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새로이 정리가 되어간다.
나를 기만하고, 내게 해악을 끼치는 사람,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늘 봐주었다. 어떤 계산 속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애정일 때도 있었고 감히 끊어낼 생각을 할 수 없는 관계여서이기도 했다. 그들 중 재벌이 없었으니, 내가 그들과의 관계를 무엇에 이용하겠는가.
늘 나의 에너지를 기꺼이 썼고, 나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그들을 걱정하는 일에 골몰해 얼굴을 찡그리는 일도 했다. 덕분에 주름이 늘었다. 그러나 그 일방적인 일을 이제 더는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니 그들을 만나지 않아도, 그들을 마음에 담지 않아도 나는 충분하므로 더는 나를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낭비하지 않아야만 한다.
하루종일 분노하고, 속이 상해 울기도 했다. 분노하고 울었던 날이 비단 하루뿐이었을까. 그래도 나의 깊은 진심을 알기를 바라며. 걱정하는 마음을 알기를 바라며 수없이 말했지만, 모든 나의 문장이 누군가에게 공허하게 가서 부딪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던 순간 모든 마음을 이번에야말로 거둬들이겠노라 결심한다.
핸드폰은 간헐적으로 묵직한 진동을 울려댔다. 나를 걱정하는 말을 잔뜩 늘어놓은 나의 친구 다비언니와 소중한 사람이다. 둘의 메시지에 답을 하는데, 그가 대번 묻는다.
"무슨 일 있지?"
그 물음에 대답을 피하며 다른 대화를 이어가 보려 말을 돌렸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속상한 일 있는 것 다 알아. 얘기해 봐."
내게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놓은 것 같은 사람. 그리고 언제든 결국에는 내 속 이야기를 다 하게 되고야 마는 사람.
소중한 사람은 늘 내게 이기적이 되기를 주문했다. 심지어 그에게도 관대하지 않기를. 무조건, 어떤 일에든 나 자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를 바랐다. 나의 인생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면 무조건 치워버리라고 했다. 그게 소중한 사람이어도, 자신은 기꺼이 치워져 주겠다고. 나를 위해 무엇이든 끊어낼 그런 독한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했다. 정말 이상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낭만적이었던 나는 그의 말에 꼭 딴지를 걸곤 했다.
나는 내게 귀한 사람들을 항상 우선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혹여나 살면서 그들에게 배신을 당하더라도, 나는 그들을 먼저 챙기며 살 것이다. 타고나기를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라고.
그러나 그가 늘 하던 말의 참뜻을 오늘날에서야 깨닫는다.
이제 나 자신보다 우선하는 사람은 없다. 그 우스운 착각을 내 손으로 깨트린다. 내가 힘든 순간, 그 누구도 나를 들여다보지 않는 그 모든 순간에 나를 들여다보아준 소중한 당신도 나보다 우선이 될 수는 없다. 우선되었던 많은 이들이 오늘로써 내 삶에서 분리된다. 보이지 않는 나의 인생 뒤편으로 사라진다.
다만, 언제나 힘든 나를 눈치채 주는 소중한 사람 덕분에 변함없이 나를 귀하게 여기는 이들의 얼굴을 차례로 떠올려 볼 수 있었다.
내가 내려놓는 것들은 어쩌면 남들이 다 가진 것일 수도, 또 누군가는 가지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가졌지만, 100퍼센트의 사람들이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것들을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는 없다.
남들이 다 가진 것 중 내가 갖지 못한 것이 어디 한 두 가지였나. 그 모든 것이 없어도, 나는 꿋꿋하게 오늘날까지 버텼고 잘 살아있다. 그리고 기왕이면 앞으로도 잘 살아있고 싶다. 더욱 건강해지고 싶고, 정말로 행복해지고 싶다.
이제 흩어져있던 에너지를 모조리 나를 위해 모은다. 타인의 인생, 타인의 마음을 신경 쓰느라 늘어난 새치를 내 인생에서 뽑아버린다. 새치가 뽑혀나가 휑한 것이 아니라 빈틈없이 까맣게 빛나는 이 청춘의 머리통 속을 오로지 나를 위한 계획들로만 가득 채운다.
나를 갉아먹는 사람들을,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과감히 내게서 도려내자. 당신도, 나도. 망설이지 말자. 인생은 한 번뿐, 청춘은 짧다. 당신이 서른이어도 마흔이어도 오십이어도 우리는 청춘이다. 짧은 청춘을 낭비하지 말자. 인생은 선택과 집중이다. 무엇을,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아마 결말은 무척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