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로 말할 것 같으면, 7~80년대에는 문학소녀였고요. 90년대에는 어린 정연이에게 전집을 사주는데 혈안이 되었던 열혈 독서맘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책벌레로 만들려면 필요할 때마다 한 권씩 사주는 것이 좋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아주 오래전에 들은 바가 있어요. 오히려 전집을 사주면 읽을거리가 많아서 중압감을 느낀 아이들이 되려 책을 멀리할 가능성이 있다고요.
하지만 그런 전문가의 의견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우리 딸은 집안에 전집을 그득그득 채워주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밖에서 뛰어노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작은 정연이는요, 집을 돌아다니며 책을 뽑아 읽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는, 서재처럼 쓰던 정남이의 방에 틀어박혀 밤새 책을 읽곤 했었습니다.
저를 그렇게 키운 우리 딸은요, 요즘은 책을 거의 읽지 않습니다. 사실 아예 읽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정신이 맑아지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해서, 제가 좋아하는 로맹가리의 소설도 추천해 주고요. 제가 엄청 좋아하는 한국 소설가 이은정 선생님 작품도 읽혀보았는데, 어휴 길게 읽지를 못하고 계속 드라마만 보는 딸 때문에 속상했던 날이 많습니다. 고백하자면, 책 안 읽는다고 화도 냈었답니다.
그런데 <서른 살이 되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가 도착한 이후, 딸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본 상태를 보고 있는가 예삿일로 생각하고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제본 상태 확인하는 걸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쩐 일로 책을 다 읽으신댜?"
그리고 전 딸과 정남이, 그리고 제가 주문한 책에 작가증정본까지 모두 정리를 해 두고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딸은 제가 책 상자를 여는 동안 옆에 있더니, 어느새 소파로 옮겨가서 계속 책을 읽는 것 같더군요.
전 방에서 제 일을 하고 있는데, 저녁 여섯 시 반 '뾱뾱뾱' 정남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 왜 그래요??!!"
뒤늦게 거실로 나간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딸이 제 책을 읽다가 울고 있었던 거지요. 그 모습을 본 정남이가 집에 들어오면서 놀란 것이고요. 그렇게 딸은 제 책을 받아본 당일, 오후 시간을 모두 써서 읽어버렸습니다. 이렇다 저렇다 긴 말은 없었지만 제 책 한 권을 다 읽은 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책을 안 읽는 딸이, 내 책은 다 읽다니! 재미있어서 다 읽을 수밖에 없었다는 딸의 말에 등을 두드려주었습니다.
정남이의 회사 분들도 제 책을 사셨습니다. 주변에 선물도 하고 싶다며, 몇 권씩 사셨나 봅니다. 그리고 정남이도 책을 샀습니다. 정남이와 딸이 주변 친구들에게 줄 거라며 사인을 부탁했습니다.
엄청 여유로운 척하며 10권 정도 사인을 했습니다. 위 사진이 첫 내지 사인입니다. 저 사인하면서, '오, 이정연! 슈퍼스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운명일지도 몰라!' 했습니다. 키키키.
책에 사인 좀 하고 났더니, 이제 화를 낼 수가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혹시 슈퍼스타가 됐는데, 우리 딸이 언론에다가, '이정연은 분노조절장애, 늘 기차화통 삶아 먹은 듯 화를 낸다!' 이렇게 폭로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요즘 늘 딸에게도 다정하게 굴고요. 버스에서 덩치 큰 할저씨에게 발을 밟혀도, 바로 옆에서 길담배 하시는 분에게 테러를 당해도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기며 살아갑니다. 길담배에 테러당하면, 그냥 제가 뛰어서 도망치고 말아요. 괜히 인상 찌푸리지 않고, 화내지 않고 이제 그렇게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제 출간 작가잖아요??!!
책을 사주신 분들 중, 급작스레 눈 수술을 앞둔 분이 계세요. 망막에 이상이 있어서 누워서만 생활을 하신다고 합니다. 세상에. 그런 상태로, 그분도 제 책을 하루 만에 다 읽으셨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정남이의 지인분입니다. 그러면서 사인을 꼭 받고 싶다 하시며, 책에 대한 칭찬을 엄청 해주셔서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물론 큰 수술을 앞두고도 제 책을 읽었다고 하시니 눈이 혹사당하지 않았을까 엄청 걱정도 되었고요. 정남이 이야기에 따르면, 그분도 평소 전혀 독서를 안 하시는 분이라고 하네요.
친한 동생 소소도 책을 몇 권이나 샀던데, 한 권은 본인 어머니께 선물을 드렸답니다. 주말 동안 다 읽으셨고, 또 많이 우셨다고 소소가 연락을 해왔습니다. 저에게 고맙다고 전해달라 하셨고, 앞으로 정연이에게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날 거라고 덕담도 해주셨다고 합니다.
평소 책을 읽지 않는 분들이 제 책을 손에 쥐자마자 멈추지 않고 모두 읽으셨다고 하니, 늘 읽어주는 분들에 의해 제 글이 완성된다고 믿는 저에게 이보다 큰 선물은 없습니다.
아, 저의 친한 친구인 봉숭아의 열한 살짜리 딸도 <서른 살>을 재미나게 읽었다고 얘기해 주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그 작은 소녀 덕분에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봉숭아는 제 책을 주위에 선물한다고 엄청 많이 샀습니다. 타인에게 자랑스럽게 제 책을 선물한다는 그 마음... 믿을 수 없이 감사합니다.
제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SNS에서는 끊임없이 인증샷이 올라오고, 서평도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아직 서점에 진출도 못했는데 이런 일이라니,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 아침에 출판사 대표님과 통화를 하였는데, 아마 이번주 안에 인터넷 서점에 등록이 될 예정인가 봐요. 혼자 글을 썼다면, 이렇게 제 책이 세상에 나오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늘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신 여러분들이 제 글을 완성시켜 주셨기에, 제가 투고도 할 수 있었고 출판사와 계약도 할 수 있었어요. 이제 서점에서도 뵐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