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친구가 되어가는 걸까

by 이정연


나는 그를 좋아하고 동경한다.


처음 네이트에서 그의 글을 접했다. 그는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었고, 혼자 떠나는 일상의 가벼운 여행기와 투병기를 버무려 글을 올리고 있었다. 글에서 엿볼 수 있는 단단함과 삶에 대한 긍정이 좋았다.


이미 그가 몇 편의 글을 써 두었을 때부터 그를 읽기 시작하여, 앞선 글부터 차례로 쭈욱 읽었고 나중에는 그의 글을 기다리게 되었다. 어느 순간 강렬한 감정이 올라왔다. 나는 이 사람과 친구가 되어야만 해!


정말 황당하지. 그런데 아주 가끔씩 나는 그렇게 황당하고 지나친 용기를 발휘한다. 그에게 장문의 쪽지를 보낸 것이다. 간략하게 내 소개를 하고(소개할만한 건 없지만 난 예의 바른 사람이니까!) 이러이러한 연유로 저는 당신의 글이 너무 좋고,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 쪽지를 보내 놓고 불안했다. 날 미쳤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다행히도 그는 너그러운 사람이어서 날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고 기꺼이 친구되기를 허락하였다.

연락처도 주고받았고, 가끔 카톡 메시지도 주고받으며 천천히 친구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한 번은 책을 선물 받아서 읽는데, 왠지 이 친구가 생각나는 책이어서 덥석 책을 사버리고 대뜸 주소를 물어보았다. 책 선물 드리고 싶으니까 주소 알려주세요.

우리 나중에 차 한 잔 해요, 그런 얘기까지 할 수 있는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생각할 즈음 우리는 각자 바빠졌다. 그리고 얼마 뒤 카톡이 이상했다. 그의 카톡이 어떤 아기 엄마 카톡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그와 나는 단절되었다.




싸이월드가 없어진다고 자꾸만 난리였다. 그러더니 사라지진 않고 그 자리에 아주 불편한 형태로 남았다. 싸이월드에 써 놓은 글이 무척 많았다. 그걸 하염없이 읽었다. 괜찮은 글은 백업해 놓을 요량으로 읽어 내려가고 있었는데, 좋은 글이 하나도 없었다.

아프기 시작하면서 자기 연민에 푹 절어서, 그 글들 대부분이 자기 연민으로 담가놓은 쉬어 터진 김치 같았다. 젓갈을 잘못 썼는지 그냥 맵고 짜고 쿰쿰해서 이대로 사장되어도 별로 아쉬울 게 없으리란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그에게 썼던 편지를 보았다. 그에게 친구가 되고 싶다고 썼던 그 날의 용기 있는 쪽지가 남아 있었다.


그가 그리웠다. 그의 미니홈피를 찾아보았다. 미니홈피 대문에 그의 카톡 아이디가 올려져 있었다. 익숙한 알파벳의 조합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저 아이디를 쓸 리는 없겠지. 그러나 메시지 하나쯤 보내보는 것으로 누군가 피해를 볼 일은 없다. "잘 지내시나요, 희완 씨?"


대번에 답장이 왔다. 그는 연락처도, 카톡 아이디도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선물했던 책과 함께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나는 이름이 바뀌었다. 그런 소소한 얘기들과 함께 카톡이 이상했던 일은 금세 관심 밖이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내가 핸드폰을 몇 번 바꾸면서 그의 전화번호를 옮길 때 오류가 생겼던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연락 주고받던 즈음 독립하셨었잖아요. 지금도 그 동네에 사시나요? 그는 그곳에서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아주 오랫동안 그와 단절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제 연락을 주고받았던 것처럼 우리는 담백한 친구사이로 되돌아가는 듯했다.


우리 중 그 누구의 의도도 의지도 아니었지만 친구사이의 휴지기도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차 한 잔 하자는 얘기를 주고받던 그 몇 년 전의 나는, 정말 자신감이 없어서 말만 할 뿐, 정말 차를 마시러 갈 용기까지는 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아 졌다.


그와는 종종 안부를 나누며, 서로의 일상에 응원을 보내며 다시 그렇게 지내게 되었다. 그러다 맛있는 음식 이야기가 나왔고, 마침 그와 나의 휴일이 겹치는 때에 그의 동네에 있는 맛집 탐방을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처음 접해보는 메뉴를 그와 함께 먹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처음으로 직접 대면하게 되는 어색함 따위는 40년 내공의 요리사에게 모두 맡기기로 하고.

그런데 아뿔싸. 우리가 시간이 맞는 그 요일, 그곳은 정기휴무. 그렇게 시무룩해진 내게 그가 말한다.

"병원 가시는 날은 힘드시잖아요. 제가 파주로 갈게요!"

서울에서 파주는 너무 멀다고 사양하는 내게 그는 말한다. 저희 동네에서 파주까지 단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요!

물론 그렇게 말하고 그는 전철을 타고 왔다.


그날도 비가 내렸다. 병원이 끝난 후, 나는 그에게 대접하려고 검색해둔 초밥집을 찾아 길을 나섰다. 병원에서 마을버스로 두 정거장. 그는 서울에서 오는 중이다. 그리고 정말 황당하게도 그 자리에는 다른 식당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너무나도 짧은 신도시의 식당 교체 주기에 뜨악한 나는 속으로 욕을 뱉었다. 사실 느낌이 이상해서 미리 확인하러 온 것이지만, 정말 들어맞을 줄은 몰랐다.

행복한 월급날, 처음으로 만나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하는데 검색해둔 식당이 사라지다니, 정말 멘붕상태가 되었다.

버스를 타고 온다던 희완 씨는 전철을 타고 이미 이 동네 전철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노무 동네는 전철역이 겁나 멀다. 마을버스는 10분에 한 대 오고, 여기서 역까지 버스로도 12분이나 걸린다. 급한 대로 택시를 잡아타고 그를 만나러 갔다. 그가 기다리는 역 근처 정류장으로 가서 그를 태우고 식당이 많을 동네로 달렸다. 첫 만남이 택시 안이라니, 특이하다. 역시 범상치 않은 만남.


비록 가려던 식당이 사라지는 등 일은 꼬였지만, 우리는 맛있게 먹고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처음 만나는 내게, 그 시절 내가 선물했던 책과 표지색이 동일한 귀여운 산문집을 선물했다. 첫 만남에 본인이 좋아하는 책이라며 내미는 그 센스라니. 난 좋은 친구를 알아보는 레이더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배가 잔뜩 부른 상태로 호젓한 신도시의 골목을 걷다가 빙수집을 발견했다.

오! 가보고 싶었던 곳이에요. 디저트로 빙수 드실래요?

나는 수분에 민감해서 어떤 해에는 빙수를 건너뛰기도 한다.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 보면 여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그러나 소년처럼 해맑게 웃는 그를 보며, 올해의 첫 빙수는 이 친구와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해에도 빙수는 건너뛰었었다. 2년만의 빙수다!

크흑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식사를 하는 사이 비는 그쳐서 걷기에 좋았건만, 사장님에게는 장사하기 나쁜 날이었나 보다. 영업을 하지 않았다. 아쉬움을 걷어내고 그 다음 길에서 우리는 카페를 찾아들어갔다.


그의 얘기들은 참으로 즐거웠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20대를 그에게서 전해 듣는 것은 설레는 일이었다. 비슷하게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생각들도 나누었다. 아, 그 날은 첫사랑의 생일이었다. 좋은 친구 덕분에 나는 그 날을 우울하지 않게 보냈었구나 싶어 새삼 그에게 고마운 생각이 든다. 진중한 눈빛과 차분함이 참으로 좋은 친구였다.


우리는 긴 대화를 마치고, 시원한 음료를 하나씩 사서 마시며 걸었다. 정말 이 곳에 그의 동네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있다. 검색해보니 무려 2층 버스다. 그래서 나는 내가 탈 버스를 다시 갈아탈 수 있는 지점까지만 그와 동행하기로 했다.

우리는 나란히 버스를 타고, 위 층으로 올라갔다. 비어있는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처음인 2층 버스라서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달렸다. 그도 처음 타보는 거라 신기해했던 것 같다. 그리고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나는 내렸다.


그리고 그 날에서 몇 번의 계절이 지났다. 또다시 여름이다.




내 친구들 중에는 담백함 그 자체인 이들이 몇 있다. 내가 뜨거워서인지 나는 담백한 이들을 좋아한다. 그들에게서 그 담백함을 배우고 싶기도 하다. 그는 그런 담백한 친구들 중 한 사람이어서, 사실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냥 그의 담백함을 알기에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생각한다. 나는 태생적으로 쫌생이어서 연락 같은 부분에 민감한데, 몇몇 사람에게는 그런 쫌생이의 날을 세우지 않게 된다. 아마 서로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희완 씨가 먼저 카톡을 한다. 요즘 들어 가끔씩.

아무리 쫌생이의 날을 세우지 않는 관계라고 해도, 희완 씨가 먼저 연락을 주었을 때 나는 감동했다. 내가 주로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하는 이유로 그도 나에게 연락하였을 것 같았다. 아마도 내가 생각나고 궁금하다는 그 소름 끼치게 좋은 이유 말이다. 그만큼 우리의 친구관계가 더 가까워졌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그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담백하게 그가 생각났다. 나는 이런 감정이 너무 좋다. 지난 사랑에 너무 지쳐서, 나는 친구들을 생각할 때 피어나는 몽글한 그런 감정에 퍽 기대어 살아간다.

그가 생각났고, 그가 선물해주었던 책이 생각났다.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1cm 다이빙을 그의 손에 건네고 싶어 졌다. 선물하기를 눌렀다. 그에게서 대번 답장이 왔다.

무려 새벽 다섯 시 반인데. 운동 가려고 일어났단다. 좋은 친구에게서 배우고 싶은 삶의 태도를 보았다. 운동하지 않는 나, 반성해야지.

그는 시인답게 책 선물에 한껏 기뻐하며 웃는다.

의자를 손 보다가 손을 다쳤음에도 그는 나에게 열심히 응답한다. 그것이 또 감동이다.


그를 친구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없었다. 우리는 학창 시절을 공유한 것도, 함께 욕할 상사를 공유한 것도 아니다. 그냥 그의 글에 반해서 내가 들이대서 이어진 관계.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친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서로가 궁금하다.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