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 2023년 11월 6일 월요일
우산을 뚫을 만큼 비가 내렸다.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몰아치는 비바람을 피하며 걷는 일이 전부였다. 새벽을 가득 채우는 어둠, 그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의 불빛.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야 우산을 접고 지그시 버스 정류장의 처마를 본다. 세차게 내리는 비에 운동화도, 바지도, 코트도 모두 축축해졌다.
새벽 6시 40분이 되며 가로등이 꺼진다. 가로등이 꺼지는 순간, 새벽에서 아침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버스에 몸을 싣는다. 10분여를 달려 버스에서 내려 역으로 간다. 역 플랫폼에 서서 스크린 도어 사이로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우르르 전철에 오른다. 눈 깜짝할 새 ㄱ역에 도착해, 서울을 향해 전철에 오르는 이들을 헤치고 내린다.
노란 우산을 펼치며 비바람을 뚫고 역사를 빠져나간다. 그저 역 앞의 작은 광장을 지나, 건널목만 건너면 바로 병원인데도 세찬 비바람에 또 흠뻑 젖어버렸다. 비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노란 우산을 비스듬히 세워보기도 한다. 소용은 없다.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짐과 동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선생님이 투석을 마쳐주러 오셨다. 투석을 하는 시간을 전부 잠에 알뜰히 쏟았다. 축축해진 온몸을 바싹 말리자는 생각으로 전기장판을 약하게 틀었었다. 축축한 기운이 가시고 나서야 찬 공기에 이불을 당겨 덮었던 기억이 난다. 자는 동안 축축했던 몸은 아주 보송하게 말랐다.
신장실의 환자들을 살피며 돌아다니던 수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날씨가 참 이상해. 그렇게 비가 오더니, 또 해가 쨍하고 났네.”
아침처럼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지 않는 사실에 조금 안심하며, 엘리베이터로 간다. 역 방향으로 뚫린 커다란 창문을 통해 보이는 하늘이 맑다.
역 앞 건널목에 멈춰 선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옷을 갈아입는 모양으로, 아주 빠르게 이동하며 먹구름이 걷히고 있다.
또 ㄱ역과 ㅁ역 사이, 아주 빠른 이동을 했다. 핸드폰 액정을 잠깐 들여다보는 사이 종착역에 도착했다. 집까지 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한다. 아주 느릿느릿 역 앞으로 나가도, 버스가 올 시간은 한참 남았다.
코로나가 발병했다고 여겨지는 그날도, 고작 10분여를 떨며 버스를 기다리는 바람에 온몸에 한기가 들었었다. 그리고 온몸으로 앓으면서도 정작 코로나인지 몰랐던 이틀. 그날을 생각하며 도리질을 한다. 버스를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아주 따뜻한 식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택시에 오른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 그저 고개만 조금 쳐들면 되는데, 아프기 시작하면서 아주 오랫동안 하늘을 보지 않았다. 아름다운 것을 보는 일은 마음이 아팠다. 병든 나의 현실이 너무도 추하게 느껴져, 고개를 푹 숙이고 땅을 보며 걸었다. 돌아보면 애처로운 스물다섯의 나.
피부에 닿았던 그 간지러운 바람이 봄의 것이었는지 가을의 것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이 가을이니까, 그 간지럽고도 기분 좋은 바람이 가을의 것이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피부에 간지러운 바람이 닿았던 그날, 처음으로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하늘을 담았다. 병든 현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것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이제는 언제고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본다. 여전히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알고 있다. 나도, 하늘만큼이나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