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한 글로 남지 않도록

by 이정연



평생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열다섯 살, 지하철이 뿌려준 바람을 맞으면서였는지 그 이후의 언제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수없이 한 다짐이므로.


그러나 어느 날은 이 세상 백 명 중 아흔다섯쯤은 모두 아는 한글을 가지고 내가 써내는 이 글이 뭐가 그리 대단할까 싶은 생각이 들고. 밑그림만 잔뜩 그려놓은 글이 도무지 나아가질 않아 그냥 씻고 드러누워 이른 시간부터 잠을 자 버리고 깨어난 자정에는 가슴에 돌이 얹힌 것 같은 죄책감이 든다. 단 한자도 쓰지 못했다,는 슬픔과 막막함.


당신에게 자다 깼다 말했다. 그리고 다시 잘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두 거짓말이 되었다. 나는 또 방황을 한다. 방황을 하다, 하다 어느 작가의 기사까지 읽으며 헛웃음을 짓는다. 가끔 글을 쓰는 사람들은 왜 그리도 공통된 삶의 길을 걷는지. 나도 그들과 비슷한 삶을 살았고, 비슷한 상처를 안았다. 그래서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고 믿어왔다.


남들 다 아는 한글을 내가 요리조리 달리 배열을 해본들, 결국 특별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자꾸만 가로막히는 밤들. 새벽부터 다시 글을 쓰겠다던 나와의 약속. 그러나 약속한 그 새벽의 시작은 턱 밑까지 다가왔다.


무용한 글로 남고 싶지 않다. 그래서 시작한 일. 잠깐 눈을 감고, 무용한 글로 남지 않도록 나의 글과 나를 구원하러 가자. 막막함에서 나를 구원할 존재는 결국 나밖에 없음을 소름 끼치게, 그러나 은은하게 깨닫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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