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는 건 그런 거지.

by 이정연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나는 정말로 낭만적이고 부드러운 사람이지만, 실상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속은 차가운 사람이다. 스스로 낭만적이고 부드럽다니 직히 맛이 좀 간 사람이기도 하고.


평범하게, 남들과 같은 궤도를 돌며 살아가고 싶은데 그 어떤 평범함도 허락되지 않는 삶을 20년 가까이 살다 보면 속에 들어차는 건 욕지기뿐이다. 들리게 내뱉지 않을 뿐, 내가 얼마나 욕을 잘하는지 직접 당신이 듣는다면 아마 졸도하겠지.

이런 십장생, 개나리야. 길에서 만나는 무수히 많은 비상식적 인간들에게 내가 속으로 내뱉는 말들. 이 작은 도시의 리틀 김영옥, 바로 이정연이다.


사람이 기쁘면 기쁜 대로, 또 슬프면 슬픈 대로 감정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어야 하는데 도통 그럴 여유가 없었다. 병원에 다녀와서도 한숨 돌리지 못하고 하루종일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살림을 한다. 무슨 대가족 살림도 아닌데 설거지는 왜 이렇게 많고, 집구석에 먼지와 쓰레기 왜 이리 많으며, 삼시세끼 다른 옷을 입는 것도 아닌데 빨래는 또 왜 이리 많은가 말이다.


'엄마를 돕는다'라고 주장하던 의 나는 살림을 우습게 봤다. 어쩌다 여유 있는 날, 혼자 집안 대청소를 하고 뿌듯해하며 살림이 체질인지도 모르겠다고 지껄이곤 했었다. 그런데 그걸 매일같이 반복하다 보니 이 세상에 '살림이 체질'인 사람 같은 건 존재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모든 걸 혼자 다 해낼 수 없다는 것도. 청소, 빨래, 설거지는 다 할 수 있지만 식사준비까지 하는 게 버거웠다. 메뉴를 고민하는 것도 문제고, 일단 나는 레퍼토리가 뻔해서 말이지.

엄마는 평생 이걸 다 해왔구나. 아주아주 옛날, 엄마가 무늬는 주부였던 시절에 늘 반짝거렸던 집이 떠올랐다.

우리 집이 망하기 전까지는, 정말 완벽하게 깨끗했던 스윗홈. 그립다, 그리워.


지금의 집 상태로는 반짝거리게 유지하기란 불가능이라, 입주청소를 한 새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새로 시작한다면, 정말 티끌 하나 없이 집을 유지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몇 년 전에, 무급 입주청소(엄마와 내가 대강 했다)로 들어온 데다 구성원 모두가 직장인이다 보니 대강대강 밀어놓고 살아온 결과다.

그래도 지금껏 주말마다 욕실청소는 빼놓지 않고 해 왔다. 무위도식하며 사는 스스로에게 정해준 생산적인 당번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병든 몸에 모든 집안일이 밀려오니 정신을 못 차리겠는 거지. 그러니 낭만이고 부드러움이고 애저녁에 내다 버렸고, 힘들어도 눈물이 나오는 게 아니라 화가 났다. 사람이 힘이 들면 슬픈 줄 알았는데, 그건 아직도 등에 이고 있는 것의 무게를 버티고 설 수 있을 때만 가능한 감정이었다.

이제 살림을 좀 살다 보니, 요령도 생기고. 무엇보다도 분노를 너무 많이 했더니 야근 안 하는 날의 아들이 팔 걷고 나서서 설거지도 도와준다. 하지만 어디 내 일이 살림뿐이랴. 살림에 병든 이 몸을 돌보며 자아실현도 해야겠고 꿈도 이뤄야 하고. 평범해지고 싶다는 또 이룰 수 없는 꿈 하나도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하니 가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폭발해 버린다. 그리고 참 애석하게도 그 폭발의 피해자는 자주 소중한 사람이 되곤 한다. 그는 늘 나를 토닥여주고 달래주는데, 어제 따라 나를 달래주질 않고 차갑게 굴어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론 내가 억지 쓰고 염병을 떨어서,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나라도 나를 달래주기 싫었을 테다.


어린애처럼 서러워 눈물을 흘리고 보니 내가 잘못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거지. 게다가 요즘 몸이 아파서 걱정스러웠던 부분들도 떠올라 아주 펑펑 울었다.

사실 폭발의 최대 피해자는 엄마고, 그 꼴을 봐야 하는 동생도 피해자고. 그 모든 이야기를 다 들어주다가 또 다른 폭발에 의해 너덜너덜해지는 소중한 사람도 피해자고. 이정연 폭발 피해자 모임이라도 만들어서 소송을 진행해야 할 판이다.

진짜 나처럼 못 돼먹은 인간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울다 보니, 죽어 마땅한 못돼 쳐 먹은 인간이 사라졌다. 그동안 울지를 못해서 속에 독기가 쌓였구나. 운다는 건 어쩌면 속에서 독기를 빼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찌나 많이 울었던지 코가 엄청 막혔다. 못생긴 얼굴에 기가 막힐까 봐 손바닥만 한 아이스팩 두 개를 꺼내서 안대처럼 눈 위에 얹어두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아이스팩들은 어디로 갔는지 실종되고 못생긴 얼굴에 기 막힌 상황이 펼쳐져버렸다. 누구라도 내 얼굴을 빤히 볼까 봐 긴장되는 오후.


마음이 조금만 말랑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매일 조금씩 울어서 마음에 독기를 빼내고 살아낼 수 있기를.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기를.



표지사진; 이정연, <위용위용 소리를 낼 것 같은 해양경찰 선박, 경주, 2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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