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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연 Nov 05. 2023

자연스럽게


(042) 2023년 11월 5일 일요일


어제 퇴근하는 차 안에서 졸았다. 결코 정남이가 운전을 부드럽게 해서는 아니다. 사실 이 도시에 사는 모두가 조금은 정신이 나간 듯 아주 빠르게들 달린다. 그렇게 빠르게 달려도 될 정도로 차가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들은 모두 성질이 급하다.


매일같이 정남이와 함께 달리던 길을, 소중한 이와 몇 번 오간 적이 있다. 그가 250km나 떨어진 이곳에 머무르며 시내 한복판에서 조금 외곽인 우리 집까지 몇 차례나 데려다주었는데, 오가는 길에 많은 차들이 우리 뒤에서 클락션을 울려댔다.

그는 큰 도시에서 주로 운전을 하기 때문에, 서행하는 운전습관이 배어있다. 그 습관 그대로 이 도시에서 운전을 했더니 우리 보고 느리다고 난리가 난 것이다. 나의 소중한 그는 운전을 무척 잘하기 때문에, 되려 클락션을 울려대는 그들에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가 아차 했다. "원래 이 동네는 기본이 100킬로. 분명 우리 보고 느리다고 저러는 거야."라고 했더니 그가 황당하다는 듯 마구 웃어댔다.


어쨌든 정남이는 쌩쌩 달리는 이 도시의 남자. 차를 천천히 모는 법이 없다. 당연하지. 여기서는 차를  천천히 몰면 욕을 먹는다니까. 아마 과속 단속으로 도시가 벌어들이는 돈이 어마어마하지 싶다.

하여간 그런 정남이의 차 안에서도 졸았다고 하면, 정말 많이 피곤한 거다. 금요일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상태로 하루를 열심히 보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소중한 사람과도 카톡으로만 대화를 나누고 서로 일찍 잠들기로 약속을 했다.

꿰매둔 시술 부위 때문에 머리만 겨우 감고, 화장대 앞에 앉아서 얼굴을 물끄러미 봤다. 요즘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늙어가고 있다. 사실 그런 사실에 스트레스도 받고 있지만, 늙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그리고 내가 늙었다는 것을 누가 그리 쉽사리 눈치챌 만큼 빤히 쳐다보고 있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늙는 것은 자연스러운 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마음을 편히 먹기로 하면서도, 손은 강박적으로 팩을 찾는다. 제기랄. 역시 말과 행동이 달라. 이게 또 나의 매력이지.


불을 끄고 노란 조명만 두 개 켜두었다. 포근한 이불속에 파고들었다. 나도 모르게 잠으로 빠져들었다. 알람 따위 들리지도 않았다. 6시 반에서야 눈을 떴다. 오랜만에 시간에 잤더니 아주 개운했다. 노란 우산을 들고 아파트 현관 앞에 서자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제 이 비가 그치면 정말 겨울바람이 불어올 테지. 늙는 것도, 계절이 변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을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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