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란히 늦잠을 잤다. 나는 병원에 가야 하고, 동생은 출근을 해야 하는데 늦잠이 웬 말이냐!
집에서 쫓겨난 지 사흘째가 되는 8월 2일 아침이었다.6시 59분에 일어난 동생은 우당탕탕 욕실로 달려간다.
동생의 뒤를 이어 욕실에 들어갔다 나온 뒤, 옷을 빠르게 챙겨 입었다. 그리고 아침을 꼭 먹어야 하는 동생을 위해, 어제 저녁에 마련해 둔 빵과 커피를 챙겨서 손에 쥐어준다. 출근하면서 꼭 먹어.
우리는 나란히 호텔을 나선다. 동생은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나는 역 방향을 향해 걷는다. 사실 호텔에서 3분만 걸으면 병원이다. 늦잠을 잔 것 같아도 각자의 출근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한 1분 30초쯤 걸었을까. 전철역 앞 사거리에서 신호를 받은 동생이 인도에 선 나를 향해 조수석 창문을 연다. 지잉. "누나, 잘 다녀온나~" "그래, 니도 힘내~"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향해 씩씩하고 다정하게 손을 흔든다. 일직선을 향해 사라지는 동생차의 뒤꽁무니를 보며 마음을 어루만진다. 머리카락 자르면 죽는 줄 알고 동네가 떠나가라 울던 장발의 하이바 꼬맹이가 언제 저렇게 커서 직접 운전해 출근을 하고 있담. 이럴 때 나는 향수에 젖은 정연 할매가 된다.
7월의 마지막 날, 엄마는 두 번째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그리고 또 자연스럽게 내가 쫓겨나는 결말.
"정연이가 나가는 것이 안전하지 않겠니?"
엄마의 무논리에는 맞설 재간이 없다.
2022년 딱 이맘때에도,이렇게 집에서 쫓겨났었다.
그때는 온 가족이 차례로 감염되어 음성인 나만 쫓겨나는 비극이 펼쳐졌더랬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힘들다. 나는 병원 근처의 호텔에서 혼자 헛것을 보고 경기를 일으켰고, 혹여나 나도 코로나에 감염된 것은 아닐까 걱정되어 한숨도 자지 못했더랬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동생과 둘이 쫓겨났다!
동생의 니즈와 나의 니즈를 동시에 충족시키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무언가 제안을 하면,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은 동생은 대번에 "그럼 누나 혼자 가던가."를 시전 했다. 것참... 말을 인정머리 없이 한단 말이지.
이런저런 플랜 중에 결국 타협된 안은, 시내 전철역 맞은편에 위치한 호텔 객실을 예약하는 것. 싱글 침대 두 개가 나란한 객실이다. 누나와 남동생이지만, 한때는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우리에게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어차피 7시께에 둘 다 출근을 한다. 나는 병원으로, 동생은 회사로. 목요일부터 휴가인 동생은, 아마 이번 코로나 가출 기간에는 야근을 하지 않겠지. 그러니 동생이 퇴근해서 호텔로 돌아오면 6시 반 정도가 될 것이다. 나는 평소처럼 병원에 가서 투석을 할 테고. 딱히 불편할 일이 없다.
월요일 저녁에 퇴근한 동생과 짐을 싸서 집을 나온 나는, 화요일과 수요일, 그리고 금요일에 투석치료가 예정되어 있다.
월요일은 엄마의 감염소식으로 하루종일 방 안에 갇혀 쫄쫄 굶었다. 그러다 동생이 돌아와 짐을 싸서 호텔로 탈출하자마자 맛있는 돈가스를 사 먹었다.
화요일에는 병원 치료가 끝나자마자 병원 건물 1층에서 포장해 온 밥으로 홀로 점심을 먹고, 넷플릭스 보며 드러누워 있었다. 동생이 돌아오면 같이 저녁을 먹어야지, 했는데 갑자기 야근을 하게 되어 나 혼자 밤까지 있게 되었다. 누나 저녁은 어쩌냐고 걱정을 해준다. 괜찮다. 누나는 혼자 사치를 할 것이다! 인터넷에서 '수박을 직접 갈아 만든 진짜 수박주스'라고 소문난 모 커피전문점의 수박주스 두 잔과 바닐라 라테, 빵 몇 가지를 주문했다.
동생이 퇴근하고 오면 주려고 수박주스는 포장째로 냉장고에 잘 넣어두었다. 동생은 돌아오자마자 감탄하며 수박주스를 꿀꺽꿀꺽 마셨다. 그리고, 둘이 함께 넷플릭스에서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낄낄거리며 웃었다. 아주아주 옛날 내가 건강했던 시절에는 영혼의 단짝이었다. 병을 얻고 나서도 늘 둘이 붙어 다녔다. 동생이 취업을 하기 전까지는. 분기별로 웬만한 애니메이션은 다 섭렵하던, 극장판 애니메이션 보러 영화관을 늘 같이 다니던 오타쿠 남매였다.
이렇게 오랜만에 함께 티브이로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다니. 집에서 쫓겨나는 것도 할만하다. 그렇게 평소보다 늦게 잠들었다. 특히 바른생활 사나이인 동생이 답지 않게 자정을 넘겨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6시 59분, 글의 처음에 들렸던 그 낮은 비명을 동생이 지르게 된 것이다. 으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