. 설거지거리가 나오길 기다리긴 처음이다. 설거지거리가 좀 생기자마자, 시험적으로 식기세척기 가동을 해 보았다. 그리고 세척이 다 된 식기세척기는 수줍게 입을 벌리고 나를 기다린다. 은혜언니가 식기세척기에 대해 강조하실 때 하셨던 말씀을 기억해서 샀다. '설거지가 끝나면 반드시 자동으로 문을 열어주는 모델로 살 것.'

식기세척기의 기념비적인 첫 설거지가 끝나마자 수줍게 열린 문을 더 활짝 열고 바스켓을 당겨 꺼내어 그릇들을 면밀히 살핀다. 그릇이 따끈하다. 그리고 아주 말끔하다. 솔직히 설거지에 걸리는 시간이야 나보다 더 많이 걸리지만, 이렇게 마음에 들게 깔끔하게 설거지해 주는 친구는 동생 외에 처음이다.


다른 집안일을 모두 끝내놓고야 했던 설거지를, 이제는 집안일을 시작할 때 한다. 세탁기 돌리듯 그릇들을 먼저 돌려두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식기세척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빨래를 개는데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래서 식기세척기를 서너 번쯤 가동했을까? 기계 앞에 서서 이 친구에게 받은 감동을 담아 이름을 붙여주고, 막내 동생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내 이름의 앞글자를 돌림자로 해서, 이제부터 식세기의 이름은 예솔이, 이예솔이다! 크크크.


"동생아~ 우리 식세기의 이름은 예솔이야. 이름 예쁘지? 너도 예솔이라고 불러줘."


이제 집안일을 도와주는 귀엽고 하얀 동생이 생겼으니까, 우리 집의 맏이인 나는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할 시간을 벌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한 달간은 글쓸거리가 없는, 나름대로 편안한 시간을 보낸 듯합니다. 글을 발행하지 못하고 지내는 동안, 계절은 완연한 여름이 되었네요.

올해는 또 이 더위를 어찌 헤쳐나갈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구독자 여러분은 모두 건강하고 안녕하신지요? :) 늘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날도 더워지고, 7월이 되기도 해서 인사를 여쭙고 싶었답니다. 모두들 건강 유의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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