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이 입원했다. CT 결과 장이 무척 많이 부어있고, 그 영향인지 맹장도 팽창한 상태라 위험하다는 의견으로 일요일에 바로 입원을 했다. 정남은 입원하면서 엄마를 집에 보냈다. 환자복을 입은 채 혼자 덜렁 남았다.
나는 회사에서도 정남이 걱정됐다. 점심시간에 편의점에 가서 칫솔세트와 폼 클렌징, 물티슈 등을 샀다. 어디에 있든 세수는 하고, 이는 닦아야 할 것 아닌가. 퇴근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정남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수액과 약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정남의 모습이 낯설었다. 필요한 것이 더 있으면, 누나가 내일 새벽에 또 가져다주겠노라 약속을 했다. 병실은 8시에 이미 소등을 했다고 한다. 1층 로비에 있는 휴게실에서 잠깐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 뒤 정남은 씻어야겠다며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나는 월요일 오후에 비행기를 탈 예정이어서, 새벽 여섯 시 즈음 정남을 만나러 오겠다고 약속하고 귀가하였다.
정남이 필요하다고 했던 물건들을 가방에 챙겨두었다. 그리고 월요일 새벽 6시부터 버스를 기다렸다. 하루에 몇 대 다니지 않는 버스인데, 정남이 입원해 있는 병원 앞을 지나는 유일한 버스다. 근데 어쩐 일인지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나오질 않아서 그냥 또 택시를 불러서 탔다.
새벽 여섯 시 반에 정남을 만났다. 정남은 구세주를 만난 듯 기뻐했다. 심심하던 차에 내가 이어폰을 가져다준 것이다. 밖에는 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길을 건너 마을버스를 타고 역으로 가서 전철을 갈아타고 또 병원으로 간다.
정남에게서 소식이 왔다. 회사 인원의 반 정도가 정남처럼 탈이 났다고 한다. 물론 정남처럼 입원을 할 정도로 심한 사람은 없다. 정남은 이 누나 정연을 닮아서 또 아픈 것으로 1등을 해버렸다. 이런 건 닮지 않아도 되는데. 아휴.
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탈이 났으니, 결국 보건소에서 역학조사를 나왔다고 한다. 그 역학 조사 결과 '캠필로박터 제주니'라는 균이 발견되었고, 지난 월요일 점심에 배식되었던 반계탕이 바로 그 범인이라는 결론이 났다.
정남은 정말 1등 신랑감이다. 웬만하면 반찬투정을 하지 않는다. 한 번은 냄비밥을 했는데, 밥이 설익고 냄비 바닥은 탔다. 그런데도 그 밥을 말없이 먹고, 웬만해선 음식 타박을 하지 않는 정남이 회사 식당의 급식 업체가 바뀐 후로는 회사에서 밥을 잘 먹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나 다를까, 정남은 지난주 회사에서 단 한 끼만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문제의 반계탕이었던 것. 어찌 딱 한 끼만 먹었는데, 식중독의 공격을 받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도 원인이 밝혀져서 다행이었다. 식중독 균 때문인지 정남의 염증수치는 떨어질 줄 모르고, 금식의 시간도 계속 길어만 진다.
귀여운 정남은 계속 퇴원하면 먹고 싶은 음식 목록을 나에게 보내거나, 유튜브 음식 영상을 자꾸 보낸다. 정남이 그렇게 고생을 하고 있으니, 사실 집에서 편하게 끼니를 챙겨 먹는 것도 미안해질 정도다.
월요일에 내가 타려던 비행기는 결항이 되었고, 결국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화요일 새벽에도 깨어 정남과 메시지를 하며 몸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오후에는 내 책 <서른 살이 되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를 읽고 싶다며 가져다 달라고 하여서 책과 수건 등을 챙겨서 또 정남을 만나러 갔다. 이렇게 정남을 챙겨주라고, 결항이 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남과 1층 로비에 나란히 앉아 잠깐 이야기를 나눈다. 정남의 혈액검사결과지를 받아다 읽어보기도 했다. 13년 동안 아프다 보면 이제 혈액검사결과지쯤은 충분히 해석이 가능해진다. 결과지를 읽어보니, 조금 안심이 된다. 식중독 외에 다른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 말을 하며 정남을 안심시켰다. 시골 종합병원의 선생님은 환자에게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않는 모양이다. 메시지를 통해서도 정남이 계속 불안해 보여서 내가 내린 특단의 조치다. 야매 주치의의 야매 진료.
오래 아파온 시간이 참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것은 이럴 때다. 가족들이 아플 때. 나는 그들의 병을 진단하지는 못해도, 그들의 검사 결과를 모두 해석해 줄 수가 있다. 어디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쉽게 설명해줄 수 있다. 그런 나의 존재에 가족들도 퍽 안심이 될 테지. 어떤 시간도 쓸모없는 시간은 없다. 나의 아픈 시간도 모두 나의 피와 살, 은 아니고 지식이 되었다.
오늘부터는 정남 몫의 식사로 흰 죽이 나오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정남은 무척 행복해하는 중이어서, 5시 반이 가까워올 때 정남을 병실로 올려 보냈다.
나는 다시 집으로 향한다. 저녁이 가까워지는 오후의 햇살이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