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일의 힘듦과 그녀와 내 앞에 놓인 불행과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인생의 과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참 많이 힘들었던 며칠간의 마음이 JJ와의 대화로 많이 날아갔습니다.
JJ의 사촌오빠가 8년간 백혈병을 앓다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들었습니다. 고작 우리와 세 살 터울이니, 참으로 이른 죽음입니다. 청춘이라면 응당 누려야 할 모든 것들을 누리지 못한 인생입니다. 마음이 정말 많이 아팠습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 분이 어떤 마음으로 투병생활을 지나왔을지, 그 고통을 감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프기 때문에 포기해야 했을 것들, 그 앞에서 산산히 부서지고 무너지는 자신을 어쩌지 못했을 그 마음을 그래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가장 처음 브런치에서 댓글을 달았던... 다녕 작가님이 돌아가셨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따님이 대신 옮긴 다녕님 남편 브래들리님의 글과 따님이 쓰신 글을 읽으니 눈물이 났습니다.
사실 다음 메인에 노출되는 글들 때문에 브런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시를 쓰는 친구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기에 브런치에 가입을 했으나, 사실 달리 할 일이 없었거든요. 만들어만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메인에 노출되는 글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다녕님의 글을 만났습니다. 정말 대단한 강단으로 삶을 헤쳐오신 다녕님의 글이 참 좋았고, 처음으로 댓글을 달아보았는데 거기에 답을 해주신 것도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브런치를 잘 모르니까 그 댓글을 확인하는 과정도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매일 아침 7시, 전철에서 다녕님의 글을 읽곤 했었습니다. 처음 몇 번 이후에는 그다지 댓글을 달지 않게 되었지만 오랫동안 꾸준하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 전, 핸드폰에 다녕님 새 글 발행 알람이 떴는데 왠지 그냥 스치면 안 될 것 같다는 강렬한 느낌이 왔습니다. 그리고 그 글 속에서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다녕 작가님의 성함이 '강단형'이라는 것을요.
신기했습니다. 다녕님이 들려주시는 다녕님이 살아오신, 헤쳐오신 일들도. 다녕님이 늘 글 말미에 올려주시던 다녕님의 수채화도. 한복을 짓는 분이라는 사실도. 그런 많은 재능을 가지신 분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시는 재주까지 가지셨다는 것이. 참으로 모든 것이 신기하고 좋았습니다.
그랬는데 저 나름대로 아프느라, 살아내느라 한 동안 읽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녕님은 참 행복해 보이셨거든요. 다녕님의 모든 것이 빛나 보였거든요. 가끔 다녕님 브런치를 가 보면 제가 열심히 읽던 때보다 훨씬 구독자 분들도 많이 늘어있었고, 댓글도 그득하여 굳이 제가 한 마디 보태지 않아도 되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저는 늘 읽는 사람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라 하였던 친구 JJ의 말에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여 저도 샛별 같은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제 글을 쓰느라 또 바빴던 것 같습니다.
사실 늘 혼자였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고, 가족 이상으로 가까운 친구들이 있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고 가족들에게 말은 하였지만, 가족들은 절대 읽지 않습니다. 가족이니까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 고 저도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래 제가 작가병이 있어서, 솔직히 가족들은 쟤가 또 무슨 짓을 한다는 건가 이렇게 생각하고들 있을 거예요.
가장 친한 친구 세 사람만이 제가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저는 모르게끔 읽고 있을 겁니다. 티 나게 읽고 있는 친구도 있고요.(사실 제가 다니는 대학병원에 계신 친한 선생님께는 브런치 작가 되었다고 말씀드려서 읽고 계세요. 친구라고 하기에는 아직 조금의 거리가 있는, 가까워지고 싶은 분입니다.)
어쨌든 브런치라는 곳은 저에게 너무도 생경하고 높게만 보이던 세계였습니다. 지금 제 눈높이에 맞는 낮은 세계라는 의미는 절대로 아닙니다.
시작하자마자 엄청난 조회수를 올리며 구독자가 늘어나는 작가님도 보았고(비슷한 시기에 시작하여 어찌보면 동기 같은 분이세요), 처음부터 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분이었는데 지금은 정말 따라갈 수도 없을 만큼 태산 같은 작가님이 되신 경우도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체로 어느 정도의 감정적 노출증을 가지고 있다고, 어린 시절부터 생각해 왔습니다. 뽐내거나 하려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내 글을 읽고 누군가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들여다보아주고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이 있을 겁니다. 저는 그런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아 나에게도 당신 같은 마음이 있지, 그 마음 내가 알지. 혹은 제 속에 정말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불행 속에서도 나아가는 저를 보고 조금은 위안을 얻으셨으면 하는 그런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처음에는 그저, 글을 쓰면 제 마음에 후시딘이 되어줄 것 같았습니다. 인생의 모든 순간 저는 노트에 글을 쓰며 버텨왔었거든요. 어느 순간 그마저 힘들어서 다 그만두었던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쓰는 일은 저를 늘 나아가게 했고 버티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버텨보려고, 살아보려고 하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희귀 난치병이라, 젊은 사람에게는 흔치 않은 병이라 이 병을 팔면 브런치 작가가 되는 일이 그렇게 힘들지만은 않을 거야. 그런 아주 바닥인 생각을 가지고 작가 신청을 했더랬습니다. 근데 그걸 브런치가 간파하였습니다. 그 계산적인 마음에 속아주었습니다. 작가 신청을 하고 이틀인가 삼일 만에 작가가 되었거든요.
이렇게 쉽게 얻은 작가 생활이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만 늘어놓기 때문에 제 글은 저 혼자서만 읽을 줄로 굳게 믿었습니다. 물론 작가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너무 짧아서 내 글이 괜찮은가 보다, 하는 건방진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주 짧게 생각하고 말았으니까, 고개 숙이고 반성은 30초만 할게요.
아프고 나서 하고 싶은 얘기들이 너무 많았는데, 혼자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와 그 얘기들을 늘어놓고 계속 하기도 힘들죠. 눈물바다가 되기 일쑤이니까요. 우리는 나아가야하니까요. 그런데 일단 브런치가 저를 받아주었고, 여기는 제 공간이니 저는 마음껏 글을 썼습니다. 제가 브런치에서 인기를 얻기에 부적합한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니 그걸 알기 때문에 더 마음껏 글을 썼습니다. 어차피 아싸의 인생, 아싸 답게 나를 위한 글을 쓰자.
그런데 어느 날 끊임없이 알람이 울렸습니다. 한 작가분이 모든 글에 라이킷을 누르시고, 하나하나 모든 글에 댓글을 달아주고 계셨습니다. 그러더니 다음 날이었나, 그분이 저에 대해 글도 쓰셨어요. 추세경 작가님이십니다. 제가 링크 걸지 않아도 이미 너무 깊이 있는, 좋은 호흡의 글을 쓰고 계셔서 많은 분들이 세경 작가님을 좋아해요. 제 구독자 중 몇몇 분들은 세경 작가님의 글에서 저를 알고 오셨더라고요. 엄청 감사했었습니다. 세경 작가님 같은 분이 소개해주셨음에도, 잔잔하고 꾸준한 저의 브런치를 보며 좀 슬프기도 했었어요. 엄청 부잣집 딸인데 공부를 못합니다. 부모님이 아무리 유능하고 몸값 비싼 선생님을 붙여 가르쳐도 꼴찌 하는 딸이 된 것 같은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졸지에 세경 작가님이 부자 부모님이 되었군요. 웃으시라고 하는 비유와 농담입니다.
시작하고 정말 며칠 되지 않았을 때여서, 그때의 세경 작가님이 남겨주신 모든 글들이... 제 세계에 누군가 처음으로 문을 두드려 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차차 좋은 작가님들을 많이 알게 되면서, 지금 저는 브런치에서 만나는 모든 작가님들을 친구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저에게 믿을 수 없을 만큼 따뜻하고 아름다운 응원과 감상을 남겨주시는 분들이 저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주고 계십니다.
늘 나만,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픈 것도 나만, 불행한 것도 나만. 세상 모든 불행과 아픔은 내가 지고 사는 것처럼 그렇게 살았습니다. 세상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의 행복과 나의 불행을 비교했습니다. 많이 가깝지 않은 친구들의 행복을 보며, 내가 한없이 초라해져서 부러 연락을 하지 않았던 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 많이 가깝지 않아서 결국 인연의 흔적도 남지 않았습니다.
잘된 동생을 보며, 떳떳하게 나설 수 없어 먼저 안부 한 번 묻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JJ가 말했습니다. "네가 속이 좁네. 소인배네, 소인배."
맞습니다. 저는 정말 옹졸합니다.
누군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함부로 제 글에 쓰면 안 될 것 같지만, 요 며칠 많이 느낍니다. 저는 정말 세상에서 제가 제일 불행하고, 제일 아팠습니다. 물론 다른 이의 큰 상처보다, 내 손가락의 거스러미가 제일 아픈 것이 사람 마음이라 하지만 저는 내 상처는 거스러미 이상이니까 내가 불행 대장이다, 하며 살았습니다.
예쁘고 똑똑하고, 야무지게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달리던 동생 J가 있었습니다. 결국 꿈을 이루어 정말 좋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2년 차를 넘겼습니다. 사실 직업이 꿈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동생의 직업은 직업임과 동시에 늘 사람들을 돕고 구하는 일이라 꿈이 될 수 있는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원하던 자리에 서서, 자신이 원하던 일을 하는 동생이 참으로 빛나 보였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그저 겨우 저 하나를 책임질 뿐이라, 아직 꿈에는 가까이 가지도 못해서 참으로 초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M이 "언니, J가 언니 안부 묻더라. 궁금해하고 보고 싶어 하더라." 몇 번 말을 전해주었지만, 따로 연락해볼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결혼식에서 J를 만났는데, J가 나를 보자마자 달려왔습니다. 내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언니, 어떻게 지내요~ 왜 이렇게 예뻐졌어요." 그렇게 살갑게 구는 J가 참 예쁘고, 따뜻했지만 웃으며 대하는 것 이상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초라했으니까요.
M이 J의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회사에서 반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하는데 종양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스물아홉의 나이입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나를 보고 달려와 손을 덥석 잡았던 J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은 J의 병을 착한 암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 병이 내 것이 되면, 아니 내 것 남의 것 따지기 이전에 착한 병 같은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병은 무척 무겁고, 그 주인에게 매달려 그를 좌절과 절망에 빠뜨립니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J가 잘 이겨내리라고 믿고, 그저 마음으로 응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며칠 전 M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수술이 잘 끝나고 J가 퇴원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멀겠지만 분명 J는 빛나는 눈으로 이겨내겠지요.
이제와 옹졸했던 나를 후회합니다. 혼자 불행 대장으로 살았던 지난날을 반성합니다.
"너는 예쁘고 언니보다 젊고, 꿈도 이루었으니까~ 이 비루한 언니 맛있는 것 좀 사주라~"
나는 아주 오래전에, J에게 그렇게 말했어야 했습니다. 비록 지난날의 언젠가는 하지 못한 말이지만, 앞으로의 언젠가는 할 수 있게 될 말이겠지요.
다녕 작가님은 떠나셨지만, 따님이 남은 글들을 편집해 마저 올릴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그동안 제가 미처 읽지 못하고 지나간 글들도 쌓여있겠지요. 다녕 작가님은 떠나셨지만, 작가님이 쓰신 글들은 모두 브런치에 고스란히 남아 또 누군가가 읽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글을 읽는 누군가는 다녕 님이 걸어오신 길을 함께 걸으며 위안을 얻을 수도 있고, 나아갈 힘을 얻을 수도 있고, 또 지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브런치는 위대합니다.
저 같은 외톨이에게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준 브런치는 위대합니다. 아니, 이 경우에는 브런치에서 만난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저에게 위대한 존재인 거지요. 그래도 우리를 만나게 해 준 곳이니까, 브런치의 존재도 그러하다고 한 번 더 강조하기로 해요.
나처럼 아픈 청춘들을 보며, 나의 아픔에 공감해주고 보듬어주시는 많은 분들을 보며 이제야 알았습니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불행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힘들고 외로워도, 묵묵히 길을 걷다 보면 반드시 나의 등을 두드려 주고 보듬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똑바로 보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