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연 Nov 14. 2023

어떤 그리움이 고개를 쳐들 때.



오후 3시, 용산역 근처 페에서 중요한 약속이 있었다. 용산역에 한 시간 전에 도착하게끔 준비해서 전철을 탔다. 좌석에 앉아 현재 위치를 파악하다가, 효창공원쯤 와서 전광판을 확인하고 주변을 잠깐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다.

좌석 7개 거리 너머 대각선으로 그녀가 보였다. 마스크 속에서 "윤지언니네."라고 혼자 작게 웅얼거릴 만큼 닮았다.


용산역에 전철이 다다르며, 내리는 문으로 가면서 그녀 쪽을 보았다. 주변에 있는 이들은 같은 회사 사람들일까? 생각하며 내렸다. 그랬더니 내 앞의 문에서 그녀도 내리는 것이었다.


죽어서도 잊지 못할 첫사랑을 쫓아가는 여자처럼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몇 걸음 뒤에서 따라 걸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조금 덜 닮은 것도 같고.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운이 좋게도 바로 내 앞의 왼쪽에 그녀가 섰다.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 동안도 그녀에게 시선고정. 핸드폰 액정 위에서 왔다 갔다 하는 손가락이... 내가 기억하는 윤지언니의 손가락 같다. 그녀에게 정신이 팔려서 에스컬레이터 끝에서 발이 걸려 넘어질뻔했다. 

주변에서 다 쳐다보았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지금 나는 첫사랑의 뒤를 쫓는 김연아. 이내 균형을 찾아 그녀를 바라보며 따라 걸었다. 윤지언니라 불러볼까. 아니면 이윤지 이렇게 그냥 소리쳐볼까? 본인이면 돌아보지 않을까?

내가 사람들에게 밀려 뒤늦게 카드를 찍으려고 기다리는 사이, 그녀는 개찰구를 빠져나가더니 빠르게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그녀를 놓쳐 버렸다.


그녀와는 여중, 여고를 함께 다녔다. 나는 늘 학생회 소속이면서 신문부 활동을 함께 했는데 그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두 곳에 양다리를 걸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거를 통해 얻은 자리, 시험을 쳐서 들어간 신문부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늘 겸손하기 위해 애썼, 어느 일에도 치우침 없이 최선을 다했다. 그런 나를 무한한 따스함으로 보아주던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윤지 선배.


신문부원으로 선발되고 나서 첫 회의 때, 선배들은 내 말투를 듣고 깔깔 웃었다.

"야, 정연이 어려운 단어 쓰는 거 윤지랑 똑같지 않나? 리틀 윤지다, 리틀 윤지. 윤지가 지금 아파서 학교를 안 나오는데, 나오면 알 거다. 둘이 똑같다, 똑같아."

그런 주변 평 때문인지 나는 유난히도 윤지 선배가 좋았고, 윤지 선배도 유난히 나를 귀여워했다.


그녀는 졸업과 동시에 서울로 갔다. 다른 선배들처럼 혈혈단신 유학이 아닌,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나도 그녀를 따라 20살에 서울 가까이로 이사를 했다. "이제 윤지 선배라 부르지 말고, 언니라고 불러. 너가 서울로 와서 너무 좋다." 우리는 그렇게 끈끈하게 연결되었다.


20대 초반에 윤지선배는 동부이촌동에 살았던 적이 있다. 그래서 용산역에서 그녀 닮은 뒷모습을 좇으면서도 그 생각이 퍼뜩 났다.

꽤 오랫동안 내게 손 편지를 보내주었던 그녀였다. 갑자기 다시 수능을 준비하느라 지금은 사라진 서울 중심가의 대형서점에서 알바를 할 때는, 나를 불러 영어수험서를 잔뜩 챙겨주었다. '언니는 직원 할인으로 싸게 살 수 있어서 우리 쑥이(당시의 이정연을 부르던 애칭) 주려고 샀지.'

집이 망해서 힘들었던 시절, 그녀의 손 편지는 내게 향긋하고 반듯한 희망이었다. 언젠가 서울에서 함께할 우리의 청춘을 늘 상상하곤 했다.

그녀는 꽤 긴 방황 끝에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방송작가가 되었다. 내게는 다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그때 그녀도 어렸고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 듯했다. "언니가 나중에 연락할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연락은 끊어졌다.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한참 바라보았다. 사람이 많은 용산역 안에서 그녀의 뒷모습은 금세 사라졌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뜨거운 가슴을 끌어안고 그녀가 사라졌던 방향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용산역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를 기다리며, 역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그녀가 간 방향에 이르고 보니, 그녀는 원효로 쪽으로 나갔겠구나 싶었다.

역시 소리쳐 불러봐야 했을까. 그녀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밤이 된 지금은 분명 그녀였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녀가 아니어서 내가 부끄러울 일은 상관없다. 사과 한 마디하고 고개 숙이면 되니까. 그러나 지금 곁에 있는 인연들을 챙기는 일에도 허덕이는 내가, 지금 와 그녀를 만난 들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그 두려움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리운 것은 그녀와 함께 했던 그 시절의 내가 건강했었다는 것과 그녀가 나를 참 아껴주고 귀여워해주었다는 것. 학창 시절부터 그녀는 내가 너무 귀여워서 나를 작게 키링으로 만들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슬프고 우울할 때마다 꺼내 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편지를 쓴 적이 있었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사랑해 준 경험이 지금껏 버티는 힘이 되어주었는지도 모른다. 새삼 고마운 생각이 드는 밤이다.


지하철에서 만났던 그녀의 얼굴은 조금 굳어 있었다. 그게 내내 마음 쓰이지만, 아마 중요한 미팅에 늦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녀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그녀를 또 서랍 깊은 곳에 넣어두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