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남동생 정남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은 이 쓸쓸함과 그리움. 단출한 식구이다 보니 정남 한 사람이 없는 것이 무척 크다.
수요일부터 정남의 장 사정이 달라졌다. 증상이 시작됐던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정남이 장염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정남은 잘 먹는다. 나의 취향이 잘 먹는 사람이어서, 정남이를 나의 취향대로 길렀다. 그런 정남이 먹지 않고 계속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렸다.
그래도 수요일 밤까지는 나의 고민 이야기도 들어주고 웃기도 하던 정남이, 목요일 아침에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새벽부터 몸이 불덩이 같아서 깨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느라 그때부터 아예 잠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도 결석을 해본 적이 없는 정연과 정남이다. 아파도 학교 가서 아프라고 하였던 엄마 때문에, 결석은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살았다. 그 버릇 그대로 어른이 되어, 아파도 회사에 가서 아픈 우리는 웬만하면 아픈 것을 참고 자신의 일을 해내려고 애쓴다. 그런 정남의 입에서 '연차를 써야겠다'는 말이 나왔다. 이건 정말로 큰일이다, 싶은 마음에 걱정이 됐다. 당장 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정남은 몸살에 장염이 겹친 것 같다고 하면서 병원 가자는 말도 거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운전을 못하는 정연은 아픈 정남을 대신해 차를 몰아줄 수가 없다. 제기랄. 평소에 버스기사님, 전철 기관사님을 대동하고 다니는 금수저 정연인지라 아쉬운 일이 없는데 아픈 정남에게 직접 운전을 해서 병원을 가자고 말하는 순간이 너무 미안하고 슬프다.
정남을 데리고 침수된 도로를 헤치고 시내의 내과로 갔다. 정남은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아 나왔다. 집에 오는 길에 나 혼자 식자재 마트에 들러 정남의 수분 보충을 위한 이온음료와 과일 등을 샀다. 물론 과일은 아픈 정남이 먹을 것이 아니라, 나와 딸이 먹을 것. 그리고 정남이 먹을 죽을 미리 배달시켜 놓았다가, 집에 도착하자마 정남이 죽을 먹였다.
정남이를 거실에 눕혀두고 나는 정남이 방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침대 시트를 갈아주었다.
그렇게 정남이를 깨끗한 방으로 돌아가도록 조치를 취해주고, 나는 또 밀린 집안일을 했다. 약을 챙겨 먹어야 하는 정남이의 끼니를 챙겨주고, 끊임없이 집안일을 하는 누나를 보며 정남이는 연신 "미안해."라는 말을 한다.
"아이고, 아픈 네가 고생이지. 누나가 하는 게 뭐 있다고. 미안하다 소리 하지 마라."
본인이 아프면서 미안하다는 소리라니. 그렇게까지 착할 필요가 없는데. 이럴 때 보면 정연과 정남이 참 잘못 컸다. 조금 더 이기적인 어른이어도 되는데.
그렇게 정남은 조금 나아지는 듯하다가, 다음 날 아침에는 또 우는 소리를 했다. 누나가 잘 챙겨주어서 낫는 줄 알았는데 또 새벽 3시에 깨어나서 화장실을 수도 없이 갔단다. 그리고 밤만 되면 그렇게 몸에서 열이 난단다.
엄마는 출근하고, 누나는 투석을 하러 가고. 정남은 혼자 또 병원에 다녀온 모양이다. 점심은 둘이 함께 먹었다. 정남이의 먹는 양이 보통 줄어든 것이 아니다. 정말 장염이란 무척 무서운 것이구나.
금요일 저녁에는 그렇게 입맛이 없던 정남이 먹고 싶은 것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래서 누나가 무조건 사주겠다고 메뉴를 말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몇 숟갈 먹더니 이내 못 먹겠다고 말하며 수저를 놓는 정남. 이거 아무래도 문제가 심각한 것 같은데...
토요일도 또 상태는 오락가락하였다. 집에서 혼자 앓고 있을 정남을 생각하면 너무도 걱정이 되고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일요일. 조금 차도를 보이는 듯했던 정남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 나를 출근시켜 주면서도 계속 속이 울렁거린다고 하고, 잘생긴 얼굴이 구겨졌다. 물론 고슴도치 정연 기준의 잘생김이다.
토요일에는 동네 내과를 가지 말고 다른 병원에 가보라고 했는데, 좀 괜찮아지는 것 같다며 집에 콕 박혀있었던 정남이다. 오늘은 꼭 종합병원 응급실이라도 가라고 당부하며 정남의 차에서 내렸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일요일 아침이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서 내게 온 메시지.
-정남이 지금 CT 찍고 있다.
우리 정남이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